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데미안 개정판-앞표지_띠지.jpg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 있다. 2N살의 나는 한창 지적 허영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이기도 했고, 저 말에 혹한 나머지 어렵디어려운 세계 고전 명작시리즈 전권 독파하기를 목표로 줄기차게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데미안도 워낙에 유명했던 책이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2N살의 나는 책이란 깊은 깨달음을 주고, 나의 앞날을 인도해 주는 선생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 혹은 깨달음을 주게 하는 책을 읽게 되면 다소 실망을 하곤 했는데 데미안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성장소설인데 내가 너무 늦게 읽어서 이 책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많은 의미 부여를 했던 과거를 지나 지금은 책 또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하나의 콘텐츠로 생각하게 된 지금 읽게 된 데미안은 과거의 감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때때로 열쇠를 발견하고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나자신 속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나는 검은 거울 위에 몸을 구부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인제는 완전히 '그'와 같은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그'와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본다. - 293p

 

 

<데미안>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가는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데미안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고독한 성찰과 사유를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과거의 나에게 책이란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나'와 '책'이 함께 성장하는 줄거리는 다소 아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본 데미안은 오히려 그래서 좋게 느껴졌다.

 

싱클레어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데미안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현실에 안주하고 살고 있던 지금의 나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자신이 '선'한 것에 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싱클레어가 정의한 '선'이란, 가족들과 사랑, 그리고 밝고 깨끗한 것들이며, 그와 반대되는 '악'이란, 죽음과 욕망과도 같은 어두운 세계였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 앞에 싱클레어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쓰는 것을 아시지요? - 260p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대목은 데미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아주 유명한 문장이다. 사실 과거의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단순하게 세상의 틀을 부수고 세상을 향해 날아가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이와 같이 내용을 받아들인 것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나에게 이 문장이 조금 더 무겁게 다가왔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작가는 주인공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데미안을 통해 우리, 즉 주인공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결국 알을 깨고 세상을 깬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지금의 나는 이 문장이 이렇게 느껴졌다.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건 알 속에 있는 자기 자신, 즉 새밖에 없다. 그리고 알을 깨기 위해선 어딘가로 날아가기 위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세계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을 누군가가 정해둔 기준대로 바라보는 일이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다 보면, 결국 나의 알은 깨지 못한 채로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작품에서도 계속 보이듯이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일은 고통과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나는 책이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책이란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와 그리고 현재 읽은 이 책에 대한 감상평은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나는 이 책을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승이란 자고로 제자가 닿을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싱클레어가 보는 "데미안" 같다고 생각했다. 싱클레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자, 가고자 하는 방향. 그렇기에 "데미안'에 닿고자 하는 싱클레어의 모습들이 나와 많이 겹쳐 보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알이 있고, 데미안이 있다. 우리도 싱클레어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 알을 깨고 멀리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김예원.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