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킬리언 프로젝트>
국립발레단의 <킬리안 프로젝트>가 서울 GS 아트센터에서 2025년 6월 26일부터 6월 29일까지 공연되었다. <킬리안 프로젝트>는 체코 출신의 컨템포러리 발레 안무가 이어리 킬리안(Jiří Kylián)의 세 작품인 <포가튼 랜드(Forgotten land)>, <폴링 엔젤스(Falling angels)>, <젝스 탄츠(Sechs Tänze)>를 모은 것으로, 순서는 총 26분의 <포가튼 랜드>(Forgotten land) 이후 20분의 인터미션, 15분의 ‘Falling angels’와 15분의 <젝스 탄츠>(Sechs Tänze)로 구성된다. <포가튼 랜드>와 <젝스 탄츠>는 국립발레단에 의해 2019년 <이브닝 갈라>에서 공연된 뒤 다시 올라오는 작품이고, ‘Falling angels’의 경우 국내에서 초연되는 작품이다. 이 공연은 2000년대 이후로 컨템포러리/모던 발레를 꾸준히 레퍼토리에 포함해 공연으로 올린 국립발레단의 성과를 보여주는 무대라고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포가튼 랜드(Forgotten land)>는 ‘잊혀진 대지’라는 의미로, 2차 세계대전 중 작곡된 벤자민 브리튼의 <진혼 교향곡>을 반주로 만들어진 안무다. 1981년, 발레리나 출신 예술감독이자 무용수 마르시아 하이데의 요청으로 이어리 킬리안에 의해 안무된 <포가튼 랜드>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회화 <생명의 춤>을 모티브로 하며, <생명의 춤> 속 세 여성의 단계적인 삶을 안무로 형상화해 삶의 다양한 면모와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을 표현한다. 전쟁의 잔인한 풍경과 애도의 맥락을 담은 <진혼 교향곡>의 멜로디와 리듬에 맞추어 삶의 희노애락과 생명의 끝이라는 주제를 철학적으로 담아낸 안무의 원천 속에서 블랙, 화이트, 레드 커플을 중심으로 유사한 색상의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총 여성 페어를 이루어 춤을 춘다.
두 번째 작품이자 국내에서 초연되는 <폴링 엔젤스>(Falling angels)는 총 8명의 발레리나들이 소리의 움직임을 줄이는 ‘미니멀 음악’의 거장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발레 공연을 위한 반주 음악 하면 떠오르는 관현악이나 협주곡 선율과 멜로디가 부재한 대신 타악기의 리듬만이 이 안무를 지탱하는 음악이 된다.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 창작 경향처럼 이 작품의 안무 역시 전반적으로 아프리카 민속 춤이 연상된다. 스토리라인이 부재한 현대적인 발레 작품에서 흔히 조명으로 표현하는 공간과 선이 인간의 자유/능력과 규율/수동성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 역시 8명의 여성 무용수들은 현대적인 연출 속에서 추상적인 관념의 언어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신체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현대 발레라는 형식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탐구라는 킬리안의 의도를 반영한다.

