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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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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춘자씨, 기억을 잃고 길을 잃다


 

더 줌 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가 개막했다.

 

이 작품은 70대 노인 춘자씨가 주인공이다. 요즘 들어 부쩍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춘자씨는 생일날, 큰아들 내외 그리고 둘째 아들과 함께 '소, 원하는 대로 돼지'라는 고깃집에 외식을 나선다. 하지만 그곳에서 숯불을 본 순간,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가 떠올라 도망치듯 가게를 뛰쳐나가 길을 잃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은 갑자기 사라진 춘자씨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지만, 이미 시간과 공간 감각이 흐릿해진 춘자씨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가족들과 떨어진 채 길을 헤매던 춘자씨는 결국 길에서 소변 실수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춘자씨의 환상 속 존재인 '영혼의 물고기'가 등장한다.

 

 

 

이 구역의 신스틸러, 영혼의 물고기!


 

춘자씨가 길 위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 때 등장하는 '영혼의 물고기' 캐릭터는 단연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 캐릭터는 춘자씨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무의식을 투영하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하며, 극에 판타지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물고기는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영혼의 물고기'를 연기한 배우 양나은의 능청스러운 몸짓과 말투는 정말 물고기 같았고, 유연한 신체 표현과 뛰어난 노래와 춤실력은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놀라운 생명력을 부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가 만약 캐스팅 디렉터라면, 이 배우를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꼭 맞는 역할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을 넘어, 장면마다 필요한 동작과 표현을 정확히 캐치해내는 센스가 돋보였다. 특히 역할에 완전히 몰입하여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배우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몰입과 표현의 자유'를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의 존재감은 극 전체의 분위기를 환기하고 재미를 더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이 배우를 보며 '좋은 배우는 수치심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배우가 부끄러움을 타는 순간, 관객의 몰입은 깨져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만큼 양나은은 이 어려운 역할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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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간판들, 영리한 무대 활용


 

무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객석에 들어섰을 때, 무대를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복고풍 간판들을 보고 '저 많은 간판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그 의문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모든 장면에서 간판들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극의 분위기를 만들고 필요한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해냈다. 각 간판은 특정 장면의 시공간적 배경을 암시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특히 넘버가 나올 때마다 간판들이 형형색색의 조명처럼 반짝이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연출은 제한된 무대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고조시키는 영리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춘자씨의 아픔, 눈물샘 자극한 사연


 

춘자씨가 불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오래전, 춘자씨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불이 났고, 그만 어린 딸을 잃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춘자씨뿐 아니라 남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춘자씨의 남편마저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오지 못했다.

 

극 중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춘자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하늘에서 딸을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며 '나는 여기서 남은 두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후 춘자씨의 환상 속에서, 공중전화기를 통해 먼저 간 남편, 그리고 어느덧 훌쩍 자란 딸과 재회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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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가 이어준 희망, 그리고 해피엔딩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은 춘자씨를 다시 찾게 되고, 이야기는 서로를 보듬는 희망적인 결말로 나아간다. 춘자씨가 평생 만들어 온 떡볶이 레시피가 밀키트로 개발되면서 성공하는 과정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를 넘어 각 인물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된다.

 

쇼호스트를 꿈꾸던 며느리는 그 꿈을 이루고 첫째 아들은 밀키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다. 가수가 되고 싶어 하던 둘째 아들 역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춘자씨는 밀키트 포장을 도우며 더 이상 치매가 악화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안정을 찾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따뜻한 공감,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전반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노년의 삶, 가족 관계, 기억과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휴머니즘에 기반한 서사는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특히 가족 단위 관객이나 중장년층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관람 시에도 객석의 높은 몰입도와 공감 어린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치매 노인, 가족 서사, 모녀(혹은 모자) 관계 등은 이미 연극,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꾸준히 다뤄져 온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공연만이 가진 아주 특별한 한 방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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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추천! 가족과 함께 볼 만한 이유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 특히 '영혼의 물고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발견 등 충분히 주목할 만한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평범한 우리네 삶 속에 담긴 슬픔과 기쁨,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가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관객, 특히 가족과 함께 볼 만한 공연을 찾는다면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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