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아티스트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다 - 김세정 'Top or Cliff' [음악]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김세정의 정규 1집 앨범 [문門]
글 입력 2023.11.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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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원피스를 피로 붉게 물들인 채 상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한 여성, 그녀는 자신의 편 하나 없는 이 대저택 속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간다.

 

대체 그녀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김세정 정규 1집 [문門]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0-2. 앨범 커버 (LOCK & KEY).jpg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리즈와 뮤지컬 [레드북]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K-POP 아티스트 김세정이 지난 9월 4일 첫 정규 앨범 [문門]으로 컴백했다. 이는 2021년 발매된 미니 앨범 ‘I’m’ 이후 무려 2년 5개월만의 컴백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를 사로잡았다. 총 11개의 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은 김세정이 전곡 작사, 9개 곡 작곡에 참여했으며 지난 9월 11일 아티스트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앨범 제작 비하인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0. 컨셉 포토 2.jpg

 

 

이때, 그녀는 두 가지 상반된 테마로 진행되는 이번 앨범이 팬들에게 다채로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임을 자신 있게 언급한다. 나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깊은 감정과 이야기를 다룰 ‘모든 것을 감추는 문(LOCK)’과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도전과 여정을 풀어낼 ‘모든 곳으로 향하는 문(KEY)’이 바로 그것이다.

 

 

0-3. LOCK ver. 컨셉 포토.jpeg

 

 

그 중 첫 번째 테마인 ‘모든 것을 감추는 문(LOCK)’에 해당하는 트랙리스트 6번 ‘Top or Cliff’는 R&B POP 장르의 곡으로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이다. 이는 김세정의 나른하면서도 짙은 보컬과 멜로디 라인의 변주가 적절히 어우러져 듣는 이에게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0-4. [Black Swan] 포스터.jpg

 

 

이어서, 타이틀곡 ‘Top or Cliff’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곡이 2011년 개봉한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 [Black Swan]을 모티브로 삼았음을 살펴봐야 한다.

 

영화 [Black Swan]은 타인의 강요와 억압 속에서 결국 완벽함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발레리나 니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니나는 새롭게 해석된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연약하면서도 순수한 백조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의 1인 2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녀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부담감에 점차 정신적으로 피폐해져만 간다.

 

니나를 통해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평생 그녀를 통제하는 어머니의 강요와 단장의 끝없는 질책,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신입의 등장 등의 요인으로 인해서 말이다. 영화의 끝에서 니나는 완벽한 흑조의 모습을 연기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끝내 스스로를 칼로 찔러버리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한마디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완벽히 수동적인 존재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Top or Cliff' M/V (2023.09.04.)


 

1-4. 뮤비 합본.jpg

 

 

영화의 서사를 토대로 ‘Top or Cliff'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와 주제를 살펴보자. 뮤직비디오는 고급 리무진에서 내려 수많은 하인들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으면서 대저택으로 입성하는 김세정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녀를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였던 하인들은 CCTV를 달아 둔 듯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종국에는 그녀를 처리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이에 김세정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드레스를 찢으며 직접 총을 들고 그들과의 전투에 들어선다. 이처럼 실감나는 전투 장면은 상대적으로 긴 7분 분량의 뮤직비디오를 마치 한 편의 느와르 영화처럼 만들어 곡의 몰입도를 더욱 극대화한다.

 

놀랍게도, 마지막 적을 죽이는 장면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닌 나 자신의 깊은 내면 속 갈등을 담아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불타는 대저택을 뒤로 한 채 ‘닫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그녀의 모습으로 뮤직비디오는 마무리된다.

 

 

5. 트랙리스트.jpg

 

 

김세정의 인터뷰에 따르면, 뮤직비디오 속에서 실질적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특정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는 의심과 경계를 보이다 결국 주위의 모두를 적으로 돌리기에 이른다. 이후 김세정은 결말에서 극적인 반전을 통해 ‘사실 절벽으로 나를 내몰고 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영화 [Black Swan]의 스토리를 활용해 '정상에 서고자 평생 자신을 절벽으로 내몰던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부여한 것이다.


