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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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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미래를 구성하는 재료


 

기억은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이 특기인지라 우리를 자주 곤혹하게 만든다. 어제 먹은 저녁 메뉴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 사소한 건망증부터, 애인과의 기념일이나 비행기 출발 시간 같은 중요한 기억마저도 까먹을 때가 있다. 이처럼 기억은 자주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어느새 깊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 새하얗게 사라지게 된다.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본래의 형질을 잃고 제멋대로 변형되는 것도 기억의 대표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 사건의 대한 개인의 인식 세계를 과거-현재-미래로 구분 지었을 때 기억의 좌표는 사건이 일어난 과거에 위치한다. 이 과거의 기억을 현존하는 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기억을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재미난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고증의 오류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잘못을 인정하거나 좀체 실수를 바로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리가 굵어져서 그러는 건 당연히 아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사건의 사실 관계를 파헤치려는 것보다 사건을 재해석하여 성장의 양분으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리화 과정 때문에 기억은 미래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한 인격체가 추구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를 위해 사람은 기억을 자신의 입맛대로 변형하여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기억들을 우리는 바로 ‘경험’이라 부르며, 이는 인간 내면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러니 기억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재료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억마다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니는데 이를 식재료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같은 소고기여도 수입산인지 한우인지, 한우라고 할지라도 1등급도 모자라 +를 무려 두 개까지 붙여가며 등급을 나눠 차등화된 가치를 매기는 것처럼 우리는 기억에도 상이한 가치를 정하여 구분한다.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기억은 떠올려야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고, 값진 기억들은 가슴에 새겨져 인생의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기억의 형태 중, 많은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소중히 여겨지는 기억이 있다. 수백 건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몇 천 킬로그램의 고기를 썰어온 도축업자도 이때의 기억은 생생히 남아 그들의 현재를 이룬다. 이처럼 어느 정도 가치가 보증된 기억의 이름은 바로 ‘처음’, 최초의 기억이다.

 

 

 

최초의 타석


 

좁은 공터 따위가 아닌, 정식 규격의 야구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딱딱한 야구공이 말랑한 테니스공을 대신했다. 모두가 유니폼을 갖춰 입었고, 어린 나는 투수를 포함한 8명의 야수를 마주본 채 방망이를 위아래로 어색하게 흔들며 긴장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와 머리가 모두 작았던 내게는 알맞은 헬멧조차 없었다. 나는 헐거운 헬멧을 푹 눌러쓴 채 최초의 타석에 섰다.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야겠다는 타자의 소양 따위는 어린 내가 깨우치기엔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상대 투수가 던져대는 공은 동네 형들이 던지던 아리랑 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정상적인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 아니었다. 나는 공이 머리 쪽으로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좀체 배트를 낼 수 없었다. 겁에 질려 서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승부는 풀카운트까지 이어졌다. 상대 투수도 초등학생인지라 제구가 좋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처절한 명승부였다.

 

볼을 하나 더 얻어내면 스윙 한번 없이 볼넷을 얻어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로 첫 타석을 매듭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상대 투수는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 승부구를 던졌다. 그러나 공은 투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았다. 공은 투수의 팔 높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내게 향해왔다. 머리 높이로 날아온 공. 가만히 있으면 감독의 바람대로 볼넷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공이 머리를 강타할 것 같다는 물리적 위협과 삼진을 당하는 것만은 안 된다고 강조한 감독의 호통을 모두 무서워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까지 해온 스윙 중 가장 엉성한 스윙을 선보였다. 엉덩이는 저 멀리 빠졌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뻣뻣하게 뻗은 손으로 배트를 어중간하게 돌리다 만 채 굳어버렸다. 심판은 스윙을 선언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헐겁던 헬멧이 시야를 가려 눈 앞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최초의 타석이 끝났다. 어린 내게는 이 순간을 경험으로 숙성시킬 시간과 기회도, 다독여줄 어른 따위도 없었다. 어린 내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산처럼 높게 느껴진 감독의 질타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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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너스 NO.50 김민규

 

 


귓등으로 들어야할 이야기를 귀로 들으면 사고가 난다


 

