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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대략 3년 전, 나와 주파수라도 맞는 건지 유달리 확률이 맞아떨어지는 운세가 스마트폰 안에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나는 잠금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운세로 하루의 운을 미리 점쳐보는 것이다. 종종 놀라울 만큼 우연의 일치가 자주 발생하는 이 운세를 나는 어떠한 길잡이나 뜻밖의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의 전조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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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는걸요.’라던 날에는 지인에게 축하해 줄 만한 일이 생겼고, ‘멀리 나가면 기쁜 일이 생기겠네요!’라던 날에는 일주일 넘게 행방이 묘연하던 나의 지갑을 습득해 놓았다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아 지갑을 되찾았다.


하루의 시작은 운세 보기. 불문율처럼 자리 잡은 이 행동은 나 자신을 운세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곤 했다. 오늘 하루 행운의 수치가 높아 로또라도 사야 할 정도라는 운세의 말에 지나가다 복권을 사기도 하는 등의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된 것이다.


종종 나의 하루가 새벽 시간대를 넘어 다음날의 운세를 미리보기 하게 될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내일을 기대하는 요소가 되곤 했다. 그만큼 하루의 기대치가 반감될 때도 있다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운세의 역기능이겠다.


‘오늘은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날이네요.’라든가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으니 언행에 주의하세요.’ 같은 운세도 따라붙곤 하니 괜히 노심초사하게 되는 이 마음. 걱정과 잡생각이 많아 그런 운세가 뜬 날에 나는 잠시 과거까지 돌아가 본다. 내가 혹시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이 독이 되었을까. 내 친구가 나를 지금 안 좋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기억의 흔적을 돌고 돌아 5년 전의 흑역사까지 끄집어 오는 것이다.


정해진 운명은 없다며 일침을 가하듯 말하는 누군가의 영상을 보다가도 유튜브에 업로드된 타로 영상을 틀고 5개 정도의 카드 꾸러미를 빛의 각도와 카드의 채도, 끌림으로 고심하고 선택하기 바쁜 사람이 바로 나다. 흘러나오는 타로 전문가의 음성과 나의 운명을 대조해보고, 나와 같은 선택을 거친 수많은 사람의 댓글을 보며 공감하기도 한다. 재미로 사주와 타로를 본다곤 하지만 은연중 영향을 받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이 굴레에 나는 여전히 빠져있다.


운세는 에너지 드링크 같다는 생각에 자주 빠지곤 한다. 어떨 땐 힘이 되지만 어떨 땐 오히려 지쳐 무거워지는 것이자 맛있어서 자꾸 중독되듯 손이 가지만 결국 어디 한 곳을 해치고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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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늘 행운의 장소는 카페입니다. 가서 커피 한 잔은 어때요?’라는 운세의 말에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여긴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위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집 중 ‘문주’라는 작품 속 한 구절이다.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가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라면, 사라지는 나의 하루들에 대한 예의는 무엇일까.


나는 원체 기억의 게으름을 가진 사람이고 그래서 곤란한 적도 많았다. 남들보다 하루하루를 기억하기 어려웠고,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함께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 난감한 표정만 짓곤 했다. 그렇기에 나의 하루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관여하는 것은 운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습관처럼 붙어버렸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하루를 구성하는 요소일 테니까.


그럼 운세를 하루 끝의 일기처럼 되돌아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오늘은 이럴 거라며 기대와 걱정으로 보내는 날들이 아닌, 오늘의 운세가 이랬기에 말을 조금은 조심할 수 있게 된 하루, 오늘의 운세는 이랬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던 순간이 많았던 하루였다고 지나간 오늘을 기억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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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요즘 운세보다 더욱 강력한 문장이 내게 찾아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짧은 응원의 문자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좋은 하루 보내!” 그 어떤 운세보다 짤막한 문장이지만 ‘너는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낼 거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이 좋다. 나의 하루에 관한 몇 가지 문장을 예측하여 이야기해 주는 것이 운세라면, 이 또한 나의 운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있어 운세는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순간의 결합으로 발생한 우연들의 반복이었다. 스마트폰 속 운세는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는 날’이라지만, 오늘도 나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러므로 오늘의 운세는 ‘좋은 하루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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