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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국악, 아이들의 눈높이로 소통하다


 

최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선보인 어린이 음악회 <신나락 만나락>은 우리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아우르는 이 작품은 자칫 어렵거나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국악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고 친밀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연은 단순히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 전통 선율과 악기를 매개로 부모와 자녀 세대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의 가족 관계와 개인의 성장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다층적인 서사를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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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상상력과 현대적 감수성의 조화: 모험과 성장의 서사


 

극은 음악이 없는 마을에 사는 소녀 '선율'이가 애벌레 '오물'이와 함께 소원을 들어주는 거인 신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설문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설문대는 인간 세상을 관장하느라 바쁜 신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 워킹맘의 모습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읽힌다. 일하는 엄마와 아이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간극을 동화적 서사로 풀어내면서, 아이에게는 엄마의 부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엄마에게는 아이가 느낄 외로움을 공감할 여지를 마련한다. 연출가 박인혜가 밝혔듯이, 이 이야기는 주인공 선율이가 음악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설문대가 전하는 "정성껏 세상을 키워내면, 세상도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걸 알게 되었다"라는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¹


선율이의 여정에 동행하는 애벌레 오물이는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선 상징적 존재다. 그는 선율이의 친구이자 길잡이로서 역경을 함께 헤쳐나가며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더 나아가 오물이는 선율이의 내면을 투영하는 분신, 혹은 미처 발현되지 않은 자아의 표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애벌레지만 누구보다 큰 몸집을 꿈꾸고, 결국 나비로 변신하여 날갯짓하는 오물이의 모습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선율이, 나아가 모든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모험의 과정에서 선율이와 오물이는 홍수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적 위기에 직면한다. 이러한 재난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예측 불가능한 시련과 난관을 상징한다. 이에 맞서는 방식이 '음악의 힘'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논리적으로는 비약일 수 있으나, 극적으로는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운 가락, 리듬, 노랫말로 거대한 운명에 맞서는 주체적 의지와 희망을 상징하는 탁월한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곧 인간에게 내재된 시련 극복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국악, 교육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신나락 만나락>의 또 다른 미덕은 국악기를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녹여내며 교육적 효과와 예술적 재미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점이다. 선율이와 오물이는 모험 중 늪과 화산, '악기나무 숲' 등에서 가야금, 해금, 거문고, 아쟁, 피리, 대금, 소금, 장구를 비롯한 다양한 타악기를 만난다.  이는 극중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연주하는 모든 악기를 소외시키지 않고 극의 주요 요소로 활용하려는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프로그램북에서 각 악기의 생김새와 소리의 특징, 연주 방법 등을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한 것 역시 이러한 교육적 의도를 뒷받침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 전달이 지루한 설명이 아닌,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제시되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연스러운 학습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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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과 배려의 아름다운 결말, 그리고 무대 미학


 

극의 결말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마침내 엄마 설문대와 마주한 선율이는 자신이 엄마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 대신, 애벌레 오물이가 간절히 원했던 ‘커다란 몸집’이라는 소원을 빌어준다. 이는 모험을 통해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만큼 내면이 성장하고, 엄마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 선율이의 성숙을 보여준다. 동시에 친구 오물이의 꿈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과 의리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물이는 비록 거대한 몸집은 아니지만, 고치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날개를 단 나비가 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다. 이는 표면적인 욕망의 실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본질적 가치와 진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선율이는 성장하고, 오물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얻었으며, 설문대는 딸을 향한 사랑을 간직한 채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러한 서사의 감동은 짜임새 있는 무대 연출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 동안 우는 아이 하나 없이 모두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던 데에는 뛰어난 음악과 노랫말의 힘이 컸다. 나아가, 제작진은 해오름이나 달오름극장보다 규모가 작은 하늘극장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배우와 어린이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이를 통해 한층 가까운 호흡을 만들어냈다. 반원형 무대에 단차를 두어 입체적인 배경과 공간감을 창출한 무대 디자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악기나무 숲'이라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전통 악기의 형태적, 음향적 특성을 시각화하여 아이들이 국악기의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경험하도록 도왔다. 더불어 현대 의상과 한복의 느낌을 조화시킨 의상, 그리고 각 캐릭터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낸 인형 디자인 역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미래를 향한 국악의 따뜻한 손짓


 

<신나락 만나락>은 아동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국악의 대중화와 세대 간 소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수작이다. 어린이 관객에게는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함께한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작품이 담고 있는 현대적 메시지에 공감하게 한다. 성공적인 초연을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며 우리 음악의 저변을 넓히는 소중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추구하는 "전통 음악을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하려는"² 노력의 빛나는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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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어린이 음악회 <신나락 만나락> 프로그램북』, 국립국악관현악단, 2025, 3p.

² 위의 책,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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