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탄핵 사건을 담당했던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주목을 받으며 그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던 김장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또한 화제가 되었다. 해당 다큐는 넷플릭스 국내 상위 10위 시리즈에도 들어갈 정도로 단시간에 재조명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실 나는 <어른 김장하>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시청했다. 당시 대학 전공 수업 교수님께서 먼저 시청하시고 학생들과 보면 좋을 것 같다며 보여주셨다. 나이로만 보면 이제 막 어른이 된 시기였지만, 그때도 김장하 선생님의 모습은 멋진 어른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더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20살이 되면 '어른'이라고 부르지만, 그 나이에 진정한 어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하기 싫은 일도 참고할 줄 아는 사람.
솔직히 말해 아직도 어른이 된다는 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에서 만난 김장하 선생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존경받을만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김장하 선생은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약업사가 되어 남성당 한약방을 차렸다. 그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을 뿐만 아니라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국가에 헌납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선행을 드려내려 하지 않았다. 기념행사 자리에서는 항상 끝에 서기를 자처했고, 누군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인터뷰하려 하면 모두 거절하고, 직접 찾아와 물어본다면 아예 입을 열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어른 김장하>도 촬영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른 김장하>는 김장하 선생의 직접적인 인터뷰보다는 김장하 선생님께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 혹은 도움받았던 단체의 대표,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며 진행된다.
김장하 선생을 취재한 김주완 기자는 "수많은 취재를 다녔지만,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김장하 선생을 취재한다고 하면 본 받을게 많은 인물이라며 알려져야 한다며 오히려 그의 선행에 대해 성심껏 답해주었다.
김장하 선생의 초등학교 동창은 그를 무주상보시가 배어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무주상보시란, 단순히 대가 없이 베푼다는 것을 넘어, 내가 내 것을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는 것을 뜻한다.
어느 날,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이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제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김장하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런 것을 바란 거는 아니었어.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대개는 보람이나 보상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기대조차 내려놓고,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베풀었다. 그것이 김장하라는 사람이 보여준 어른의 모습이었다.
주변 가족들을 제외하고, 내가 처음 만난 어른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의 나는 '어른'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순진했나 싶기도 하지만, 김장하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정의가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어른 김장하>의 소개 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시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처럼 참된 어른을 만나는 일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어른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이용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그래서 김장하 선생님 같은 분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모습. 자신이 가진 것을 조용히 나누고, 받은 사람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뒷자리에 서기를 자처했던 태도. 그런 삶을 살면서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며, 앞으로 남은 세월도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모습이 요즘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어른다움'을 일깨워 준다.
물론 선한 일을 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선한 영향력은 널리 퍼져야 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어른 김장하>를 다 시청하고 나면 나는 과연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에 대해 스스에게 던지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이 앞으로 김장하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장하 선생님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태도만큼은 꼭 닮고 싶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부정적인 영향을 경계하는 뜻으로 쓰이지만, 나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선한 사람 곁에 머무르다 보면,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어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명에게라도 좋은 영향력을 전할 수 있는 어른. 그런 삶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완성형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닮아가는 현재형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직은 완벽한 어른은 아니지만 김장하 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보며 배우고 닮아가다 보면 '진정한 어른'이라는 것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