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Ye)의 Runaway에 담긴 미학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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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Runaway"라고 답한다. 이 곡을 알게 된 후 14년 동안 변함없이 내 최애 곡으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카니예 웨스트(이하 ‘예’)를 처음 알게 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팬으로 있으면서, 이 곡만큼 내게 전율을 주는 노래는 없었다. 죽기 전에 꼭 듣고 싶은 노래들로 구성한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그 리스트의 첫 번째 트랙이 바로 "Runaway"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곡이기도 하다.
예의 "Runaway"는 2010년 발매된 그의 정규 5집 앨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이하 MBDTF)를 상징하는 곡이자, 그의 모든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예가 자신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한다. 9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는 자신의 잘못과 인간관계를 성찰하며,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구원의 주제를 탐구한다. 이 곡은 그의 음악 중 가장 강력한 자아 성찰의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14년 동안 이 곡을 들어오면서, 다양한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역시나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올해 8월 23일에 있었던 내한 공연에서 이 곡을 함께 떼창했던 경험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버킷리스트였고, 실제로 이 순간을 경험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Runaway”가 MBDTF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Monster", "All of the Lights", "Power" 같은 곡들이 더 강렬하고 파워풀했기에 인상적이었고, "Runaway"는 긴 러닝타임 때문에 늘어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의 뒷부분에 담긴 미학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Runaway"는 내게 있어 최고의 곡이 되었다.
지금까지 예의 모든 디스코그래피(미발매곡들을 포함해서)를 들어왔지만, "Runaway"만큼 미니멀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트랙은 없었다. MBDTF 앨범 전체를 좋아하지만, 이 앨범 전체를 분석하기엔 너무 방대하기에 "Runaway"에 집중해서 곡에 담긴 감정, 배경, 가사, 그리고 30분짜리 뮤직비디오의 미학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예찬해보았다.
"Runaway"는 예가 여러 논란을 겪으며 만들어진 곡으로, 특히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와의 사건으로 큰 비난을 받은 이후 그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이 곡은 그의 행동과 그것이 주변에 미친 영향을 자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흔히 보여주던 자신감 넘치고 화려한 모습과 달리,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첫 가사부터 예는 ‘망할 놈들, 개자식들, 쓰레기들에게’ 건배를 제안하며,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자신이 ‘악당’임을 수용하면서 변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Run away"는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하는 자아 파괴적 외침으로 들리는데, 이는 그들을 상처 입히게 될 자신을 미리 인정하고 그 전에 떠나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 곡은 자아 성찰, 후회, 구원을 갈망하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는 이 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관계에서의 실패, 명성, 자아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다. 감정을 담은 가사와 몽환적인 사운드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과 파괴적인 패턴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해 결함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건배이자 인간 존재의 가장 좋은 면과 나쁜 면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복잡한 서사.
“Let's have a toast for the douche bags”
"Runaway"의 사운드가 놀라운 점은 미니멀리즘과 웅장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곡은 반복되는 피아노 음으로 시작해, 전체를 통일된 분위기로 이끌며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상징적이지만 단순한 멜로디 위에 폭발적인 드럼 비트와 왜곡된 보컬이 더해지며, 카니예의 내면의 혼란을 반영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Outro이다. 곡이 점점 고조되다가, 오토튠으로 왜곡된 카니예의 목소리로 마무리된다. 이 비가사적인 보컬은 그가 감정에 휘말리며 자아가 흐려지는 순간을 표현하며, 감정적 해방과 아련한 여운을 남기면서 곡이 끝난다.
또한, 이 곡에는 푸샤티(Pusha T)가 참여해 그의 차갑고 무관심한 랩이 카니예의 감정적인 고백과 대조를 이룬다. 푸샤티는 사치와 감정적 거리감을 주제로, 성공과 명성 뒤에 숨겨진 공허함을 드러내며, 그의 가사는 예의 내적 성찰과 상반되면서도, 관계를 희생하며 얻은 성공의 허망함을 강조한다.
한편의 예술 영화와 같은 35분짜리 뮤직비디오
예의 "Runaway"는 곡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직접 감독한 이 뮤직비디오는 35분 길이의 단편 영화로, 곡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강화한 작품이다.
예가 연기한 그리핀(Griffin)이 영국의 모델 세리타 에벵크스(Selita Ebanks)가 연기한 지구에 떨어진 불사조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핀은 불사조를 인간 사회에 적응시키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사회의 편견과 비판에 부딪힌다.
영화는 화려한 만찬 장면에서 절정에 이르며, 이 장면에서 불사조는 비하적인 발언과 미묘한 차별을 견디는 과정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상징적인 춤 시퀀스는 곡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사회적 배척과 고립, 그리고 사회적 기대가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불사조는 신화적 존재로, 예 자신이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자유롭고 길들여지지 않은 영혼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곡의 힘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이고 사유를 자극하는 반주곡처럼 기능을 했다.
"Runaway"의 진가는 라이브 공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소리만으로도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예는 공연 중간중간 피아노 건반 소리로 장난을 치며 관객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드디어 'Runaway'가 나오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예의 거의 모든 라이브 영상을 다 봤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브 영상들을 모아보았다.
01. 2010 MTV VMA(Video Music Award)
지금은 유튜브에서 볼 수 없는 전설적인 "Runaway" 영상이다. 예는 2010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Runaway"를 최초로 공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빨간 셋업 슈트를 입고 홀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무대의 발레리나들과 대조를 이루며, 곡의 시각적 깊이를 부각시켰다. 이 공연은 대중의 비난을 딛고 예가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남았다.
02. Coachella 2011
내한 공연 이전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Runaway" 공연 영상이다. 2011년 코첼라 공연에서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댄서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03. Free Larry Hover Concert
“Runaway"는 한창 그가 전성기일 때 공연의 단골 노래였다. 따라서 다양한 영상들이 있고 물론 ‘Yeezus Tour’ 때의 “Runaway" 영상들도 멋있지만 나에게 있어 인상깊었던 라이브 영상은 2021년도 드레이크와 함께 공연한 ‘Free Larry Hover’ 공연의 일환으로 펼쳐진 “Runaway" 영상이다.
무대 연출도 역대급이었지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로 가사를 개사했다는 점이다. 이혼한 상태였던 전 부인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을 향하는 의미를 담은 듯이 기존의 가사가 아닌 “I need you to run back-back to me” 와 같이 “Run right back to me”를 연신 불렀다.
04. ¥$ Vultures Listening Experience Korea
그리고 대망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이브 영상이지만 실제로 직관한 올해 내한 공연에서 “Runaway" 영상이다. 물론 다른 영상들보다 길이는 현저히 짧다. 왜냐하면 내한 공연 때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훑어야했기 때문. 하지만 이정도도 충분하다. 그저 내가 이 순간에 있었다는거 자체가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관련 영상들을 보면 이 때의 전율이 느껴진다.
인상적인 댓글이 생각난다.“한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Runaway"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예의 가장 상징적인 곡 중 하나이자, 그의 자아 성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음악적 혁신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은 감정적 요소 때문이다. 힙합이 주로 자신감을 강조하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카니예는 자신의 결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를 직면하는 과정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으며, 누구나 실수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Runaway"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예가 예술가로서의 복잡성을 온전히 수용한 순간을 상징하는 곡이다. 음악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깊이 있는 이 곡은 현대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예술성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예는 분명 논란의 인물이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나조차도 한동안 그를 혐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글은 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적인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작성한 것이다.
“Runaway Fast As You Can.”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듣고 있다.
언제 들어도 비트가 드롭될 때의 쾌감은 최고다.
[노세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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