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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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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 속 촬영지를 찾아다니길 좋아한다. 영화 속에 담긴 모습과 실제 감각으로 와닿는 공간의 동질감, 혹은 이질감. 그 똑같으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 주는 오묘한 감정이 좋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4일 감상했던 영화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마치 ‘내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바로 지금, 내가 앉아있는 극장이 주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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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들>(2026.03.18. 개봉예정), 연출: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광화문 씨네큐브의 25주년을 기념해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엮은 시네마 앤솔로지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탈주>(2024)의 이종필 감독, <우리들>(2016), <세계의 주인>(2025)을 제작한 윤가은 감독, <한국이 싫어서>(2023)로 익숙한 장건재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는 지난 2025년 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크게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으며, 이번 달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24일,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씨네큐브는 개봉 전 시사회를 앞두고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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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 광화문은 2000년 12월 개관하여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술 영화관이다.

 

지난 2024년 8월, 영화 <리볼버>의 씨네토크에 참여하며 처음 방문했던 이래로, 나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곳을 찾았다. 고향인 부산에서 소위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극장이 ‘영화의 전당’이었다면, 서울에서는 씨네큐브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영전처럼 광활하고 웅장하진 않지만, 도심 한 가운데에 피어 있는 예술영화관은 그 자체로 반갑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이러한 극장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시간들에 대해 저마다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첫 번째 이야기, <침팬지>: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내가 읽었던 침팬지 이야기는 모두 진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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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종필, 출연: 김대명, 원슈타인, 이수경, 홍사빈

 

 

2000년 광화문, ‘고도’는 새로이 개관한 예술영화관에 가게 되고, 이내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영화광이라는 공통점으로 뭉친 고도와 제제, 모모는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고도는 오래된 책방에서 침팬지에 관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 침팬지의 이야기는 유독 고도의 마음을 이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25년, 영화감독이 된 고도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 제제, 모모와의 인연과 그 시절 자신이 깊은 감명을 받았던 어느 침팬지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내가 읽었던 침팬지 이야기는 모두 진짜였을까?’ 고도는 영화를 통해 대답 없는 메아리, 오로지 남겨진 자신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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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 <침팬지>는 흘러간 것과 남겨진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흐름과 인연의 변화는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담아내야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극장은 시간을 붙잡아두는 마법의 공간이다. 25년이 지난 뒤에도 변치 않고 남은 극장은 늘 그래왔듯, 고도의 영화를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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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도가 그저 필연에 의해 세 영화광의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고 분명 어딘가 존재했던 침팬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 혹은 추억은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지만 때로는 퇴색되고, 왜곡된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검증은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절이 내게 남긴 이야기 그 자체이니까.

 

 

 

두 번째 이야기,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영화를 완성하는 작은 고군분투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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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가은, 출연: 고아성 외

 

 

무더운 여름날, 어린이 배우들은 함께 어울려 노는 장면 연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감독은 계속해서 ‘더 자연스럽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한다. 카메라가 있는데 어떻게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장면에 미소가 피어나다 가도,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주문하는 감독에 관객인 나조차 혼란에 빠지고 만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뭘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린이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연기에 임한다.

 

영화는 최고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함께 고군분투하는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스크린 너머 현장의 숨소리를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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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는 밝고 쾌활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잔상처럼 남았던 <극장의 시간들> 두 번째 단편이다.

 

감독의 컷 사인을 듣지 못해 천방지축 달려가고, 서로 장난을 치다 딴 곳으로 새 버리는 어린이 배우들의 여느 또래들과 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레디 액션’ 소리에 연기에 몰입하는 모습, 감독에게 ‘촬영장에는 엄마가 오지 않는 게 편하다’며 촬영의 고충을 털어놓는 모습은 장하고 대견스런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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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뒤 편 촬영 현장의 현실적인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 생경한 감각의 영화였다.

 

특히 반전 아닌 반전으로 실제와 연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듯한 착시를 주는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액자형 구성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감독의 재치에 미소 짓게 되었다.

 

공들여 만든 자연스러움이라는 아이러니.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세 번째 이야기, <영화의 시간>: 영화, 그리고 극장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닿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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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건재, 출연: 양말복, 장혜진, 권해효, 김연교, 이주원, 문상훈

 

 

‘이 영화는 2025년의 가장 무더운 날 촬영하였습니다.’

 

세 번째 단편 <영화의 시간>은 우선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마치 앞으로 보여줄 우연한 하루에 대한 예고편처럼. 앞선 두 이야기 모두 제 각각의 방식으로 여름 분위기를 물씬 풍겼지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도 담백하게 어느 여름날을 묘사한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한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긴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눌러 쓴 ‘영화’는 오랜만에 고향인 서울 광화문을 찾았다. 그곳의 씨네큐브에서 영화는 우연히 청소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동창 ‘우연’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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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간>의 가장 사랑스러운 지점은, 두 여고 동창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는 문장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우연’이 선물한 ‘영화’의 하루”. 영화는 단 한 편의 시간을 위해 흐르는 극장 사람들 모두의 하루를 조명한다. 무뚝뚝한 영사기사, 밝고 붙임성이 좋은 매표소의 극장 매니저, 그리고 청소 노동자. 주인공 영화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한 공간에 들어선다.

 

영화는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마주본다. 우리는 금새 낯설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리는 그녀와 우리 스스로를 동일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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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연이 선물한 표로 극장에 들어간 영화는 그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 마감 청소를 위해 우연이 다가와 깨울 때까지 깊이 잠들어버리고 만다.

 

‘나도 저렇게 영화를 보다 깜빡 잠든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한번쯤은 경험했을 순간이다. 영화를 보다 잠들게 되면 왠지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보는데 잠에 드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또 때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눈을 떠 열심히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연은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영화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잠 오는 영화였던 것인지, 영화의 하루가 무더위에 지쳐 고단했던 것일지, 혹은 둘 다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내 애틋한 눈빛으로 영화를 바라보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건물을 나가는 우연을 통해, 나는 모든 것을 떠나 우연의 하루는 그저 영화의 존재만으로도 특별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 우리의 평범한 하루 역시도 영화를 통해 잠시 특별함으로 물드는 것 같다.

 

어쩌면 주인공 영화의 이름이 영화인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Cinema’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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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간>은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우연한 ‘영화’ 자체에 대한 러브레터이다. 그리고 영화의 시간으로 안내하는 특별한 공간인 극장을 완성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깜빡 단잠에 들어버린 관객도, 심지어 영화 시간을 놓쳐 발을 동동 구르는 관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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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가 끝나고 나가는 길, 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둘러보고 서성인다. 좀 전까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공간이다. 나도 모르게 에필로그에 등장했던 영사실을 슬쩍 바라본다.

 

<영화의 시간> 속 문상훈 배우가 잠들어 있던 의자의 한 켠에 기대 앉아 매표소의 전경을 시선에 담는다. 극장이라는 일상적 공간이 사실은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인지, 왜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지.

 

새삼 깨닫는다. <극장의 시간들>은 감독과 배우, 스태프, 매표소 직원과 영사 기사, 청소 직원과 관객, 채 호명하지 못한 극장의 모두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극장 그 자체를 향한 찬사였음을.

 

그렇기에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는 ‘꼭’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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