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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봄이 오면 바다가 생각난다. 정확히는 추운 겨울을 마치고 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여자들이 생각난다. 숨을 참고, 물살을 가르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이들. 제주의 해녀다. 해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돌아오면 나는 그녀들의 오래된 몸짓에서 '여성'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가늠한다.

 

세계 여성의 날은

세계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날로,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한 것에서 시작됐다. 세계 여러 나라가 축하하는 국제적인 기념일이며, 우리나라도 1985년부터 기념해 왔다.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


 

어떤 기록들이 있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했다. 같은 해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됐고, 10월에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거리를 채웠다. 2018년 1월, 검사 서지현이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한국의 미투(#MeToo)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같은 해 5월 혜화역 광장에는 불법 촬영 반대를 외치는 수만 명의 여성이 모였고,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됐다. 2020년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피해자 대다수는 미성년자였다. 2023년 7월,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이 시행됐다. 이 기록들은 상처의 연대기이면서, 동시에 싸움의 연대기다. 누군가 분노했고, 누군가 거리로 나왔고, 누군가 목소리를 냈기에 법이 바뀌었다.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달라졌다.

 

한편, 이 모든 이야기보다 훨씬 앞선 여성들의 기록이 있다. 제주 해녀, '잠녀(潛女)'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 깊숙이 잠수해 전복, 소라, 문어, 미역 등을 채취한다. 해녀에 관한 기록은 12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문헌에 나타난다. 특히 19세기 말부터는 원정 물질을 시작하며 중국, 러시아로 반경을 넓혔다는 기록이 있다. 평균 수심 10미터, 깊이는 20미터까지 한 번 잠수에 숨을 2분씩 참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물속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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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 문화는 그 오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23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옛날 척박한 섬의 환경에서 '물질'로 가계를 책임져왔던 여성들. '해녀는 아기 낳고 사흘이면 바다로 간다' '물 아래 3년, 물 위에 3년' 등의 속담이 그들의 일생을 나타낸다. 그 강인함은 바다에서만 발휘된 것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관제 조합이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헐값에 강제 매입하자, 1만 7천 명의 해녀가 총 238회에 걸쳐 궐기했다. 이는 1930년대 들어서 최대 규모이자 전국 유일 여성 주도 항일운동이었다. 현재 구좌읍 하도리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에는 당시 앞장서 독립을 외친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 세 해녀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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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항일운동 주역 세 사람. 1932년 1월 하도·종달·세화·우도·시흥·오조리 지역 해녀 1천여 명이 참가한 투쟁을 주도했다.

 

 

해녀의 문화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바다에서 채취한 건 모두 합쳐 머릿수대로 나누며, 혹시 누군가 아파서 못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수위가 얕고 해산물이 풍부한 구역은 '할망 바당'으로 이름 붙여 연로한 해녀들이 편안히 물질하도록 내어준다. '학교 바당'도 있었다. 1950년대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그 구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학교 설립과 교육 지원금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너른 바다를 공평하게 나누며 살아왔다. 2024년 기준 한국의 해녀 수는 1만여 명. 그중 3,000여 명이 제주에서 활동한다. 평균 나이 70세이다. 뭍에서는 굽은 허리와 다리가 물속에선 신기할 만큼 곧게 펴진다고 말하며, 오늘도 바다가 내어준 것들을 부지런히 길어 올린다. 그들이 물 밖으로 나와 내쉬는 숨소리를 '숨비소리'라 부른다. 파도 소리와 뒤섞인 그 가늘고도 긴 호흡은, 살아 있다는 신호이자 다시 뛰어들겠다는 다짐이다.

 

 

 

‘바다’는 제주에만 있지 않다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는 1999년생이었다. 2022년 9월, 이란 도덕경찰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했고, 사흘 뒤 아미니는 세상을 떠났다.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목격자들은 구금 중 폭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 후 이란 거리에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히잡 강제 착용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히잡을 벗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했고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구금됐다. 하지만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의 정신을 기리며, 이란 여성들은 여전히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21년 탈레반 재집권 후 중등교육과 대학 교육에서 여성들이 모두 배제됐다. 그러나 그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마을 곳곳에선 '비밀 학교'를 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느 교사는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제 의무"라며 "교육만이 우리를 어둠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정규 여학교가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에 그다지 희망을 품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다짐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2023년부터 시작된 가자 전쟁 속,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 서안지구의 '땅 지키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농업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에 맞서는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를 심고, 양봉을 통해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 사라진 토종 씨앗을 찾아내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아픔의 지도는 넓고 깊다. 그러나 지도 위에는 싸우는 사람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진다. 먼저 떠난 아미니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이란 여성들과 탈레반 치하에서 소녀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나무를 심어 땅을 지키는 팔레스타인의 여성들 그리고 소셜미디어 해시태그와 보이콧 운동으로 멀리서나마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들까지. 바다는 제주에만 있지 않다. 삶의 자리가 어디든 누군가는 오늘도 자신만의 바다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아픔에 직면하는 저마다의 예술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예술이 있다.

