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때보다 싱거운 계절을 나고 있다.
낮에는 여름이 왔나 싶다가도 저녁은 여전히 서늘하고, 봄 내음이 지고 장미가 자줏빛으로 물들어 간다. 누군가는 시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에서 색을 발견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토록 밍밍한 나를 닮은 계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그마저도 잠깐이겠지만.
평소 쨍한 여름이 오기 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다르다. 지나가는 어른이 피식 웃을법한 이야기지만, 역시 나이를 먹고 있다.
‘우리’는 매주 얼굴을 보는 사이지만, 밖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새롭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날에 “육회 먹자” 했다가 “아니, 이제는 동파육이 더 끌린다”라며 말을 바꿔본다. 한편, 왕성했던 식욕도 여름의 기세에 차츰 시들어가고 있다.
의욕에 앞선 식사에는 늘 급체가 따르기에, 메뉴 선택은 신중해야 했다. 자극적인 음식보다 맑고 뽀얀 국물에 마음이 끌린다. 삼삼하니 모든 음식이 술술 넘어가는 그곳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4로 시작하는 나는 북녘땅을 밟아본 일이 없기에 당연히 그곳을 그릴 일도 없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떠나 고향이라 부르기는 애석한 이곳도 나의 고향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청역 근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이북식당’의 만둣국을 한술 뜨면 절로 고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언제나 그립고, 간절한 그 단어가 생각난다.
‘이북만두국’과 김치말이국수(혹은 밥)이면 두 사람의 한 끼 식사로 충분하지만, 항상 곁들일 메뉴에도 눈독을 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고추전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국밥에 따로 간을 하지 않아 종종 핀잔을 듣곤 하지만, 이곳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다. 싱거움은 곧 싱그러움이 된다.

기억에도 없는 그리움을 입맛에 맞는 한 끼 식사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 땅의 맛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껴본다. 누군가는 고아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만둣국 한 그릇 안에도 고향이 있다.
그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