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치즈와 블루베리 잼을 활용한 토스트 레시피가 ‘전 남친 토스트’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널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 남자친구가 만들어 주었던 토스트가 너무나 맛있었던 나머지, 헤어진 뒤에도 그 레시피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담은 한 커뮤니티 게시글이 여기저기 공유되며 자연스레 그 레시피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이후 해당 게시글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이 이루어진 듯 보이는 편의점 제품까지 출시되었으니,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해 볼 만하다.
만약 이 레시피가 처음부터 단순히 ‘블루베리 크림치즈 토스트’라는 이름으로 공유되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특정 대상에 대한 인상 혹은 감흥은 때때로 우리가 그 배경 서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기도 한다. 조금은 뻔한 이야기다. 안타까운 개인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평소 까칠한 성격 탓에 싫어했던 그 사람도 조금은 달리 보이고, 이전에 어떤 불상사가 발생했는지를 알고 나면 마냥 불합리한 것으로만 여겨지던 법이나 규칙들도 꽤 그럴듯해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듣는 음악 역시 이러한 서사에의 종속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음악들은 그 배경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한 방식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버벌진트 [누명]
2008년에 발매되어 국내 힙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버벌진트의 [누명]은 처음부터 정규 앨범으로서 기획된 작품은 아니었다. 당초 버벌진트는 [누명]을 자신의 정규 1집 [무명]의 수록곡들을 재구성한 트랙들이 담긴 리믹스 앨범의 형태로 구상했으나, 당시 자신에게 쏟아지던 일부 힙합 팬들의 원색적 비난과 루머 형성에 크나큰 회의감을 느낀 나머지 기존의 계획을 대폭 수정하기에 이른다. [누명]을 본인의 거대한 서사를 담아낸 하나의 정규 앨범으로 기획하는 동시에, 해당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규 음반을 발매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은퇴 선언까지 덧붙인 것이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어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상징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앨범은 그렇게 탄생했다. [누명]의 표면적 메시지는 일견 당시 힙합 신(scene)에 대한 거대한 회의감과 냉혹한 분노에 치중되어 있는 듯 보이나, 이 앨범의 진가는 그러한 혹독함 뒤에 숨겨진 한국 힙합을 향한 그의 짙은 애정과 오랜 시름을 온전히 직면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가 과연 어떠한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을지 헤아려 보며 이 앨범을 들을 때, [누명]이 선사하는 감정적 울림은 더욱 견고해진다.
250 [뽕]
2022년은 모름지기 250의 해였다. 그해 가장 주목도가 높은 신인이었던 뉴진스의 메인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단단히 각인시킨 것은 물론, 일렉트로닉 장르의 첨단과 뽕짝 사운드의 이상적인 융화를 꾀한 희대의 역작 [뽕]을 발매함으로써 국내외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중음악 전반을 관통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모두를 매료시키는 데 성공한 [뽕]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을 넘어 우리나라 음악사의 중대한 ‘사건’으로서 기록되어 마땅한 앨범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걸작의 탄생 뒤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250이 직접 우리나라 ‘뽕’의 기원과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동묘 악기 시장, 춤 교습소, 전국 각지의 축제 등 다양한 현장을 찾으며 뽕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 존재하는지 진지한 자세로 고찰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서사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뽕]은 뽕에 대한 한 남자의 오랜 존중과 집념이 낳은 기나긴 여정의 위대한 종착지였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 채로 이 앨범에 다시 귀 기울여 본다면, 어째서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뽕]에 열광했는지 새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포딕 [다 해줬잖아]
AI를 활용한 창작을 둘러싼 여러 논란들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대중음악 분야 내에서 AI가 이미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특정 인물의 목소리를 활용한 커버곡부터, 본인이 직접 작성한 가사에 매력적인 멜로디를 덧붙인 각종 창작곡까지, AI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양한 음악들의 공급 및 소비는 지금도 다수의 온라인 플랫폼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AI 열풍의 기저에는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I 창작곡 ‘다 해줬잖아’의 유행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해도 커다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유튜브 1,000만 조회수 돌파부터 수많은 패러디의 양산, 문체위 국정감사 내 참고 자료로서의 소개 및 그로 인한 언론 보도까지, 지난해 ‘다 해줬잖아’는 단순한 인터넷 밈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다 해줬잖아’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무엇보다도 원색적인 가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선사하는 청각적 재미에 있겠지만, 해당 곡이 한 온라인 게임 내 운영상 이슈로 인해 발생한 일부 이탈 고객들의 한을 담은 해학적 유머에서 출발한 곡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 의미가 마냥 가볍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다 해줬잖아’는 한때 본인들의 소중한 여가 혹은 유희였던 게임을 잃어버린 이들의 분노와 슬픔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일종의 저항가와 같은 노래였다. 실존 인물을 활용한 딥페이크 합성, 경우에 따라 다소 지나치게 다가올 수 있는 비속어의 남용, AI 기반 창작 과정 본연의 저작권 이슈 등 여전히 많은 논쟁거리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다 해줬잖아’가 이 시대 민중가요의 새로운 흐름과 작법을 제시했음은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그저 한시적 인터넷 밈이나 휘발성 유머로 치부하기에는 이 곡이 가지는 의의가 너무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