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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전>¹ 은 용왕의 병과 토끼 간이라는 모티프로 당대 사회의 모순을 포착하고 우화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화를 통해 인간 사회를 비판하는데, 판소리 사설이 작성된 시기상으로 추측해 본다면 특히 조선 후기 사회의 지배 질서와 권력 구조의 폐해를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동물에 비유해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작품의 서사적 중심축을 이루는 수궁 회의와 산중 회의 장면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두 장면 모두 용왕 아래 신하들과 산군 아래 동물들이 서로 견제하고 이간질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공을 내세운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성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두 장면 모두에서 권력 구조의 속성과 폐해가 나타나고 나아가 지배층의 무능과 허위의식, 피지배층의 생존 전략, 충(忠)의 모순적인 모습,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라는 장치가 서사 전반에 흐르면서 판소리계 서사가 당대 사회를 어떻게 비판하고자 했으며 유기적으로 결합하고자 했는지 탐색할 수 있었다.

 

수궁과 산중이라는 두 장소의 차이점은, 수궁은 비교적 제도화된 관료 체계를 보여주며 산중은 약육강식의 자연적 질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장면 모두에서 권력자 앞에서 아첨과 견제, 무능과 책임 전가, 약자에 대한 착취구조가 모두 나타난다. 이는 <별주부전>에서 내포하고 있는 정서가 위계적 권력 구조 자체를 비판하려는 데에 있으며 권력 구조의 모순과 병폐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인다.

 

수궁의 어전 회의는 용왕의 병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관료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다툼과 그에 따른 관료제 사회의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² 문관(공부상서 민어)과 무관(고래)는 책임을 떠넘기며 대립하고,³ 벌덕게는 ‘충신과 덕망으로 특별히 택’했다는 벼슬이 막상 어이없고 몰이해한 허울뿐인 명분으로 결정되는 현실을 말하며 수궁의 부조리를 꼬집는다.⁴ 용왕이 직접 나서 후보를 거론하지만, 거론된 후보들 모두 온갖 말뿐인 이유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위기 해결 능력이 없고 의지도 없는 무능한 지배층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형식과 체면만 중시할 뿐 실질적인 통치 능력을 상실한 당대 관료 사회에 대한 풍자라고 보인다.

 


¹ 최혜진 외 4, 「토별가」, 『쉽게 풀어 쓴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 172-216쪽.

² 위의 책, 175-180쪽.

³ 고래가 분을 내어 앞으로 나아와 여쭈오되, “바다와 육지가 다르니 수중에 있던 군사가 육지전투를 어찌할지……. 저런 소견 가지고도 문관 세력 믿고 세도 부려 좋은 벼슬 하여 먹고 조금 위태한 일이면 무반에게 밀려 하니, 뱃속에 있는 것이 부레풀뿐이기로, 변통 없이 하는 말이 얽혀 융통할 수 없는 것과 같사이다.”(위의 책, 177-178쪽)

⁴ 게가 분이 잔뜩 나니 미처 말을 못 하여서 입에 거품을 일면서 열개의 발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발명한다. “수중의 벼슬들이 인간과 같지 않아 세도로도 못 하옵고 청으로도 못 하옵고 충신과 덕망으로 특별히 택하여 하옵기로, 농어는 (중략) 친구가 점잖다는 이유로 이부상서 벼슬을 차지하였고, 문어는 (중략) 이름이 글월 문(文)자라는 이유로 (중략) 예부상서 벼슬하옵고 (후략)” (위의 책, 178-179쪽)

 

 

산중의 모족 회의는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더욱더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일단 모족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이유는 ‘인간심이 하수상하야’ 사냥꾼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회의는 절대 권력자인 산군 호랑이를 중심으로 아첨과 착취, 폭력의 장으로 변질된다. 여우는 호랑이에게 아첨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멧돼지 새끼를 희생양으로 삼고,¹ 다람쥐는 자신만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이기심에 쥐를 끌어들인다.² 이 과정에서 약자들은 철저히 희생당하고 그들의 고통을 볼모 삼아 권력자의 허기를 채우며 그들의 고통마저도 ‘조롱거리’로 소비된다. 수궁 회의가 나름의 체면과 형식을 갖추었지만 위선적 모습으로 갈등을 은폐하려 한다면, 산중 회의는 힘의 논리에 기반해 폭력과 수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산중 회의는 곰이 등장해 이 동물 사회의 모습이 인간 사회의 수탈과 다를 바 무엇이냐고 분노³하고 나서야 끝이 나며, 이 장면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우화적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두 회의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지배층의 무능과 허위의식이다. 용왕은 절대 권력을 가졌음에도 신하들의 공허한 논쟁에 휘둘릴 뿐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호랑이 역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식욕을 채우는데 급급하며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려 할 뿐이다. 이러한 지배층의 무능은 피지배층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또한 <별주부전>은 충(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충(忠)이라는 것은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해되지만 이 충(忠)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가치는 훼손되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별주부 자라는 용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육지로 향하는데, 그의 충성심은 토끼를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를 통해 달성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에 의문을 들게 한다. 이러한 맹목적인 충성이 누군가에게는 기만과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된다는 점에 있어서 과연 진정한 충(忠)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별주부전>은 수궁과 산중이라는 대립 된 공간을 병렬적으로 구성했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회의 장면을 통해 당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지배층의 모순을 풍자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배층의 무능과 허위의식, 피지배층의 고통과 생존 전략, 충(忠)의 양면성 등 다양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동물 우화의 틀 안에 녹여내었다. 그러면서도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곰이 말했듯⁴ 동물들의 이야기가 결국 인간 사회를 나타내기 위한 거울로 동작했다고 보인다. 결국 <별주부전>을 통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권력의 속성과 사회적 모순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였다.

 

 


¹ 위의 책, 192쪽.

² 위의 책, 191쪽.

³ 위의 책, 192-193쪽.

⁴ “산군은 수령 같고, 여우는 간사한 출패, 사냥개는 세도 아전, 너구리, 멧돼지며 쥐와 다람쥐는 굶지 않는 백성이라. 오늘 저녁 또 지내면 여우 눈에 못 되인 놈 무슨 재난 또 당할지, 그 놈의 웃음소리 뼈 저려 못 듣겠네. 그만 하고 파합시다.”(앞의 책, 192-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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