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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본인만의 색채를 드러낼 줄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안에서는 수많은 덜어냄과 수많은 결심, 그리고 수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부터 다루게 될 ‘알폰소 쿠아론’은, 예술과 상업을 넘나 들며 본인만의 색채를 흩뿌리고,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허물기에 성공한 감독이다.

 

그렇게 구축된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는 각기 다른 영화들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 <로마>의 사회적 리얼리즘, <칠드런 오브 맨>의 정치적 은유 및 난민 문제, <이 투 마마>의 사회적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언제나 그 시대의 사회적 통찰을 품고 있다. 본 감독론에서는 알폰소 쿠아론의 주요 작품들을 통하여 그가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 전달 방식에 대하여 기술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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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서 짧게 언급하였듯, 그의 영화 주제는 그 시대의 사회적 통찰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통찰을, 개인과 사회의 융합을 통하여 전달한다. 결국 개인은 사회에서 독립할 수 없는 개체라는 것이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되, 그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배경을 계속해서 포착하고 보여 줌으로써 사회 속의 개인을 비춘다.

 

대표적으로 <로마>는 그의 자전적 회상을 담은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그저 단순한 회상에 그치지 않고 하녀 클레오의 감정을 따라가며 그 배경으로 사회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녀의 시선은 매우 조용하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것들은 우리를 향하여 소리치고 있다. 집안일을 하는 클레오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1970년대 멕시코의 계층 구조와 가부장제, 길을 걷는 클레오의 뒤로 펼쳐지는 데모 현장, 즉 정치적 혼란까지. 그녀는 이러한 것들을 체험하며 우리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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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은 출산 불능으로 멸망 위기에 처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정치적 억압과 난민 문제를 강하게 은유한다. 영화 속 영국은 기능하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동시에 철저한 감시와 폭력적 통제로 유지되는 국가로 그려진다. 특히 난민들은 ‘불순물’처럼 취급되며, 수용소에 감금되거나 무력으로 진압당한다.

 

쿠아론은 이들을 배경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카메라를 그들의 삶 가까이로 밀착시키며 현대 사회의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임신한 여성 ‘키’는 생명의 상징이자 통제 사회에 맞서는 희망의 존재로 등장하며, 그녀의 존재는 권력과 국경의 무의미함을 드러낸다. 쿠아론은 이처럼 개인의 이야기 안에 정치적 현실을 정교하게 녹여낸다.


<이 투 마마>는 청춘과 욕망, 그리고 자유를 그린 로드 무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물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 속에 경찰의 부패, 정치적 혼란, 그리고 계층 간 격차가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경찰의 눈을 피하여 빠르게 운전해 나가는 테녹의 모습이나, 영화 초반 데모 현장으로 인하여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 장면 등 알폰소 쿠아론은 인물의 경험에 사회적 문제를 계속해서 녹여 낸다.

 

또한, 두 인물 사이의 계층적 차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층적 차이는 그저 간접적으로 보여 준 하나의 현실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두 인물의 관계의 균열과 종료로까지 이어진다. 개인은 사회에 속해 있고, 그 힘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쿠아론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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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의 기술적인 특징, 즉 전달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알폰소 쿠아론의 롱 테이크는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미학적 장치이자, 몰입의 도구로 기능한다. 그의 롱 테이크는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사실적이다. 관객은 그 안에서 영화를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영화 속에 직접 존재하게 된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추격해 오는 갱단과의 싸움을 긴 롱 테이크로 담아 내면서 마치 관객이 같이 쫓기는 듯한 환상을 일깨우고, 영화 후반부에 테오를 따라 1분이 넘는 시간을 핸드 헬드로 따라가는 롱 테이크는 관객이 테오와 함께 아이를 구하러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이러한 롱 테이크 기법은 다른 영화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투 마마>에서는 도로를 질주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롱 테이크로 담아 내며 사실성을 부각시켰다. 우리는 그들의 긴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며, 마치 같이 함께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로마>에서는 집안일을 하는 클레오를 조용하게, 하지만 길게 따라가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초대하였다.


또한, 그는 신학적 관점으로 영화에 자주 접근한다. 하지만 ‘신의 실재’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보다는, 신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인 ‘성스러움’을 인간에게 적용시킨 형태로 나타난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임신한 키의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마치 예수가 재림한 듯한 연출을 한다거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패트로누스 마법으로 자신과 시리우스를 디멘터로부터 구해내는 장면은 강렬한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일종의 구원 서사를 암시한다. 이처럼 쿠아론은 빛의 상징성과 연출을 통해 신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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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알폰소 쿠아론은 음악보다는 환경음을 중심으로 한 사실적인 음향 설계를 통해, 관객이 영화 속 공간에 직접 존재하는 듯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로마>에서는 배경음악 없이도 거리의 소음, 개 짖는 소리, 비행기 굉음 등 일상의 소리만으로 감정과 사회적 배경을 동시에 드러낸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총성과 군중의 고함, 그리고 후반부 아이의 울음소리가 극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하며, 현실적 긴장과 상징성을 함께 전달한다. <그래비티>에서는 우주의 진공 상태를 반영하여 외부 소리를 제거하고, 인물의 호흡과 심장박동 같은 내부 음향만을 강조함으로써 고립된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처럼 쿠아론은 소리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야기와 감정의 일부로 섬세하게 활용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감각적인 연출과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조화롭게 결합해 내는 드문 감독이다. 그는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현실을 비추고, 기술적 연출 안에 철학적 질문을 녹여낸다. 롱 테이크, 사실적인 음향 설계 등 다양한 형식 실험은 단지 스타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또한 신학적 상징성, 계층과 정치적 혼란에 대한 묘사는 쿠아론 영화의 사적 경험을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시킨다. 이처럼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과 사회, 현실과 초월, 감각과 사유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동시대 영화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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