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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생은 코모레비의 연속 - 퍼펙트 데이즈 [영화]

같음 속 다름에 대하여

by 조수빈 에디터
2025.06.11 13:14

 

 

아침에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옷을 챙겨 내려와 이를 닦는다. 필름 카메라, 열쇠, 동전을 챙겨 나와 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 웃음을 지어 주고, 이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다. 히라야마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도쿄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인 그의 하루 하루를 담아낸 영화, 바로 <퍼펙트 데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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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이 영화는 이야기를 따라 흐르지 않는다. 다만 히라야마의 감각과 정서의 결을 따라 천천히 전개된다. 히라야마는 침묵을 유지한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잔잔히 흘러가는 삶을 통해 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매일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같은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같은 가게에서 저녁을 먹는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히라야마를 통해 작은 파문 같은 미세한 변화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다. 롱 테이크를 통한 관조적 시선 속에서 그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 차리게 된다.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의 규칙적인 리듬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똑같지 않으며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빔 벤더스 감독

  

히라야마의 하루는 서사의 미니멀리즘이 한 사람의 삶으로 구현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미묘한 차이를 감각한다. 다소 아날로그한 취향을 가진 그는 출근하는 차 안에서 매일 다른 카세트 테이프로 올드팝을 듣고, 매일 조금씩 다른 코모레비의 사진을 필름 카메라로 담아내기도 한다.

 

업무 도중에도 이러한 ‘다름’은 영화에 스며들 듯 나타난다. 공원에서 찾은 작은 묘목, 뛰어 노는 어린 아이들, 이방인이 몰래 화장실에 꽂아 두고 간 빙고판. 모두 다른 날, 다른 순간에 불쑥 찾아온 작은 세상들이다. 이러한 작은 세상들은 그의 꿈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히라야마는 언제나 꿈을 꾼다. 그가 하루 동안 보았던 것들, 웃어 보였던 것들이 마치 필름 카메라에 현상된 사진들처럼 흑백으로 드러난다. 화장실 청소부를 향한 사람들의 비관적이고 날카로운 시선들은 그의 앞에서 쉽게 상실된다. 히라야마는 그만의 철칙을 가지고,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다. 그의 꾸밈 없는 정직함은 타인의 시선을 조용히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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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어느 날, 잔잔하기만 하던 그의 삶에 ‘니코’라는 변화구가 찾아온다. 히라야마의 조카인 니코는, 그의 일상을 조금 어긋나게 만들고, 그의 과거를 조심스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감정의 매개체가 된다. 집을 도망치듯 나온 니코를 히라야마는 말 없이 받아들인다. 니코는 그의 리듬에 천천히 스며들며 그 안에서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함께 일터에 나가기도 하고, 목욕탕에 가기도 하며 평소 히라야마의 루틴에 있던 일들을 공유한다. 혼자가 편했던 히라야마는 조금씩 타인을 향한 배려를 통해 삶의 리듬을 변형시켜 나간다. 둘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같은 공간과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닮아간다.

  

늘 그렇듯, 히라야마는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침묵은 그의 언어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또 늘 그렇듯, 그 조용한 태도 속에서도 그의 정서는 고스란히, 오히려 더 명확하게 전해진다. 가출했던 니코를 데리러 온 니코의 엄마, 즉 히라야마의 동생은 "아버지를 한 번 찾아 뵙지 않겠냐"라는 말과 함께 "예전처럼 그러지 않으실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그 모든 대사들은 무언가 묵직하게 눌려 있는 가족의 과거를 압축적으로 암시한다. 마지막에 동생과 니코를 떠나보낸 뒤, 히라야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그 눈물의 무게를 통해 그가 짊어지고 있는 과거의 단면을 느끼게 된다.

 

히라야마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모든 취향과 습관은, 그 과거를 떨쳐내지 못한 잔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올드팝, 필름 카메라로 담아내는 흐릿한 풍경, 책장 속 오래된 책과, 한 페이지를 넘기듯 이어지는 일상의 리듬. 모두 과하게 아날로그적이다. 괴거의 어떤 시절이 현재에도 그를 지배하고, 그 지배가 단지 불편한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감정임을 드러내고 있는 증거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히라야마는 니코에게 말한다. 이 말은 히라야마의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지금을 오롯이 지금으로 살고 싶어하는 그의 갈망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을 사는 동시에, 어딘가의 과거를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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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레비’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간 후 등장하는 ‘코모레비’라는 단어는 그저 히라야마가 매일 바라보는 하나의 장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히라야마의 삶을 나타내는 조용한 상징이자 은유다. 굳건히 뿌리 내린 나무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와 그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의 떨림은, 겉으로는 곧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그의 내면을 닮아 있다.

 

코모레비는 매일 같은 풍경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바람과 햇빛의 각도에 따라 늘 조금씩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마저도 히라야마의 삶을 빼닮았다.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아픔을 직접 전달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그의 정서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말 없이 건너 온 감정은 오히려 더욱 깊고 강렬하게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히라야마는 그렇게 오늘도 살아낼 것이다. 코모레비 같은 그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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