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번도 난 너를 생각해 본 적 없어, 킬링 로맨스 [영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로맨스 영화가 왔다
글 입력 2023.04.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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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서사 이외의 요소, 이를테면 미장센이 중요하거나 혹은 난해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런 국내 영화를 만나보기는 독립영화가 아니고서야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흥행하는 작품들은 대개 기본기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킬링 로맨스>가 등장할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토록 아름답고, 이상하고, 비판적인 상업영화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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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또 뮤지컬. 세상에 재미있다는 장르는 다 합친 것 같은 <킬링 로맨스>는 근래 개봉작 중 가장 호불호를 많이 타는 것으로 입소문이 났다.

 

"정말 신선해요. 많이 웃었습니다."

"이것도 영화인가요?"

 

극과 극을 달리는 평 속에서 내 의견은 전자였다. 사실 극장에 예고편이 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호감이었다. 언뜻 봐도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났고, 2010년대를 끝으로 사장된 듯한 로맨스 장르와 부진을 겪는 국내 영화 시장의 우울한 상황 속에서 단비가 되어줄 작품으로 나 홀로 점찍어 두었기 때문이라.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대를 한가득 안고 본 이 작품은 그러나 내 예상을 한참 빗겨나 있었다. 아니, 그냥 다른 영화였다.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범상치 않습니다, 영화가 그렇게 외쳤다. 그래서 싫었냐고? 아니. 1분이 안 지나서 심장이 뛰었더랬다. 나는 엄숙주의와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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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지한 작품만 나오는 게 불만이거나, 공상하기를 즐기는 평범한 B급 무비 마니아라면 이 영화를 즐겁게 봤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 작품을 괜찮게 보았을 이들이 있다면 소위 '병맛' 만화에 익숙해진 세대들인데, <킬링 로맨스>의 유머 코드가 낯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웹툰 시장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나 김규삼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등 '병맛' 만화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병맛은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웃음이 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수식어로 '병맛'이 붙는 작품들은 기성작과 비교했을 때 허전한 면이 있다. 기승전결 완벽한 구조의 유려한 장르 만화와 달리 엉뚱하고 완전하지 못한 스토리와 그림체 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완전에서 나오는 자유분방함은 역으로 풍자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청년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과 함께 가볍게 웹툰을 즐기는 이들은 수없이 늘어났고, '가볍게' 즐기기엔 병맛 만화만큼 제격인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해당 코드를 향유하는 세대에게 이상하고 예측 불가한, 그러니 웃긴 콘텐츠는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킬링 로맨스>도 그렇다. 이상하고 예측 불가하고 웃기다. 또 사회를 충분히 풍자하고 있다. 서울대에 가지 못해 20대의 절반을 날리고 있는 4수생, 법 위에 사는데다 자기 마음대로 배우자를 휘두르는 남편, 한때 잘 나갔으나 남편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된 아내.

 

우울하기 짝이 없는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만나 시작된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어찌 병맛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찌 재미없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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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마냥 사회비판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고, 사기까지 치는 데다 아내에게 폭력까지 불사하는 최악의 인간 조나단을 이기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다. 4수생과 경력 단절 7년 차 여성, 터전 잃은 동물 한 마리다.

 

피는 피로 갚는다고 하던가. 조나단을 죽이기 위해 이들은 무진장 애를 썼다. 사우나에도 가둬보고, 땅콩도 먹여본다. 오렌지도 던진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들은 아주 진지했고 또 거의 성공할 뻔도 했다. 하지만 결국 악을 무찌른 것은 폭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를 피로 갚지 않았다. 옳은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삼인방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이겼다. 악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끝을 맞이하지만, 그랬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는 가장 어렵고, 웃기고, 아름다운 방법이 된다.

 

억압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난 아내 여래는 결국 연기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되찾는다. 그러나 대중에게 사랑받진 못했다. 연기와 작품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래는 행복했고, 4수생 범우를 비롯한 열성팬들도 크게 행복해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행복하면 된다'는 거다. 남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그때의 즐거움과 만족감은 그 무엇도 견줄 수 없을 테니. <킬링 로맨스>는 그러려고 만든 것이고, 여러분도 행복하기만 하시라는 말을 던지는 듯한 따뜻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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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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