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13억이 생겼을 때 달라지는 것 –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드라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여유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by 윤선주 에디터
2026.10.05 14:30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만약 당신이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무얼 먼저 하고 싶은가.

       

      일단 집부터 사볼까. 남은 돈은 예금에 넣어 이자를 받을까. 건물을 사서 세를 놓을까. 그러면 사직서를 던지고 갑갑한 직장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며 우리는 로또를 산다.

       

      로또 1등 당첨금의 실수령액은 평균 14억 원. 그 돈으로는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사기에도 빠듯하다. 연 3% 정기예금에 넣더라도 세금을 제외한 이자는 월평균 290만 원 정도. 우리의 막연한 상상과는 다르게, 로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 로또에 당첨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출근해야 한다.

       


      포스터1.jpg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주인공 공은태도 로또에 당첨되자 ‘퇴사부터’ 떠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성실함으로 팀장까지 빠르게 승진했지만, 그의 회사 생활은 여전히 고되다. 어린 팀장이라는 이유로 다른 팀장들은 기피하는 어려운 일을 떠맡아야만 했고, 겨우 실적을 내는가 싶으면 잘하던 일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고 팀원들에게는 무시당하는 힘없는 팀장. 그러니 그는 로또 당첨을 확인하자마자 차장의 얼굴에 사직서를 내던지는 상상부터 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당첨금으로 무엇이든 해야만 할 텐데, 그는 13억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에게 직장은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업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선택


       

      “그동안은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해줬으니까 요만큼은 제 방식대로 해보려고요. 뭐 그래봐야 잘리기밖에 더 하겠어요?”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참고 살았던 그는 자신을 무시하던 팀원에게 처음으로 화를 낸다. 상사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범하게 모험도 해본다. ‘그래봐야 잘리기밖에 더하겠냐’라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오히려 일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지금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유혹적인 스카우트도 “죄송하지만 돈은 저도 있습니다”라며 덤덤하게 걷어찰 수 있다. 그는 회사를 ‘뒤집어보겠다’라는 마음으로 신이 나서 일한다. 그 달라진 태도 덕분에 영업 5팀은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을 이뤄낸 팀이 되었다.

       

      은태의 집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다. 노력에 따라 위로 올라갈 수도, 여차하면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환경이기에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그는 여전히 아등바등 살았다. 한 번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 그래서 그는 늘 무난한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로또에 당첨됐다고 해서 그의 능력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13억의 여유뿐이다.

       


      공팀장 스틸컷 2.jpg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실패해선 안 된다는 압박감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계약직 사원 이지혜는 5팀에 합류한 장향은 대리의 부탁으로 보고서를 만든다. 장 대리가 원하는 것은 업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서류작업이었지만, 지혜는 식사도 거르고 밤을 새워가며 보고서를 만든다. 지혜에게 주어진 근무 기간은 1년. 그 짧은 기간 안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만 하는 불안정한 위치이기에 지혜는 서류작업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며 애쓴다.

       

      드라마를 볼수록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지혜가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은태는 13억이 인생을 바꿀 정도의 돈은 아니라고 했지만, 지혜에게는 다를지도 모른다.

       

      지혜의 월급은 2백만 원. 1년 뒤에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연봉 7천만 원을 받는 정직원 은태와 비교한다면 13억이 주는 안정감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13억은 지혜에게 어떤 기회를 줄까. 지혜는 로또에 당첨되어도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출근을 할까. 지금의 일은 지혜에게 그만큼의 보람과 의미가 있을까. 좋은 팀원들에게 일하는 맛을 배워가고 있으니 어쩌면 지혜도 은태처럼 출근할지도 모르겠다.

       

       

      이지혜 사원.jpg

       

       

       

      로또 1등이어도 출근을 하려면


       

      중국지사 근무 시절 향은은 ‘사내 비리를 고발하면 회사 다니기 힘들어질 거’라며 협박하는 부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부장님은 일을 왜 하세요? 저는요. 나이 먹고 나니까 하는 게 일밖에 없어요. 취미도 없고 운동도 잘 안 해요. 저 근데요. 그 일이 후지면 저도 후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후지기 싫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낸다. 장 대리의 말처럼, 일이 후져지면 나까지 후져진다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그 후져짐을 견뎌내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에서 생계를 걷어낼 수 있게 되면 일하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은 로또에 당첨되고 나서도 하고 싶은 일인가. 나를 소진시키거나, 후지게 만드는 일인가. 후지더라도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인가. 그렇다면 이 후진 일을 견디고 있는 게 정말로 나를 위한 선택인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후지게 일하고 싶진 않은 마음. 일에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매일의 출근이 고통스럽지 않고 일할 맛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즐겁게 살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여전히 하고 싶을 그런 일을 지금 하고 있다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축복이다.

       

       

      로또1등 스틸컷.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윤선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위해 씁니다.

      윤선주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여성의 결혼은 왜 비즈니스가 되었을까 - 제인 오스틴의 '설득' [도서/문학]
      2. 02 [Opinion] 에세이 왜 읽는지 모르겠다고요? - 편집자 이연실의 '에세이 만드는 법' [도서]
      3. 03 [Opinion] 관음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 맨 끝줄 소년 [도서/문학]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