본래 ‘Top or Cliff’는 앨범 제작 초기에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을 것을 우려한 김세정이 앨범 수록을 강력히 반대했던 곡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 검열’을 주제로 단순히 섹시하기만 한 곡이 아닌 ‘걸크러쉬’한 분위기를 가미하는 방안을 택하면서 그녀는 곡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다. 이를 통해 새로운 컨셉에 도전할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김세정의 모습은 그녀가 한층 더 확장된 음악적 스펙트럼을 지닌 아티스트로서 당당히 성장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주제를 비롯해 ‘아티스트와 대중의 관계’를 중심으로 타이틀곡 ‘Top or Cliff'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다뤄보고자 한다.

 

 

 

1. 내면의 어둠을 대하는 태도: 회피하려는 자아와 직면하려는 자아의 갈등


 

MV 스틸컷 1(2).jpg

 

 

먼저, 뮤직비디오 초반 대저택 안으로 입성하는 김세정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또 다른 김세정'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는 곡의 시작에서부터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주제를 암시하는 핵심적인 요소이자 일종의 복선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대저택은 ‘오직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내면’을 의미하며 자신을 배신하고 죽이려 드는 저택의 하인들은 내면의 불안, 두려움, 초조함과 같은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파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저택 속으로 입성하는 김세정은 ‘어두운 감정을 직접 대면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아’의 표현이며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녀와 싸움을 벌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또 다른 김세정은 ‘내면의 불안을 애써 감춰두고 묵인하려 드는 회피형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해 보았다. 

 

물론, 뮤직비디오의 결말에서 대저택을 불태운 뒤, 즉 회피형 자아에게서 승리한 후의 김세정의 표정은 마냥 후련하거나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이는 이것이 그저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우리가 우울과 불안을 해소했다고 해서 그 감정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또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켠 뒤 이 순간을 털어내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길 결정한다.

 

 

 

2. Love & Hate, 이 양가적인 감정을 감수해야 할 K-POP 아티스트의 숙명


 

추가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치열한 전투 중 그녀가 유일하게 죽이지 않은 존재인 ‘여자아이’이다. 김세정은 자신을 쫓는 하인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에서 손에 총을 들고 구석에 웅크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한 ‘여자아이’를 마주한다. 이때, 그녀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그저 손에서 무기를 거둬내며 마치 위로하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후 뮤직비디오 중반부에서 모두가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는 상황임에도 홀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히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은 그녀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야기한다. 

 

이에 개인적으로 해석해본 바를 전하자면, 아이는 ‘혼란한 내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한 줄기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즉, 그녀가 어둠에 침잠되지 않고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감정의 씨앗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부서져 보기는 했니

난 너완 달라

찢기고 깨져 여기 남아 있어

 

 

이때, 여자아이를 영화 [Black Swan] 속 백조와 같이 김세정의 '순수한 유년 시절 자아'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함께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와 직결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K-POP의 위상이 무엇보다 높아진 현재, 미디어와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위치는 팬들로부터 사랑만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제3자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받고,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들로부터 근거 없고 무분별한 비난에 시달리기도 하는, 가혹한 굴레에 놓인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애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며 아픔의 깊이를 실감한 여인이 곧 같은 길을 걷게 될 과거의 자신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Look, I deserve it

그 어떤 누가 와도 난 증명해 I’m sure

너의 그 약한

손짓 따윈 닿지 않아 내겐, that’s right?

 

 

7. MV 스틸컷 2.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Top or Cliff’의 주제는 단순한 ‘자기 연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상처 입고 지쳐 쓰러질 것 같더라도, 그러한 운명에 굴복하기보다 자신을 둘러싼 편견과 억압을 깨뜨리는 굳은 의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절벽에 내몰린 상황조차 자신이 당당히 정상에 설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기회로 바꾸는 모습, 이것이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활로를 개척해 나갈 김세정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박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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