
내가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살아남았듯,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하루에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다정함으로 서로를 살리는 우리가 되길. (p. 128)
제목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오히려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고, 실패조차 새로운 경험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실패의 무게가 훨씬 크게 다가온다. 다가오는 아침이 버겁고,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것이 '겁내지 않는 용기'임을 실감한다. 두려움은 타고난 성향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살아가며 차곡차곡 몸에 덧씌워진다는 것을ㅇ 안다. 김유미 작가 역시 직장인과 화가의 삶을 오가며 "익숙해지지 않는 어른의 삶"의 고단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단순한 힐링 에세이쯤으로 여겼다. 귀여운 판다 그림이 한때 유행했던 캐릭터 에세이의 연장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은 위로에 머무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로가 지친 등을 토닥이는 데 그친다면,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응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응원이란 '너라면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건네는 것,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주는 것이다.
작가는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는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오는 위기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직장 동료와 친구, 가족들이 건네는 응원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자신을 일으캬 세우는 힘이 된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스스로를 박하게 대하며 모든 짐을 홀로 감내하려 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힘든 날에는 세상이 까맣게 보인다. 주변을 살피는 것조차 버겁고, 나 자신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괴로움에 잠식되곤 한다. 내면의 괴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 깊은 동굴로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방식이든 자신을 돌보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김유미는 "도망가고 싶지만 오늘도 이불 밖으로 나와 '나'로 살기 위해 애쓰는 어른들"에게 전한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고 싶은 나도, 게으르게 눕고 싶은 나도,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나도 모두 진짜 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한 가지 모습만이 이상적인 '어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모순된 모습조차 모두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첫 걸음이다.
도전이라는 말은 거창한 성취에만 쓰이는 것 같지만, 작가는 일상의 작은 선택에도 도전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판다를 만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결국 제2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열려 있다. 굳이 새로운 직업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무거나'로 퉁치던 대답 대신, 오늘만큼은 내 안의 목소리를 꺼내보는 것이다. 작은 의견 하나를 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삶의 방향을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니까.
요즘은 누구나 '갓생'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SNS에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멋진 집을 꾸미며, 성과를 뽐내는 사람이 넘쳐난다. 뉴스는 더 슬기롭게 부를 축적하는 사람, 더 격렬하게 분노하고 복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정보와 자극은 넘쳐나지만, 정작 마음은 점점 지쳐간다. 그럴수록 오히려 필요한 건 자극에서 벗어나느 용기인지도 모른다.
별거 없어도 된다. 잠시 세상과 거리르 두고, 30분쯤 누워 있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를 지키는 용기는 대단한 결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작은 쉼, 작디작은 선택이 바로 그 시작이다. 물음표 앞에서 에너지를 다 소모하지 말고 대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보자. 그 순간 우리는 이미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고 있으니까.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다정함으로 서로를 살리자." 그러나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자주 놓치는 덕목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건 용기를 내는 일이자, 주저앉은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