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혜정 님!
서간문을 연재하기로 하고 마침내 글을 쓰는 지금까지 하루 구석구석에 혜정 님이 계셨답니다. 순전히 ‘재밌겠다’는 단순한 감정으로 도전한 일이었는데요. 만난 적도, 대화한 적 없이 서로 쓴 글만 읽고 편지를 쓴다는 게 이토록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일 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펜팔을 주고받던 기분이 이런 걸까요?

혜정님의 글을 읽으며 저희 둘의 벤다이어그램을 그려보았어요.
혜정님과 저는 관심사를 이루는 교집합이 매우 좁아요. 에디터, 아트인사이트. 그 정도예요. 같은 플랫폼에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스쳐 지나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 점이 서운하기보다 신기했어요. 서로 다른 원 안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니까요.
혜정 님의 글들을 읽으며 받은 첫 인상은 '자신의 세계에 이름을 붙이는 데 공을 들이는 신중하고 꼼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또한 저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넓고 얕은 사람'이라 여기거든요. 꼼꼼하기보단 털털하고 호기심이 커서 이곳저곳에 흥미가 많은 저는,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디터'라는 직업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문득 마음 한편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나는 단 한 부분이라도, 그녀처럼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끝까지 파고들어 본 적 있던가.’ 특히 에이펙스 트윈에 관한 글을 읽을땐 묵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애정하는 음악가의 열 여섯 개 이름,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작업들을 따라가며 쓰신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었거든요. 한 사람이 자신을 여러 얼굴로 흩뜨려놓는 방식에 대한, 팬으로서의 고찰이 담긴 ‘응시’였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에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가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저는 보사노바가 왜 좋은지 누가 물으면 아마 "듣기 편해서요" 정도로 답할 거예요. 그 장르의 선구자였던 조앙 지우베르투의 기타 주법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지, 삼바에서 어떻게 갈라져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취향과 깊이를 동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제가 좋아한다고 말해온 것들 앞에서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나름 오래 곁에두었는제 제대로 살핀 적이 없었구나 싶어서요.
그 글의 말미에 혜정 님은 이런 질문을 건네셨죠.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앞으로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싶은가?
저는 아마 습관처럼 계속 넓고 얕은 사람으로 살아갈 테지만, 좋아한다고 말해온 것 중 하나에는 정성 어린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한 편의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혜정 님이 저에게 건네주신 건 아마 그런 시도에 대한 용기인가 봅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어요. 혜정 님이 쓴 편지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지금, 그때 눈에 담으셨던 겹복사꽃은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보낸 뒤 저는 취향이라 불러온 것들을 찬찬히 돌아볼 생각이에요.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찰나라 더욱 사랑스러운 봄이 떠나고 어느덧 여름이 오려고 합니다. 건강하시고, 또 좋은 기회로 찾아뵙겠습니다.



지난 주말 동네 산책하며 눈에 담은 풍경이에요. 이맘때라 더 사랑스러운. 혜정 님도 얼른 더 더워지기 전에 봄 산책 나서보시길 바라요!
2026년 4월 22일 수요일
가영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