공연의 마지막 작품, <젝스 탄츠(Sechs Tänze)>의 경우 모차르트의 <6개의 독일 무곡(6 German dances)>이라는 음악을 바탕으로 모차르트가 살았던 당시 오스트리아 및 유럽 귀족 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가발과 흰 분장을 한 무용수들이 춤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국립발레단 외에도 2011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공연된 적 있으며, 이어리 킬리안의 이전 작품 ‘La petite mort(작은 죽음, 성적 절정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프랑스 단어)’ 속 여러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등장시켜 패러디의 의미를 지닌다. 똑같이 모차르트의 다른 음악(<피아노 협주곡> 아다지오 23번, 안단테 21번)으로 반주된 <작은 죽음> 작품 속 장엄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위한 움직이는 거대한 로코코 드레스와 기다란 칼 등의 요소가 <젝스 탄츠> 속 짧은 6개의 에피소드 내에서 희극적으로 반복되며 해학적인 아이러니를 전달한다. 다소 냉소적인 <작은 죽음>이 모차르트의 죽음과 어두운 삶의 단면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스꽝스러운<젝스 탄츠>는 반대로 그의 해학과 괴짜스러운 면모가 드러난다.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 세계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더욱 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
* 유니버설 발레단 <백조의 호수> 버전에 대한 관련된 비교 기사를 참고하시면 더욱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2025년 7월 19일부터 7월 27일까지 공연된다. 차이코프스키 작곡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전형적인 클래식 발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백조의 호수>는 초연 당시 안무와 음악의 부조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패했던 작품이지만 차이코프스키 사후에 마리우스 프티파와 제자 레프 이바노프의 재안무로 클래식 발레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프티파-이바노프라는 ‘큰 줄기’의 안무와 구성을 기반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 동일한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고 있으며, 연말 캐시카우인 <호두까기 인형> 다음으로 안정적인 장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번 2025년 레퍼토리인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주목받은 이유는 ‘3연속 540도 회전’으로 유명한 다닐 심킨이 객원으로 남자 주인공 지그프리트 역으로 참여해 오데트/오딜 역의 발레리나 홍향기와 호흡을 맞추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박건희 학생이 2막 ‘스페인 댄스’와 1막의 ‘파 드 트루아’를 맡았다는 점이다. 2024년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당시 서희와 다니엘 카마르고처럼 해외의 유명한 무용수를 객원으로 초청하거나, 박상원 발레리나(현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소속)와 전민철 발레리노(마린스키발레단 소속)처럼 콩쿠르에서 두각을 보인 학생 무용수가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기 전 실제 전막 공연의 기회를 주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선택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스팅이다.

2025년의 정기 공연 <백조의 호수>는 대대적인 의상 수정 및 리뉴얼, 세세한 구성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유니버설발레단 특유의 <백조의 호수> 연출에 있어서 약간의 전환점이 되었다. 1막 1장의 후반부 부분의 단체 군무와 1장과 2장의 전환이 약간 수정되었고, 1막 1장과 2막 1장에 등장하는 왕궁 장면에서 여왕과 어릿광대(제스터), 귀족들과 시종들을 포함한 무용수들의 의상과 머리 장식이 새롭게 바뀌었다. 2막의 스페인 댄스, 나폴리 댄스, 헝가리, 마주르카(폴란드)라는 각 나라 민속춤의 의상 역시 다른 캐릭터와 더욱 구분되기 쉽게 색감과 디자인이 변화했다. 2년 전 공연에서는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찾아온 2막의 이웃나라 공주들에 5명의 발레리나가 동원되었다면, 이번 공연은 6명으로 한 명 더 추가되는 등의 세세한 부분이 달라지기도 했다. (UBC에서 공주들 역할의 경우 공연이 올라오는 시즌마다 무대 크기와 동선의 차이를 반영해 4명에서 6명 정도로 달라진다.) 2막 1장 왕실의 성 내부에서 2장의 호숫가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지그프리트 왕자 뒤에 숲 속의 무대 배경이 깔리는데, 이는 왕자의 감정선을 더욱 더 보강하는 효과가 있다.
1992년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초연된 이후로 결말과 연출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이번 공연은 2년 전인 2023년 정기 공연과 같은 결말을 유지한다. 로드바르트는 날개가 찢긴 채 죽지만 무너지는 성 속에서 오데트 역시 죽음을 맞이하고, 왕자 지그프리트 역시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오데트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가며 결과적으로 셋 다 죽게 되는 파국을 암시하는 결말이다. 2막 오딜과 지그프리트의 그랑 파드되에서 오딜의 바리에이션이 느리고 우아한 ‘아다지오’와 빠르고 신비로운 ‘알레그로’로 나뉘는데, (‘알레그로’ 고정인 국립발레단과 달리)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발레리나에 따라 안무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캐스팅으로 여러 번 관람을 했을 때 그 차이에서 주는 새로움과 다양성이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의 특징이자 매력은 작품 속에서 미스터리한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그 해석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여전히 오데트가 왜 백조라는 형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 왜 지그프리트는 오데트와 오딜을 헷갈려 잘못된 맹세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이것이 로드바르트와 오딜이 사실 지그프리트와 오데트의 내면의 반영이라는 정신분석학적 해석(국립발레단 버전)이나 아버지가 부재한 왕자의 실패한 성인-되기나 황실의 부조리(매튜 본 안무)라는 특정 주제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던 다른 버전의 <백조의 호수>와 구분되는 점이다. 흥미로운 인간-동물의 변신 모티프와 선과 악이라는 동화적인 이중성 속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이 선보이는 신비로운 백조의 형상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상징으로도 물리적인 신화적 동물성으로도 쉽게 결론나지 않는다. 이 동화가 비극을 향해 갈수록 쾌감과 애수가 공존하듯이, 이러한 확신 불가능성에서 오는 신비로움은 UBC <백조의 호수>만의 개성이 된다.