리틀 야구를 하던 시절, 감독은 삼진을 극렬히도 싫어했다. 타자가 삼진 먹고 들어오는 걸 좋아하는 감독은 없겠지만 지도자 경험을 한 지금의 시선에서, 당시 감독의 지도 방식은 타격의 본질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아마추어, 유소년 지도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펼치며 삼진에 대한 경각심을 퍼뜨린다. ‘상대도 학생(아마추어)이니 어떻게든 공을 갖다 맞추고 냅다 뛰면 살 확률이 높다. 우선 공을 오래 보고 몰리면 배트에 어떻게든 맞춰라.’라는 조언. 어릴 때 야구를 배운 사람이라면 어디서 한 번은 흔히 들어본 말일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고, 맞춰야 변수가 발생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맞추기 위한 스윙을 하고 공을 오래 보는 것만으로는 삼진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타석 접근법과 스윙의 구조적 특징, 두 가지로 설명하려 한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천천히 잘 따라오면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치는 난해한 운동, ‘타격’이라는 개념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야구라는 스포츠 안에서 타자에게 타격의 기회가 무제한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야구 규칙 상 타자에게 주어진 타격 기회는 3번뿐이다. 물론,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을 만들어낸다면 추가로 기회를 얻는다지만, 아무리 파울을 많이 쳐내도 투수가 점유한 우세를 빼앗지는 못한다. 여전히 타자는 수세에 몰려있고 삼진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3번의 타격 기회를 모두 놓친 타자는 삼진 아웃을 당하게 된다. 핵심은 이 ‘3번의 기회’다. 규칙에서는 분명하게 타자에게 3번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이 3번의 기회를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타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삼진을 경계하는 지도자의 논리는 타자에게 주어진 3번의 기회를 제한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볼넷을 얻기 위해 초구를 참으면 스트라이크가 한 개 쌓인다. 뜬공이나 땅볼이 나올까 두려워 짧은 스윙으로 대처하다 보면, 파울이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면 벌써 2스트라이크. 이제 타자는 수세에 몰렸다. 스트라이크를 한 번 더 먹으면 그렇게 두려워하는, 삼진이라는 결과가 닥쳐올 것이다.

 

2스트라이크 상황, 타자가 생각해야할 경우의 수는 많아지고, 어깨엔 힘이 들어간다. 웬만한 공엔 배트가 나가야 하기에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이처럼 2스트라이크 이후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주 상식적인 접근법을 떠올리며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타석 접근법의 해답은 ‘헛스윙’에 있다. 헛스윙이면 스트라이크잖아? 말장난 하는 건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3번의 기회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적극적인 헛스윙을 아주 지지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지를 넘어 응원을 할 정도인데, 경험이 부족한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 헛스윙을 세 번 하고 덕아웃으로 돌아와도 성공적인 경험을 했다고 평가한다. 한번이라도 배트에 맞추면 금상첨화고.

 

생각해보자, 타격의 기회는 3번이다. 애매한 타격으로 파울을 만들면 1스트라이크, 뜬공이나 땅볼을 만들면 아웃이라는 패널티가 주어진다. 안타나 홈런이 나오면 좋겠지만, 기회를 소비하는 이야기를 논하는 중이니 제외하는 것으로 하자. 결국, 타자가 안타나 홈런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가장 인상적으로 기회를 소비하는 방법은 안타나 홈런이 나올 수도 있는, 가장 이상적인 헛스윙을 하는 것이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야구 격언이 있다. 타자는 투구의 타이밍을 맞출수록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타자가 한 번의 기회로는 안타나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이밍을 찾을 수는 없기에 명문화된 규칙으로 3번의 기회를 정하여 타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멀뚱히 서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지켜보고, 공을 갖다 맞추어 애매한 타구나 만들어내라고 소중한 기회가 3번씩이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스윙으로 투구를 헛치며 타이밍을 조율하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타격 접근법을 정리하면, 타자는 주어진 3번의 기회를 소중히 써야한다. 투수의 제구 난조나, 상대 실책 같은 요행이 아닌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야한다. 모든 투구에 정신을 집중하여 볼은 거르고,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에 자신 있는 스윙을 하여 안타를 만들거나, 타격 타이밍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3번의 기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현대 타격 이론의 발전이자, 먼 과거로의 회귀이다. 필자는 키 175센치와 몸무게 70킬로의 평범한 체격의 소유자로 일반인 기준으로도 평균이거나 약간 왜소한 축에 속한다. 그러나 야구를 다시 시작한 6년 동안, 사회인 야구 기록 사이트에 기록된 홈런만 15개에 달하며 연습 경기를 더했을 시 20개가 넘어가는 홈런을 쳐냈다. -당연하게도 경기 수는 프로야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기록을 찾아보니 2024년에는 사회인 야구 2개조, 15경기를 뒤며 5홈런과 0.932의 장타율을 기록했는데, 나는 키가 작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땅볼을 치라던 리틀 야구 시절 감독을 비웃듯 장타를 마음껏 양산했다. 이러한 대변신의 배경에는 미국에서 조그마한 야구 교습소를 차리며 선수를 지도해온 한 할아버지 코치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덕 래타. 과거 LA 다저스의 3루수로 오랜 기간 활약하였고, 현재는 저니맨으로 여러 팀을 오가며 활동 중인 저스틴 터너가 이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제자이다. 터너는 뉴욕 메츠의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오랜 시간동안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해 그저 그런 선수 중 하나로 잊혀져가고 있었다.

