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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대문, 평행선 위에서 건네는 작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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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에게도 자전거 페달을 대신 밟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남색대문』은 그런 이야기다. 서로를 바라보며도 결코 겹쳐지지 못하는, 그러나 함께 같은 속도로 달리는 평행선 같은 관계들. 이 영화는 십대의 미숙함과 불안정한 내면을, 언어가 아닌 공간과 행동,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며드는 침묵으로 표현한다.

 

2002년 대만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삼각형조차 되지 못한 채 어긋난 마음들이 나란히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장시하오(진백림 분), 멍커로우(계윤미 분), 위에전(양우림 분). 이 세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심을 감춘다, 또는 드러낸다.

 

누군가는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자신을 꺾고, 누군가는 불안한 마음을 문장으로 고정해보려 애쓰며, 또 다른 이는 무색무취의 진심을 꾸밈없이 꺼내 놓는다. 그런데, 그 행동들이 모여 얽히는 순간, 관계들은 미묘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이 관계의 ‘삐걱거림’을 결코 선명하게 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영상이 말하고, 공간이 감정을 대변한다.

 

예를 들면 흰 교복 속의 그들은 공적이고 익명화된 존재이고, 사복을 입고 체육관에 있는 그들은 보다 진심에 가까운 모습이다. 특히 체육관이라는 공간은 압도적인 여백을 제공한다 — 그곳은 진심이 천천히 흘러나와도 흡수될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구석에 웅크린 멍커로우, 1층 한복판에서 당당한 장시하오. 공간이 곧 인물의 내면을 대변한다.

 

그들이 겪는 관계의 폭력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의자, 멀리서 바라만 보는 시선, 바닷가에서의 침묵. 이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관계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일수록 대사는 줄어든다. 관객은 느끼게 되고, 관찰하게 된다.

 

말이 아닌 몸짓과 거리, 빛의 명암과 소리의 여백으로 감정을 읽어야 하는 영화.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체육관 벽에 작은 낙서를 남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 “2001년 내가 여기 왔었다!”


이 짧은 문장들. 언뜻 사소하지만, 이 말들은 이들이 평행선 위에서 드러낸 유일한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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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영화는, 서툴고 정해지지 않은 관계를 그저 아름답게 두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작고 잔잔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걸.

 

그 시절, 그 여름의 기억이 나만의 남색대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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