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는 모두 비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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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대한민국을 뜨겁게 강타했던 요리 경연, 흑백요리사. 그 열광의 물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이 식재료를 어떻게 가공하여 사용하는지, 어떠한 재료와 조합해서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러 에피소드 안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0화의 "인생을 요리하라”, 즉 자신의 인생을 녹여낸 요리를 완성하는 라운드였다.
출연자들은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 어렸을 때 가족이 해준 요리의 추억 등을 떠올리며 부엌을 분주히 오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요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미션은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그들이 갓 만들어낸 음식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비빔밥 역시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 비빔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흔히 알던 비빔밥의 모습과 사뭇 달랐기에 모두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분명하다.
비빔밥은 밥 위에 각종 나물과 계란, 고추장을 얹어, 먹는 이로 하여금 비벼먹게 하는 한 그릇 요리다. 에드워드 리도 비빔밥 재료를 사용했지만, 방식이 조금 달랐다. 그는 먼저 평평하게 펼쳐놓은 밥 위에 비빔밥 재료와 계란을 올리고, 주먹밥처럼 둥글게 뭉쳐 튀겨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겉면에 참치를 두르고, 초고추장과 들깻가루가 섞인 소스를 살짝 끼얹어 마무리했다.
이 요리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백종원 심사위원은 새로운 비빔밥 해석에 공감하며 높은 점수를 줬지만, 안성재 심사위원은 에드워드 리가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비빔밥 속 재료와 초고추장 소스를 사용했다는 점 외에는 연관성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비벼 먹는 원래 방식과 달리 나이프로 잘라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빔밥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 심사평을 두고, 시청자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나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음식을 비빔밥이라고 표기해서 식당에 팔아도 되는가?”라고 한다면 어려울 것 같다. 고객이 예상했던 메뉴와 실제로 받을 음식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리의 이름에 대한 논쟁을 떠나서, '이 음식이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는 미션을 충분히 소화했느냐'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나의 대답은 'Yes'다. 이 음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리 셰프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에드워드 리는 자신을 '비빔 인간'으로 표현했다.
“저는 비빔밥처럼 많은 문화(가) 있어요. 한국, 미국, 다른 나라 요리 공부.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한국의 정체성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요. 제가 미국 사람인가? 아니면 한국 사람인가? 제가 열심히 요리할 때 그런 생각은 다 없어지고, 그냥 편안하게 하나의 맛을 위해 요리할 수 있어요.”
“비빔밥은 처음 보면 재료 여러 가지 있고, 색깔 많고, 그런데 섞어서 한가지 맛을 만들어요. 저는 비빔밥을 볼 때 그 안에서 제 자신을 봐요. 이건 제 삶과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하죠. 제 인생은 비빔밥과 같아요. 그래서 이것은 제 인생 요리 비빔밥입니다”
“포크로 먹어야 해? 아니면 숟가락으로 먹어야 해?”라고 묻던 백종원 심사위원의 말처럼, 이 요리를 둘러싸고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마치 에드워드 리가 겪었던 혼란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에드워드 리의 비빔밥은 분명 우리가 아는 비빔밥은 아니다. 주먹밥 형태의 튀긴 밥 뭉치는 이탈리아의 아란치니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겉에 두른 참치는 더욱 혼란을 더한다. 하지만 그 속 재료들은 비빔밥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 요리는 여러 요소가 섞여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완성된 맛을 이루며 한국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요리 속에서 에드워드 리가 보였고, 나 또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그가 만든 비빔밥을 보면서, 마치 저 요리가 우리들의 인생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단 하나의 색깔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그런 다채로움 덕분에 빛나기도 하지만, 때로 사람은, 여러 빛깔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다층적인 존재이며, 여러 면을 가진 내가 하나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비빔 인간' 인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재료가 섞이듯,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이 혼합된 존재로서 우리는 이리저리 뒤섞여 있지만, 그 모든 요소가 모여 하나의 ‘나’를 이룬다.
[원정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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