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한 군데도 다니지 않던 열여섯의 나는 학교가 끝난 후 시립도서관에 가기 위해 산을 올랐다. 도서관이 대체 왜 이렇게 높이 있는 건지. 정상에 올라도 아직 정문까지는 계단이 남아 있다. 여름 더위를 뚫고 모든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면, 노을이 지는 소도시의 전경(당시에 찍은 사진을 썸네일으로 선정했다)을 볼 수 있었다. 한숨 한 번 쉬고 도서관에 들어가 또 3층까지 계단을 올라 멀티미디어실에 들어간다. 자주 봐서 익숙한 얼굴들이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나는 수학 문제집을 꺼낸 다음, 컴퓨터를 켜서 본체에 이어폰 잭을 연결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밴드 ‘도쿄지헨(東京事変)’의 「입수소원(入水願い)」, 특히 2005년 다이너마이트 투어 공연에서의 라이브. 그 안에 어떤 한을 품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광기로 가득 차 있는 시이나 링고의 눈빛이 특히 돋보인다.
東京事変 live tour 2005 “dynamite!” DVD, 입수소원
앞서 소개한 곡이 수록된 정규 1집 『교육(教育)』은 명반 그 자체임이 틀림없다. 버릴 음악이 하나도 없는 데다, 내가 좋아하는 ‘인트로격 곡을 삽입해 하나의 앨범 안에서 두 트랙이 이어지는 기믹’을 사용하기까지. 음반 자체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지만, 밴드 멤버 한 명 한 명의 실력은 상당히 걸출하기에 그만의 매력이 있다. 게다가 1기 멤버인 키보디스트 H是都M, 기타리스트 히라마 미키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해당 앨범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햇수로 발매 23년째가 되는 지금까지도 아직 이 앨범의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 시절만큼 열심히 새로운 음악을 발굴(요즘에는 ‘디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더라)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교육(教育)』 6번 트랙 「현실에서(現実に於て)」
『교육(教育)』 7번 트랙 「현실을 비웃다(現実を嗤う)」
정규 1집 『교육(教育)』이 지닌 대중성과 예술성의 줄타기, 날카로운 재즈 록의 면모는 그 시절 내 음악 취향 그 자체였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에 좋아했던 사운드들과 비슷한 결을 지닌 곡들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중학생 때 형성된 음악 취향이 평생 간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항상 비슷한 스타일을 찾아다니고 있고, 아마도 평생 그러지 않을까.
도쿄지헨을 가장 자주 듣던 2010년대 중후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밴드 해체 이후였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히려 이미 끝난 밴드라는 사실이 매력을 더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도쿄지헨은 재결성했다. 막상 재결성 소식을 들으니 기쁜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재결성 이후의 음악은 이전보다 모던함과 정제됨이 한 스푼 더 추가된 느낌이었다. 앞 문단에서 계속 언급되었던 날것의 『교육(教育)』 앨범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약 1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도쿄지헨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 중심이라고 느끼는 지점은 ‘시이나 링고’와 ‘카메다 세이지’다. 멤버는 정규 1집 이후 교체가 있었지만, 곡을 쭉 듣다 보면 프론트우먼인 시이나 링고는 당연하고, 베이시스트 카메다 세이지 역시 도쿄지헨의 정체성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재결성 이후 발매된 앨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바로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2020년 발매된 EP 『뉴스(ニュース)』의 「Leap & Peal(うるうるうるう)」은 영어명으로도, 일본어명으로도 대칭인 제목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시즌,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갈 때마다 반복 재생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의 엔딩곡이었던 셈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묘하게, 약간의 희망 또한 가지게 해주는 곡이었다.
이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있다. 1999년 발매된 시이나 링고의 정규 1집 『무죄 모라토리엄(無罪モラトリアム)』에 수록되어 있는 「마루노우치 새디스틱(丸ノ内サディスティック)」은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싶은 곡이다. 나 역시 이 곡을 계기로 시이나 링고와 도쿄지헨을 알게 됐다. 깔끔한 스튜디오 녹음 버전보다는 도쿄지헨의 밴드 라이브 버전이 더 자주 떠오르는. 날것의 라이브야말로 밴드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지.
報酬は入社後並行線で
보수는 입사 후에 평행선이고
東京は愛せど何も無い
도쿄는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마루노우치 새디스틱, 시이나 링고)
이외에도 소개하고픈 곡들이 참 많지만, 이쯤에서 자제하기로 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트인사이트에는 이들에 대한 글이 보이지 않았는데, 요 몇 달 사이에 올라온 글을 읽고 동지를 찾은 기분이었다.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일이니까. 덕분에 10대를 회고하며 다시 한번 좋은 곡들을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도쿄지헨, 동경사변, 아니면 시이나 링고, 그 어떤 이름이든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대상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도쿄지헨 음악의 매력을 느끼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