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 한 남자가 기타와 카세트 라디오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선다. 거대한 조명도, 관객의 환호도 없다. 오직 한 줄기 조명이 남자를 비춘다. 그리고 시작된다.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읊조리듯 노래하는 “Psycho Killer”. 이 소박한 오프닝은 이후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공연의 서막이자, 음악이 어떻게 무대를 점령하고 우리 몸을 감각적으로 흔드는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뉴욕에서 1975년 결성된 ‘토킹 헤즈(Talking Heads)’. 데이비드 번을 중심으로 티나 웨이머스, 크리스 프란츠, 제리 해리슨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펑크의 거칠고 날 것의 에너지, 아트록의 실험성, 아프로비트와 민속 리듬까지 품에 안으며 미국 뉴웨이브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전설의 공연을 담은 콘서트 실황 영화 ‘Stop Making Sense’가 40년 만에 4K 리마스터링되어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왔다. 오는 8월 1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역대 최고의 콘서트 영화”라는 타이틀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연출은 영화 ‘양들의 침묵’의 조나단 드미, 촬영은 ‘블레이드 러너’의 조던 크로넨웨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어떤 서사 영화보다도 더 살아있고, 그 어떤 다큐보다도 더 정제된 감각의 예술이다. ‘Stop Making Sense’는 말 그대로 ‘말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전송한다. 무대, 음악, 조명, 몸짓, 그리고 카메라워크가 유기체처럼 엮여 꿈틀거린다. 관객은 그 흐름에 휩쓸리며 어느덧 논리를 넘어선 몰입 속으로 빨려든다.
이 영화가 독특한 이유는 단지 음악의 퀄리티나 연주의 수준 때문만이 아니다. 공연 자체의 구성 방식이 하나의 ‘서사’처럼 짜여 있다. 첫 곡에서 혼자 등장한 데이비드 번의 연주 위로, 베이스, 드럼, 키보드, 백업 보컬 등 멤버들이 하나씩 무대에 합류하며 점차 음악과 무대의 층위가 두터워진다. 음악이 켜켜이 쌓이면서 마치 무대 자체가 살아나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는 단순한 콘서트 기록이 아닌, 공연이 ‘되살아나는’ 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카메라는 MTV식 편집과 클로즈업을 거부한다. 대신 공연의 리듬에 맞춰 유기적으로 흐르고, 무대의 앞뒤와 위아래를 자유로이 떠다닌다. 이 자유로운 시선은 마치 무대 위의 또 다른 출연자처럼 기능하며, ‘보는 음악’이라는 개념을 완성시킨다. 카메라는 관객을 거의 비추지 않지만, 관객의 에너지는 무대와 공명하며 확실히 느껴진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데이비드 번의 ‘빅 슈트(Big Suit)’ 장면이다. ‘Girlfriend Is Better’ 시퀀스에서 그는 어깨가 과장된 거대한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동시에 익살스럽고도 묘하게 섬뜩하다. 그는 춤을 추기보다 옷에 의해 움직이는 듯 보이며, 사회적 자아, 억압된 감정, 정체성의 과장을 몸으로 체현한다. “큰 옷은 큰 생각을 담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유머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퍼포먼스 그 자체가 철학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또한 일본 전통 무용과 주술적 움직임에서 영향을 받은 데이비드 번의 퍼포먼스는, 그저 독특한 퍼포머로서가 아니라 동시대 불안과 긴장을 신체로 번역하는 예술가의 몸짓으로 다가온다. 그는 리듬을 ‘따르지’ 않고, 리듬을 ‘몸에 새긴다’. 이 몰입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Life During Wartime’에서 반복되는 군무, ‘Once in a Lifetime’의 강박적인 리듬과 현실의 위화감을 되뇌는 가사, ‘This Must Be the Place’의 따뜻하고 기이한 정서. 이 모든 노래들은 각기 다른 정서의 파편들로 공연을 구성한다. 추상적인 가사를 곱씹는 정신적 작용과, 어느 순간 손가락이 리듬을 타는 신체적 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 ‘Stop Making Sense’는 관객의 ‘모든 감각’을 호출하는 공연이다.
이 영화가 콘서트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명력 넘치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연 자체가 시대를 초월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서칭 포 슈가맨’에서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기적처럼 되살아난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 ‘Stop Making Sense’는 바로 그 ‘불멸하는 감각’의 사례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리듬과 몸짓, 불안을 품은 가사와 눈빛 하나가 스크린을 뚫고 오늘의 관객에게까지 도달하는 경험.
극장을 나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도대체 이 공연은 어떻게 40년을 지나도 이렇게 뜨거운가.” 그리고 여전히 박동은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