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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비포 선라이즈 - 낯선 이에서 연인으로 [영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사랑

by 윤규리 에디터
2025.07.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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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늘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고른다. 영화를 다시 돌려보는 각각의 시기마다 다른 대사들이 마음에 와닿기에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질리는 법을 모른다.


사랑하는 두 연인을 담아낸 낭만적인 로맨스 영화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관객의 인생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가치관을 형성하기까지 하는 로맨스 영화는 정말 드물다. 롱테이크로 담아낸 두 남녀 간의 긴 대화는 진부한 스토리가 디폴트인 로맨스 영화 시장에서 보석같이 반짝인다. 이번 글에서는 <비포 선라이즈> 만의 그 반짝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 우연히 시작된 대화


 

유럽의 기차 속, 남자는 건너편 좌석의 여자에게 말을 건다. 가볍게 오가는 몇 마디 사이에 서로가 마음에 든 둘은 휴게실로 자리를 옮긴다. 남자의 이름은 '제시'로 미국에서 왔으며 현재 기차를 타고 비엔나로 향하는 중이다. 그리고 여자의 이름은 '셀린'으로 프랑스에서 왔으며 파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고, 완전한 타인인 두 사람이 나누기 시작하는 진지한 대화와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 무엇보다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는 깊은 눈빛이 영화의 1시간 40분을 온전히 채운다.

 

서로에 대해 가볍게 묻던 대화는 "기차를 타고 있다 보면 평상시에는 잘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제시의 말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셀린의 질문을 기점으로 진지하고 특이한 대화로 전환된다.

 

이 영화의 매력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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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셀린의 말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사랑에 빠지는 일이라든가 결혼이나 양육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어. 부모님은 내가 선택해야 할 직업에 관한 얘기만 하셨지. (... ) 내가 아빠한테 '작가가 될래' 이러면, 아빠는 '언론인'. 내가 '집 없는 고양이들을 보살필래' 이러면, 아빠는 '수의사'. 내가 '배우가 될래' 그럼 아빠는 'TV앵커우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의 비현실적인 야망을 소위 잘나가는 직업에 연관시키셨어. (...) 그거 알아? 부모님이 어떤 일에 아예 대놓고 반대하는 대신,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지지해 주면 그땐 불평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 부모님이 틀렸을 때도 말야. 그 수동적인 반대는 정말 신물 나."

 

한국인들은 이 셀린의 말에 특히나 공감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이지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려고 할 때 따라오는 지지이기에,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가수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꿈들은 탈선 혹은 어린 나이의 치기로 인한 실수로 취급받는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좋은 마음이라지만, 수동적인 옥죄임은 아이들의 다채로움을 빼앗곤 한다.

 

 

 

#3. 노파와 꼬마


 

셀린 : 난 내 자신이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파라고 생각돼. 내 인생은 그 노파의 기억 같은 거지.

제시 : 정말 이상해. 난 늘 내가 13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거든.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지 잘 모르는 꼬마 말야. 그래서 인생을 사는 척하면서, 어른이 돼야 할 때를 대비해 메모를 해두는 거지. 중학교 때 학예회를 앞두고 드레스 리허설을 하듯이 말야.

셀린 : 재미있다. 그렇다면 아까 그 관람차에서...노파가 꼬마에게 키스한 거네, 그렇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둘 중 누구와 더 비슷한지 궁금하다. 노파의 기억 같은 인생과 13살 소년의 학예회 연습 같은 인생. 참 재미있는 시각이다. 가끔 인생이 너무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질 때는, 영원히 크지 않는 아이가 된 듯이 미성숙하기만 한 나를 보고 한숨지을 때가 있다. 그러나 또 어느 날엔가는, 찰나 같은 인생이 애틋해 노파의 마음으로 내 삶의 순간들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이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둘은 대비되지만, 동시에 비슷하다. 둘은 생각의 회로가 비슷하지만, 그 도달점은 다르다. 그래서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그것이 더욱 서로를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4. 제시의 말


 

제시 : 뭐가 화나는지 알아? 사람들은 항상 기술이 위대하네, 덕분에 시간이 절약됐네, 하잖아. 그런데 쓰지도 않을 시간 절약해서 뭐 한대?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야.

셀린 : 맞아.

제시 : 이런 얘기하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워드 프로세서 덕에 시간이 절약됐군. 절에 가서 수행을 해야겠어." 이러는 사람 없다고.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 남는 시간을 우리가 어디에 쓰느냐고? 유튜브에 쓰고, 인스타그램에 쓴다. 발전이 아니라 쇠퇴를 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내 뇌는 숏츠로 인해 점점 집중력이 떨어져 가고 챗지피티로 인해 독립성이 저하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5. 아침이 오면 호박이 될 사랑


 

제시 : 마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

셀린 :  그래, 이상해. (...) 마치 난 네 꿈속에, 넌 내 꿈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야. 

제시 : 진짜 멋진 건, 우리가 함께 보낸 이 저녁이 꼭 존재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셀린 : 맞아, 그래서 초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나 봐. 하지만 아침이 오면 우린 모두 호박으로 변하겠지? 그렇다 해도 지금 넌 유리 구두를 들고 맞나 안 맞나 확인해 봐야 해.

제시 : 맞을 거야.

 

오직 하루만 함께하고, 내일이 오면 헤어져야 하는 사이. 12시가 지나면 마법이 풀려 모두 호박이 되고 마는 신데렐라 같은 사랑.

 

둘 모두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혹여나 상대의 마음을 앞서갈까 싶어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선뜻 꺼내기를 자꾸만 망설인다. 결국 그들은 하루뿐이지만, 오늘 밤을 멋지게 만들자며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나누는 대화들은 낭만이 가득하다. 마치 꿈처럼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이 순간 자체에 깊이 빠진 두 사람은, 내일부터 영영 볼 수 없다 해도 이 순간만큼은 나를 사랑해달라는 바람을 서로에게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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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영화는 낯선 두 남녀가 사랑하는 연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롱테이크로 촬영하여 보여줌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 로맨스 영화라는 비현실적 환상을, 적은 컷 편집과 어떠한 사건도 없이 둘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스토리를 통해 담아낸 '수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랑에 대해 궁금증이 들 때에도, 인생에 대해 염증이 들 때에도 이 영화는 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꿈같이 아름다운 비엔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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