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의 작가 김유미는 자신을 보통의 17년 차 직장인이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하루 8시간은 직장인, 이외 모든 시간엔 '판다의 시간'을 그리는 화가”로서 어른의 용기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판다 유화 58점과 함께 제2의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른이라서 더 필요한 용기를 가지기 위해 읽은 에세이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은 작가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면서 읽었다. 지금부터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감되는 몇 가지 문단을 소개하며 이 책을 다시금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맹목적으로 자신의 최애를 위해 주접을 떨고 실드를 쳐주는 극성팬처럼, 내가 내 1호 팬이 되어주기로 하자.
사랑받는 '최애'는 더욱 빛날 것이고, 자신감이 더해진 최애의 퍼포먼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 p.22
초등학생 때부터 끊임없이 덕질을 하며 살아온 터라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삶이 상상이 안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지킨다는 말처럼 수많은 최애가 나를 절망에서 빠져나오게 했으며,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싶게끔 이끌었다. 단지 보고만 있어도 힘이 되는 존재들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붓곤 했다. 흔히 덕질은 짝사랑이라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맘 놓고 좋아할 수 있어서 더 편하다고 느꼈다.
이처럼 ‘남’의 팬이 되는 행위에는 익숙했기 때문에 ‘나’의 팬이 되는 데도 쉽게 적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에게는 관대하나 본인에게는 각박한 성향을 타고난 덕택에 이와 비슷한 다짐을 여러 번 했는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반짝이는 최애를 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곧바로 극성팬이 되기에는 시일이 걸릴 듯하여 우선은 입덕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어느 순간 나의 장점만 보이면서 뭘 해도 귀엽게 보이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 본인 한정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칭찬만 쏟겠다는 마인드로 임하며 조금이라도 나를 더 아낄 수 있길 바라본다.
어느 영상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은 '인정 중독'에 걸린 거라고 한다. 그 영상의 예시들에 따르면 나는 치료가 시급한 수준이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라나. 그 말에 뜨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남들이 해주는 칭찬이 좋다.
- p.55
어렸을 적부터 인정 욕구가 강해서 그런지 나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심한 죄책감에 휩싸이곤 했다. 엄청나게 경쟁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이 넓은 세상에 자꾸만 나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평가에서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렇지 못한 현실이 충돌할 때마다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성장한다는 사실도 잊곤 했다. 자기만족에 대한 기준치가 높다 보니 나의 성과를 터부시했던 적도 많다.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주변에서 잘했다고 말해줘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유다빈밴드가 커버한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 곡의 하이라이트인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라는 가사를 힘들 때마다 곱씹는다. 눈앞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으니 부디 자신을 덜 채찍질하면 좋겠다.
물론 남을 만족시키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 전에 자기 먼저 만족해야 진정으로 즐겁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만으로도 괜찮다. 불필요한 걱정은 뒤로한 채 마음대로 세상을 그려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개념으로 구분했다.
하루에 책을 몇 권 읽었느냐가 크로노스적 시간이라면, 그 책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느냐가 카이로스 시간이다.
- p.176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크로노스적 시간에 좀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온 듯하다. 무엇이든 많이 할수록 남는다는 생각에 한 우물보다는 여러 구덩이를 파는 편이었다. 물론 시야가 더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이로 인한 시간 강박으로 힘든 점도 많았다. 생산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제대로 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생각조차 사치일 정도인 바쁜 현대인이 되어 차츰 강박을 내려놓게 됐다. 쉬는 시간의 소중함을 톡톡히 느끼며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붕괴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따라서 이제는 카이로스 시간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배워보려고 한다. 양보다 질에 집중하여 앞으로의 삶에 흔적을 남길 만한 좋은 것들을 하나둘씩 찾아갈 예정이다.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는 결말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중략) 완벽하지도, 완성되지도 않은 나의 이야기가, 오히려 그래서 누군가의 하루에 용기를 주는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 p.271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곧장 답했던 나는, 요즘에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원대한 목표나 추상적인 소원들은 자꾸만 멀어져가는 기분을 느낀다. 하다 보면 되겠지, 언젠가는 닿겠지 하면서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막연한 믿음으로 달려온 길인데도 사방팔방 먹구름이 끼어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꿈은 바로 이 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이 나의 하루에 용기를 주었다. 비록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더라도 당장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보내는 일상이 꿈같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일상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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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에서는 이외에도 눈에 밟히는 문단들이 많았으나 직접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에 여기까지만 다뤄보려고 한다. 나답고 낭만적인 어른이 될 수 있게 용기를 준 김유미 작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어른이 판다처럼 용기 있게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