 

덕 래타 코치는 방황하던 터너에게 새로운 타격 이론을 전수했다. 할아버지의 노하우를 온 몸으로 흡수한 터너는 비로소 재능을 터뜨리며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한 노망주의 잠재력 폭발이 불고 온 바람은 혁명이 되어 메이저리그 타격 트렌드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타격 이론은 1900년대 초중반,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패션 트렌드처럼, 타격 트렌드도 돌고 돌아 과거로의 회귀를 이루어냈다.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바로 ‘플라이 볼’ 혁명이다. 덕 래타 코치의 타격 이론은 기존 코칭 방법대로 공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치는, 다운 스윙보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어퍼 스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목표는 동일하지만, 다운 스윙은 타구가 낮게 깔리고, 어퍼 스윙은 타구가 높게 멀리 뻗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어퍼 스윙 이론이 국내 지도자들 사이에서 등한시된 이론은 아니었다. 다만, 이를 적용하는 대상이 체격에 따라 구분되었을 뿐이었다. 너는 덩치가 크니까 올려 쳐서 장타를 만들고, 너는 조그마하니까 찍어 쳐서 땅볼을 만들고 뛰어라. 이처럼 능력을 체격으로 한정 짓는 타격 교육방식 탓에 나는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계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나보다 작은 키를 지닌 야구선수들이 어퍼 스윙 타격으로 홈런을 뻥뻥 쳐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호세 알투베, 알렉스 브레그먼, 무키 베츠 등이 왜소한 체격이 무색하게 장타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이에 감명 받은 나는 당장 미국으로 건너가 덕 래타 코치를 당연히 만나지 못했고, 조용히 유튜브로 덕 래타의 코칭 영상을 보며 집 앞 공터에서 스윙 연습을 했다.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오른손을 덮지 않고 끝까지 뻗고, 아래에서 위로 공을 올려치는 상상을 하며 연신 배트로 허공을 가르며 연습했다. 하체의 움직임도 덕 래타 할아버지의 타격 이론에 따라 수정했다. 뒷발을 고정시키라는 기존의 가르침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주먹을 내지르면 자연스레 뒷발이 앞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스윙을 한 뒤에도 뒷발을 앞으로 향하게 하여 전진하는 방향으로 힘을 보낼 수 있게 중심을 이동시켰다.

 

덕 래타 할아버지는 영상 속에서만 내게 타격을 알려주었다. 밀착해서 조언해주는 코치는 직업 야구선수도 아닌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막막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대신, 무어라 잔소리하는 이도 없었기에 계속해서 수련해 나갔다.

 

새로운 타격폼을 익히는 일은 젓가락질을 교정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야구를 처음 접했더라면 흰 종이에 그림을 그려 넣듯이 배우기만 하면 되었지만, 나는 기존의 자세를 완전히 기억과 몸에서 지운 뒤에야 출발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홈런과 장타는 무수한 삼진과 힘없는 타구들을 양산해낸 끝에야 내게 찾아왔다. 지루한 연습 과정이었지만, 기존의 폼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계를 돌파하고 싶은 마음, 세상과 사람들이 규정한 나의 역할을 깨부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방법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타자는 주어진 3번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투구를 공략해야 한다. 그리고 타자는 공을 맞추는 데 집중하는 스윙이 아닌, 장타와 홈런을 노리는 자신 있는 스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다. 교과서에 답이 나와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학생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듯이 이를 팀의 모든 선수가 시합에서 충실히 따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승리의 길이 보이는데 걷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렵고 험난할지라도, 요행을 바라는 것보다는 흥미로운 과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선수들의 스윙, 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가르칠 사람은 나 뿐이었다. 타격 코치? 그런 역할 마저도 아마추어 팀에겐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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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서 소개된 타격 이론은 이야기 진행을 위해 요약되었기에 다소 생략된 부분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타격 이론 특집으로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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