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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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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과학관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일상의 다양한 주제를 과학으로 풀어내는 과학 강연, <별의별 과학특강>을 진행한다. 나는 우연히 4월의 강연 소식을 접하고 즉흥적으로 대전으로 향했다. 이번 강연은 밴드 페퍼톤스 멤버 이장원이 ‘신기술의 출현과 음악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이장원은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이 무엇일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강연을 풀어나갔다. 언급된 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동물은 환경이 바뀌면 그에 적응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싶은 열망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강연은 이러한 인간의 열망이 어떠한 과학 기술 발달을 이끌었고, 그것이 음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결 짓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흘러갔다.

 

과거에 음악을 즐기던 방식을 생각해 보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았다. 연주자를 섭외해 지인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저잣거리에서 공연을 보며 낯선 이들과 흥을 나누는 등 연주자와 관객은 반드시 한 공간에 있어야 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분명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보다 편리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준 두 기술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녹음’이다.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를 방문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제 녹음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녹음 기술 선구자는 ‘마르탱 빌’로, 소리의 파형을 기록하는 장치, ‘포노토그래프’를 발명했다. 이후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에디슨이 녹음 및 재생 장치를 제품화하고 특허를 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축음기의 시대를 열었다.

 

 

 

 

이 날 강연에서는 포노프그래프로 녹음한 프랑스 민요, Au Clair de la Lune의 복원본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들을 수 없었던 녹음본은 파형으로 고이 남겨져 있다가 현대 과학자들의 복원으로 인해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이렇듯 우리는 긴 시간을 뛰어넘는 음악들도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과학 기술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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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증폭’을 활용한 기술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또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나 앰프 같이 소리를 증폭하는 기술을 활용한 장치들이 발명되었고,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음향기기의 발달은 공연 문화를 함께 성장시켰고,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연주자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바람을 넣어줘야 연주할 수 있었던 (파이프)오르간은, 전기오르간, 전자오르간의 발명으로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악기가 되었다. 여러명의 연주자가 동원되어야 했던 합주는 이제 혼자서도 가능하다. 가상 악기의 발달로 다양한 악기 소리를 활용하며 연주는 물론, 컴퓨터 하나로 밴드 음악까지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기술은 연주와 창작의 문턱마저 낮추어준 것이다.

 

강연의 마지막은 AI에 관한 이야기로 점철되었다. Spotify처럼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에게 맞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부터, 샘플링 소스, 작곡까지—AI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장원은 이런 현상이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지를 빠르게 고안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도 오랜 여운이 남았다. 내 마음속에는 질문 하나가 계속 맴돌았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AI는 왜 생겨났을까?”  예술 분야에 AI가 전반적으로 관여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AI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할까?“


우리는 종종 AI가 만든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AI 같지 않다.” “인간 같다.” “자연스럽다.” 이는 마치 디저트에 관한 칭찬 같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디저트가 달지 않고 맛있다는 표현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사람이 아닌 기계에게 인간다움을 기대한다. 그런 점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결국 사람은 인간다움, 즉 마음이 드러난 작품에 마음이 간다는 것이니까. 그래서일까,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사람이 만든 것’이 강조되어 더욱 주목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AI를 친구처럼 여기며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I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고민 상담을 하며 일상을 같이 나눈다. 어쩌면 현실의 친한 친구보다도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런 현상을 보며 나는, 어쩌면 AI의 탄생과 발전 중 일부는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관계의 공허함을 기술을 통해 메우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음악 분야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어느 곳에서든 고품질의 음악을 즐기고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발전의 이유를 되짚어본다면, 앞으로 무엇을 채워야 할지, 어떤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지,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였고, 이제 그 비약적인 발전 속도를 경계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래왔듯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활용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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