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영원’을 믿는가?

 

영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관계의 맺음 사이에서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안심을 주기도 한다. 단어의 내뱉음으로써 이 사람은 오래도록 나의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서서히 잠식된다.

 

영원이라는 말이 현재를 불성실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사과의, 용서의, 사랑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게 만드는 불온한 힘을 가졌다. 사람들은 쉽게 영원을 믿었고, 본인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변화는 필연적이기에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본인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가족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인간관계는 불안정하고 우리는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헐뜯고 웃었다. 진실성이 없는 관계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니 또 친구가 인생의 전부 같았다. 비슷한 고민거리를 안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신뢰와 웃음을 주는 존재는 친구였다. 작고 깊게 친구를 사귀는 성정 때문인지 몰라도 친구는 전적으로 나의 장단점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 관계도 꾸준히 변모하고 있으며, 시기마다 사귀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성인이 된 후 부모의 걱정 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불안이 나를 힘들게 했다. 가족을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 같은 것들이 안정을 깨트렸다. 변화하는 나의 자아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말을 고르는 연습이 필요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나를 완벽하게 오픈하던 시기를 지나 서로에게 다정한 가족이 되어 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변화가 슬프다고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으로는 괜찮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너무도 어렵다. 남이었던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아 가족을 형성한다. 남이었던 둘은 부모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아이는 자식이라는 이름 아래 종속된다.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동반한다고 여겨진다. 자식은 결국 부모를 이길 수 없고, 부모도 결코 자식을 이길 수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흔히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 말 또한 부모가 된 어떠한 성인이 남긴 말이 아닌가. 자식도 결국 부모를 이길 수 없다. 자신을 키워주고 먹여주며 서투른 사랑을 주려고 노력한 사람에게로 자식은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는 죄책감이 부채감이 된다. 부모가 영원히 부모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자식은 부모에게 져줄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효도 따위가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무수한 가족의 정의가 있고, 가정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서로에게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곁에 있는 사람은 가족뿐이라고 말하면서도, 가족은 영원히 동시대를 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불교에서는 1겁이라는 단위로 인연의 중요성을 말한다. 부부는 7000겁, 부모자식은 8000겁, 그리고 형제자매가 되려면 90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형제가 가장 오랜 윤회의 시간을 보낸다. 이토록 긴 시간을 거쳐 만난 사이이기에, 우리는 때로 가족에게서 가장 깊은 위안과 가장 큰 상처를 동시에 받는지도 모른다. 물론 가족 중에 형제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는 말이 먼저 나오겠지만 말이다.

 

 

[포맷변환][크기변환]7월 2주차 삽입 사진.jpg

 

 

삶은 끊임없는 상실의 연속이다. 오래된 친구와 모종의 사건으로 연을 끊을 수 있고, 부모와의 인연도 결국 예견된 마침표가 있다. 가족조차 영원할 수 없기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언젠가는 이별이 오고, 그 부재가 상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을 관통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상실하는 시간 속에서 그들이 남긴 것들을 좇으며 살아간다. 친구와의 시간, 대화와 웃음을 기억하고, 부모가 남겨준 이름 석 자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짧은 인생에서 유영한다. 상실 속에서 다시 도전하고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영원하지 않음이 사람을 더 간절하게 만든다.

 

영원을 믿지 않았다는 가수는 무대에서 환호성을 들으며 영원을 믿기로 했다고 말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 완성하며 영원을 말한다. 그들의 음악, 그림과 글은 시간선을 넘어 끊임없이 소비되며 감정을 연결한다. 어쩌면 영원이라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따위의 것들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이 지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나누었던 웃음과 눈물을, 아무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린 밤들이 나를 영원으로 이끈다. 내가 말하는 영원은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 속,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은 영원을 믿어 보고 싶다.

 

 

[포맷변환][크기변환]7월 2주차 기고 대표 사진.jpg

 

 

‘영원’이 불온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영원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게 한다. 그러나 그 단어가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길 영(永) 멀 원(遠)의 뜻을 담아 가장 온화하고 낭만적인 말이 아닌가. 결국 영원이란, 끝없는 상실에서도 다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오늘의 감정을 내일로 이어가려는 작고도 단단한 의지일 것이다.

 

 

 

오수민.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