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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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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 첫 정규 앨범이 공개되었다. 한 줄로 감상평을 정리하자면 “제니는 랩을 진짜 잘하고, 비트는 깔끔하고 담백하며, 이번 앨범은 반드시 좋은 음향기기로 들어야 한다.”이다.

 

선공개곡이 무려 4곡이나 되었지만, 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15곡이 꽉 채워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트랙이 2분 30초 이상이라는 점에서도 앨범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었다.

 

요즘은 들을 음악이 넘쳐나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1번 트랙부터 끝까지 통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선공개곡들의 퀄리티가 워낙 뛰어났기에 다른 트랙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고, 제니가 어떻게 전체 앨범을 구성했는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힙합은 흑인 음악에서 시작된 만큼, 흑인 래퍼들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그루브와 탄력적인 톤, 쫀쫀한 플로우를 아시아계 래퍼가 완벽히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흑인 래퍼들도 제니만의 독보적인 톤을 구현할 수 없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흑인 래퍼들 사이에서도 제니의 톤은 단연 돋보인다. 하이톤도, 로우톤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특유의 음색으로 랩과 보컬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이번 앨범을 통해 힙합씬에서 자신의 포지션과 색깔을 더욱 확고히 했다고 본다.

 

 

 

전체적인 감상평


 

우선, 솔로 앨범에 15곡을 꽉 채웠음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이는 제니가 랩부터 보컬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올라운더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곡마다 완급 조절이 뛰어나고, 비트 또한 자기복제 없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또한, 제니의 톤 자체가 쨍하거나 무겁지 않아 비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듣기에 편안했다.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비트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Mike WiLL Made-It과 Dem Jointz 같은 유명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지만, 네임밸류에 의존하기보다는 사운드 자체를 담백하고 깔끔하게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과하지 않은 비트에 탄탄한 베이스가 더해져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담백한 느낌을 주었다. 기존 YG 스타일에서 종종 들리던 과한 트럼펫 소리나 너무나도 뻔한 불필요한 브릿지, 과장되고 반복적인 유치한 추임새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유지한 점도 좋았다.

 

최근 발매된 리사의 앨범과 비교하자면, 리사의 앨범은 “나 진짜 락스타야.” “나 완전 힙합이야.” “나 엄청 멋있어.” 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이 과하게 들어가다 보니, 앨범을 들으며 톤과 플로우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반면, 제니는 힘을 완전히 빼고도 특유의 톤으로 압도해버렸다. 랩을 할 때는 간결하게 치고 나가고, 보컬에서는 눌러주면서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완급 조절이 뛰어났다. 여성 래퍼들은 보통 자신의 고유한 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 제니는 톤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곡마다 새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독보적이다.

 

 

 

트랙별 감상평


 

이번 앨범을 나만의 기준으로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나누어 보았다.

 

 

초반부 (1~5번 트랙)

 

 

 

인트로부터 FKJ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아기자기하게 시작되다가, 드럼이 들어오면서 촘촘하게 빌드업되는 과정이 일품이었다. 1번 트랙으로서 앨범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확실히 해냈다고 본다.

 

2번 트랙부터는 본격적으로 몰아치는 느낌이 강했고, 재치 있는 트랙들이 이어졌다. 특히 *With the IE (Way Up)*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일단 제니가 랩을 너무 잘한다. 그리고 제니퍼 로페즈의 Jenny from the Block을 샘플링한 것으로 보이는데, ‘Jenny’라는 이름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 곡을 선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센스가 돋보였다.

 

 

중반부 (6~9번 트랙)

 

 

 

선공개곡들이 연달아 배치된 점이 흥미로웠다. 앨범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면서도, 제니의 강렬한 톤과 유려한 플로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들로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특히 'ExtraL' 트랙에서 도치에 밀리지 않고 꽉꽉 사운드를 채운게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Zen에서 완급 조절을 하며 깔끔하게 정리하는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후반부 (10~15번 트랙)

 

 

 

10번 트랙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전환되며 BPM이 확 낮아졌다. 후반부에는 어쿠스틱한 트랙들을 배치해 앨범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 어쿠스틱한 트랙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후반부에서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중반부까지 강렬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이대로 15곡을 끌고 가면 다소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

 

특히 ‘Filter’가 인상적이었다. 박자를 어떻게 쪼갠 건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면서 속된 말로 런웨이에 어울릴 법한 세련된 느낌을 만들어냈다.

 

또한 ‘Starlight’의 나레이션이 신선했다. 자칫하면 오글거릴 수도 있었겠지만, 영어 가사 사이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한국어 나레이션 덕분에 오히려 신선하고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마지막 트랙까지 서정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되면서 잔잔하게 앨범이 끝났다. 그리고 1번 트랙으로 다시 돌아가도 전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앨범 전체를 반복 재생해도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피쳐링에 잡아 먹히지 않았다


 

피처링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처링에 ‘잡아 먹히지 않아서’ 좋았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피처링에 참여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메인 아티스트가 피처링에 가려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지드래곤의 이번 앨범 히트곡 'Too Bad'에서는 앤더슨 팩의 존재감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후렴까지 맡다 보니 곡의 중심이 앤더슨 팩에게 쏠려버렸다. 그의 음색이 천상계 수준이라 지드래곤과의 대비가 더욱 도드라졌고, 결과적으로 트랙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지디의 색깔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리사의 화제작 'FXCK UP THE WORLD'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퓨처가 등장하자마자 곡의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해버려서, 결국 리사보다 퓨처만 기억에 남았다. 물론 리스너 입장에서 퓨처의 목소리를 듣는 건 반가웠지만, 톤 차이가 너무 극명하다 보니 오히려 퓨처의 곡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제니는 이번 앨범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존재감이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피처링 아티스트들과의 조화가 뛰어나면서도, 제니의 개성이 선명하게 살아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르 정의하는 것이 무의미한 앨범


 

그래서 ‘RUBY’라는 앨범의 장르를 과연 정의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애초에 특정 장르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운드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앨범을 과연 ‘힙합’이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 아티스트가 이 정도의 세계적인 퀄리티를 가진 앨범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감격스럽다. 단순히 음악적 완성도를 넘어,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멋’까지 갖춘 진정한 올라운더가 바로 제니다. 음악은 물론이고, 퍼포먼스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앨범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미 후보에라도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만약 그래미 후보에 오른다면, 다시 그래미를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뛰어난 사운드, 개성 있는 톤, 탄탄한 프로덕션이 조화를 이루며 제니만의 확고한 색깔을 완성했다.

 

이번 앨범이 시상식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하며, 앞으로 제니가 어떤 방향으로 더 성장하고, 세계 무대에서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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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나른
제니 팬으로서 이번 앨범 존재 자체가 감격스러운 와중에 반가운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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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 11:06:5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