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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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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바로 구매한 책이 있다. 데어라 혼의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여기서 내가 집중한 부분은 ‘죽은’이다. 꼭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존재가 살아있을 때보다는 죽은 이후에 가시화된다고 느꼈다. 유대인을 홀로코스트 희생자로만 가두는 시선을 비판하는 책의 내용과는 다른 얘기지만, 확실히 죽음으로 한 사람의 신화가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은 죽은 자의 존재감이 강한 영역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바흐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들은 대부분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가끔 나는 클래식을 즐길 때마다 전설이 된 그들이 몇백 년 전엔 나처럼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았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떤 음악이든 음원으로 듣는 것과 실제 공연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나는 특히 클래식에서 그 차이를 크게 느낀다. 음원만 들을 때는 작곡가가 만든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지만, 공연을 보면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럴 때면 클래식은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살아있는 현재의 음악처럼 들린다.

 

친구와 클래식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왜 우리가 아는 클래식은 모두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걸까? 왜 지금은 더 이상 새로운 클래식이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앙상블블랭크 ‘작곡가는 살아있다’ 공연을 보며 내가 얼마나 오만한 질문을 던졌는지 깨달았다. 연주자뿐만 아니라 작곡가도 살아있었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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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음악감독 최재혁을 중심으로 결성된 앙상블블랭크는 현대음악과 예술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예술 단체로, 국내외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공모하고 연주하며 다양한 음악을 전 세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작곡가는 살아있다’ 프로젝트는 세계 35세 미만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공모에서 선정된 작품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는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앙상블블랭크의 야심 찬 시리즈다. 나는 그 네 번째 시리즈를 감상했다.

 

이번 공연은 독일 현대음악의 거장 헬무트 라헨만의 ‘Pression’으로 시작했다. ‘현악기의 물리적 에너지를 소리로 확장하며 긴장감을 탐구하는 실험적 작품’이라는 소개 문구만 보고서는 어떤 연주가 펼쳐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답답했다. 현악기 공연이라면 활을 줄 위에서 움직이며 감미로운 선율을 내야 하는데, 딱 그 줄만 피하고 악기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선율’이라는 것 자체를 의도적으로 피하며 다양한 소리를 냈다. 마치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보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예술인가?’라고 묻던 그 작품처럼 헬무트 라헨만의 ‘Pression’은 내게 ‘무엇이 음악인가?’라고 물었다. 음악이 하나의 기성품이 아니라 소리의 종합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다음 공연으로 2025년 앙상블블랭크 작곡 공모에 당선된 남병준 작곡가와 주시열 작곡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전 세계에서 처음 공개되는 남병준 작곡가의 음악은 팜플렛 소개 문구에 담긴 ‘알 수 없는 모호함’이라는 말처럼 명확한 정체성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 무엇으로도 정의될 수 없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방랑이 음악으로 형상화되었다.

 

주시열 작곡가의 음악은 ‘관점’을 주제로 한 현악 삼중주다. 세 명의 현악기 연주자가 서로 마주 보며 자신의 연주를 펼치는 구성이다. 오케스트라는 한 몸이 되어 하나의 연주를 완성하는 집단이다. 잘 융화되는 연주를 펼치던 그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 흥미로웠다. 연주자들끼리 눈을 맞추는 행위가 소통이나 화합이 아닌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사실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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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서정시 같은 마티아스 핀처의 ‘On a Clear day’를 들을 때는 연주가 끝나고 아주 잠깐 이어지는 여운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실감했고, 천국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묘사하는 듯한 음악감독 최재혁의 ‘Straight to Heaven’은 한스 짐머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음악만으로 웅장한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곡가는 살아있다고 강하게 외치는 공연이지만, 죽은 작곡가의 음악이 빠지지는 않았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 바흐의 ‘Orchestral Suite No. 2, BWV 1067’이 플루티스트 조성현의 협연과 함께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평소 클래식 작곡가 중에 제일 많이 듣는 게 바흐의 음악인데, 살아있는 현대음악을 듣다가 바흐를 들으니 그의 음악만 들었을 때는 몰랐던 고전의 매력을 느끼며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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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빌론>에서 전성기가 끝나버린 배우 잭 콘래드에게 기자가 말한다.

 

“100년 후에 당신과 나 둘 다 죽고 난 후,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보는 순간 당신은 다시 살아날 거예요.”

 

10대 시절 장국영, 커트 코베인에 심취했을 때였다. 어느날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부고 소식으로 처음 그를 알고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면서 문득 내가 일부러 죽은 예술가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도 그가 만든 예술은 영원히 남아 남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확실히 시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예술은 위대하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도 그만의 의미가 있다. 이미 완성된 예술이 아닌, 성장하는 예술을 지켜보는 것도 나 같은 애호가에겐 큰 기쁨이다.

 

그날 나는 앙상블블랭크의 공연을 통해 클래식을 즐기는 새로운 기쁨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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