 

[소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2016)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테드(TED)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3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아디치에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이 어떤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공정함에 관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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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2016

 

 

“젠더는 세계 어디에서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계획하는 일에 함께 나서자고 요청합니다.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 더 진실함으로써 좀 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나는 페미니스트를 남자든 여자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 책 속에서

 

 

『페르세폴리스』 (2000)

 

이란 출신 작가 마르얀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16년여의 세월을 담고 있다. 그곳에서 자란 소녀 마르얀이 혁명, 전쟁, 망명 등의 정치적 격변 속에 성장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다소 생소하고 난해할 이란의 현대사가 소녀의 시선을 통해 좀 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순간들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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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얀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휴머니스트, 2019 (원제: Persepolis, 2000년)

 

 

“우리의 양심을 앗아가는 건 바로 두려움이란다. 우리를 비겁자로 만드는 것 또한 두려움이지.”

 

- 책 속에서

 

 

[영화]

 

『서브러제트』 (2016)

 

사라 가브론 감독의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란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는 세탁공장 노동자 '모드 와츠'라는 평범한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평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던 그녀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일상 속 부조리함에 눈을 뜨고,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드가 불합리함에 맞설수록 상황은 악화해 간다. 남편은 그를 집에서 내쫓고 양육권마저 빼앗는다. 가부장제 구조 아래 여성에게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던 시대, 그럼에도 모드는 변화하기를 멈추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가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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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범법자가 되고 싶은게 아닙니다. 우리는 입법자가 되고 싶은겁니다.”

 

- 영화 속 메릴스트립(에멀린 팽크 허스트 역) 대사 중

 

 

『피의 연대기』 (2018)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는 한국 여성들의 월경 경험을 담은 영화다. 오랫동안 금기시되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몸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꺼내 든다. 지역과 문화, 역사와 종교, 세대를 가로질러 '월경'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펼치는 이 영화에는 전문가뿐 아니라 선생님, 회사원, 고등학생, 누군가의 엄마와 이모와 할머니까지, 지극히 평범한 여성들이 화자로 등장한다. 목화를 베에 넣어 꿰맨 할머니의 생리대, 엄마의 면생리대까지 각자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세대와 문화와 환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류의 절반이 경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론화하기 쉽지 않은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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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 우연히 만난 네덜란드 여성과 이야기하던 중 탐폰이 좋냐 생리대가 좋냐는 논쟁이 붙었다. 평생 일회용 생리대만 쓴 나는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다는 샬롯의 말에 충격을 받고 처음으로 내가 18년 이상 흘린 피를 생각하게 됐다. 구글에 생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nstruation’을 치자 예상치 못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유롭게 피 흘리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었고, 평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생리용품이 그곳에 존재했다. 나는 기사들을 수집하며, 생리컵, 해면 탐폰, 울 탐폰, 일회용 생리컵, 생리 팬티 등을 주문했다. 매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다른 생리용품을 써보며 내 몸을 관찰했다.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했고, 인류의 피 흘림의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나는 오랜 시간 미워했던 나의 몸과 마침내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 감독의 연출 의도문 중

 

 

[미술]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6살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에는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 등 전신에 중상을 입었다. 평생 35번 이상의 수술을 받으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자화상이다. 자기 몸과 고통, 유산의 경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복잡한 사랑까지 캔버스 위에 날것 그대로 옮겼다.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이상적인 몸의 기준에 정면으로 맞서듯, 그는 하나로 이어진 눈썹과 콧수염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조했다. 칼로의 그림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여성의 몸이 얼마나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과 규범에 따라 규정되어 왔는지를 되묻는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는 몇 년 사이 '여성 서사' 미술이 주목받고 있다. 제주 해녀를 주제로 한 사진 작업, 미투 이후의 작가들이 제 몸과 기억을 재료로 만든 설치 미술들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채우고 있다. 이름을 기록하고, 몸을 기억하고, 지워진 것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 그것이 지금 한국 여성 예술가들이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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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지난 2021년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에 맞춰 개막한 사진전 '제주 해녀, 바다의 여인들'.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이 호주 국립해양박물관과 협력해 기획한 전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아래_2025년 프랑스 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제주, 바다와 함께 살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소재로 해녀의 경험과 정신을 그려낸 작품들과 함께, 사진작가 김형선이 흰 배경 앞에 선 해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담아낸 초상 사진을 선보였다. 시드니에서 파리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닿았다.

 

 

올해로 세계 여성의 날이 118주년을 맞이한다. 1908년 뉴욕 거리에 울리던 외침이 세계로 퍼지고 이어져 현재에 이른다. 그 사이 수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땅한 권리를 위해 싸워왔다. 누군가를 구했고, 법을 바꿨고,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하지만 아직 닿지 못한 곳들이 있고,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계속 나아가고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같은 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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