<2025 파리 오페라 발레(POB) 에투알 갈라>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갈라>가 작년에 이어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2025년 7월 30일과 31일의 프로그램 A, 8월 1일에는 프로그램 B를 공연하고, 8월 3일에는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올린다. 2023년의 전막공연 <지젤>을 제외하고 2022년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매년 발레 갈라의 형태로 내한해 왔고, 이는 에투알(프랑스어로 ‘별’을 의미, 프랑스에서 수석무용수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인 박세은이 직접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해 클래식과 모던, 익숙한 작품과 한국 관객이 접하기 어려운 작품 모두를 아울러 다양한 레퍼토리를 갈라에서 선보인다. 올해의 경우 작년 갈라에 참여하지 못했던 에투알 매튜 가니오, 제르망 루베 발레리노가 내한한다.
주목할 만한 안무 레퍼토리는 <인 더 나잇(In the night)>으로, 프레데릭 쇼팽의 음악 <녹턴>을 기반으로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이 협업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 안무를 디자인한 발레 안무가 제롬 로빈스가 안무한 작품이다. 세 커플이 페어로 등장해 사랑의 다양한 단면들을 표현하는 <인 더 나잇>은 2022년 내한 갈라 이후로 다시 한국에서 공연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전막인 <실비아> 속 실비아와 아민타의 파드되, <에스메랄다> 속 파드되가 기대를 자아내며, 롤랑 프티 안무의 <프루스트> 속 ‘갇힌 여인’ 파드되와 조지 발란신의 <소나티네>, 그리고 맥밀런의 <콘체르토>는 안무가의 유명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동시대적인 발레의 모습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특색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의 작품도 있지만, 더 긴 호흡으로 살펴봐야 하는 작품도 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전막 하이라이트가 프로그램 B의 2막에서 공연되는데, 파리 오페라 발레단 버전은 루돌프 누레예프에 의해 재안무된 버전이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익숙한 고전 발레의 레퍼토리이지만 기존의 국립발레단(마르시아 하이데 버전), 유니버설발레단(콘스탄틴 세르게예프 버전)과 차이가 있기에 한국의 발레 팬들에게는 ‘익숙한 듯 새로운 만남’이 될 것이다. 기존의 고전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누레예프의 색다른 해석이 담긴 안무를 볼 수 있는 것은 <호두까기인형> 2막 그랑 파드되도 마찬가지로, 배경을 동시대로 바꾸어 새로운 해석을 선보인 작년 누레예프 안무의 <신데렐라>를 연상시킨다.
파리 오페라 발레 갈라의 특성은 다양성이다. 발레의 마니아층이라면 느끼겠지만, 기존 발레 갈라의 ‘사골’ 클래식 레퍼토리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신선함과 익숙함을 뒤섞어 집중도를 유지시키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추상성과 고전적인 미학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프로그램북에 상세한 설명을 제공해 발레가 추구하는, 혹은 추구해야 할 현대적인 담론과 각종 사회적 맥락과 뒤섞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 안과 밖의 상황과 작품 경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 공연이 발전하는 유럽 발레의 여러 모습을 한국 발레계에 알릴 기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갈라가 지속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