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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시종 멋진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다.

 

거리를 걸어 다니며 재즈의 리듬을 만끽하는 장면, 우에노 주리가 하품하는 장면, 밴드부를 나오면서 참던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 눈 쌓인 코트를 입고 무대에 쏟아져 나오는 장면, 그리고 말 그대로 ‘스윙 걸즈’가 되어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따로 떼어서 클립으로 보아도 충분히 인상적일 만큼 에너제틱한 장면들이다. 20년 전 영화인데 요즘의  ‘숏폼 감성’을 담고 있다. 생기발랄한 이미지들과 소리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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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걸즈>


 

<스윙걸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2004년작 하이틴 코미디 영화이다. 우에노 주리의 출세작이자 일본 청춘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주인공들은 우연한 계기로 흥미를 찾고, 그 일에 전력투구해 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 안에서 내적으로 한층 더 성장한 인간이 되고, 우연히 만난 서로는 어느새 대체 불가능한 누군가가 되어있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면 어느새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을 거라는 응원을 건넨다.

 

이런 청춘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 보이는 이 영화는 어딘가 특별하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 영화만의 분위기가 있고, 나는 그 분위기에 무장 해제되었다. <스윙걸즈>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은 무엇일까.


스즈키(우에노 주리 분)는 12명의 학우와 여름방학에 수학 보충수업을 듣다가 우연한 계기로 밴드부에 들어가게 된다. 어렵고 서툴렀지만, 밴드부 활동은 신선한 자극을 남겼다. 밴드부 활동을 마친 후에 스즈키와 친구들은 밴드부에서 탈퇴한 남학생 나카무라(히라오카 유타 분)와 함께 ‘스윙걸즈’(앤어 보이)라는 이름의 빅밴드를 결성한다. 돈도 악기도 옷도 실력도 없지만 재즈에 대한 열정과 마음은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따라서 앞으로 달려가기 바쁜 이 밴드는 좌충우돌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겪는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이 영화에 관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우들의 성장이 기대 이상입니다. 따라서 영화의 완성도는 120%.’

 

실제로 배우들이 몇달간의 관현악기 특훈을 거치면서 영화 촬영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감독이 말하는 저 ‘성장’이란 아마도 음악적 역량까지도 포함하는 말이었을 테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음악적 완성도가 필요하면 전문 세션을 고용하면 될 것이고, 이미 음악적인 경험이 풍부한 배우를 고용하거나 후시녹음을 하면 될 일이지 않을까? 배우들을 직접 훈련하는 방법은 너무 번거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감독은 우연찮게 만나 우연히 음악을 연주하게 된 ‘스윙 걸즈’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성장을 영화의 완성도와 직결시키고 있다. 즉,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줄곧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개인이다. 배우들은 영화의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훈련하면서 변화하고, 배역은 영화 안에서 악기를 잘 다루기 위해 변화한다.

 

그 변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사실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한한 기회와 시간이라는 점이다. 감독은 청춘이라는 말을 흰 도화지 같은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아직 때묻지 않아 기회가 많이 남은 것. 지금은 일본 영화계의 큰 얼굴들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새로 발굴한 배우들이 이 영화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도 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악기 앞에 선 그들에게 놓인 시간 혹은 가능성을, 악기를 다루며 느끼는 기쁨과 재미로 바꾸어 가는 것.

 

그 과정을 카메라로 줄곧 포착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었고, 영화가 담아내는 청춘의 속성이었다.

 

 


영화가 담고자 하는 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속도감이 특히 느려지는 부분이 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비디오를 찍은 다음에, 그 주변의 눈을 던지며 눈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스즈키와 나카무라는 눈싸움을 하다가 얼마간 눈을 마주치고, 알 수 없는 텐션이 감돌다가 스즈키의 장난으로 씬이 마무리된다.

 

음악을 연주하다 보니 서로 간의 사랑이 싹트는 건가 싶다가 이내 짓궂은 장난으로 마무리된다. 관객도, 캐릭터도 모두 복잡한 생각할 것 없이 즐기면 된다.

 

이 영화의 플롯은 그다지 어렵고 커다란 장애물을 놓을 생각이 없다. 발에 걸리는 장애물은 돌아가면 그만이다. 돌아갈 길이 안 보이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싫다. 그냥 지금은 눈 맞은 만큼 눈 던지면 된다. 단순하고 쉽게, 대신 즐겁게. 이 영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자세이다.

 

뭐라 말을 해야하는데 자꾸만 실소가 터져 나올 때. 매 장면에 거창한 제목을 붙이기보다 순간의 즐거움으로 그냥 눙쳐 웃어버릴 때.

 

거기엔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다섯 살짜리의 마음이 있다.


트럼펫에 입을 대고 후 부는 순간, 어떤 소리가 나올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근사한 소리에 이내 사르르 녹아내린다. 뿌듯한 마음과 다섯 살짜리의 미소가 싱긋 얼굴에 번진다.

 

그때, 기분이 잠깐 고양되었다가 가라앉는 것 같은 그 느낌. 잠시 공중에 붕 떴다가 다시 착지하는 그 감각.

 

좋아한다는 말이 주체할 수 없는 웃음으로 자동번역되는 그 순간을 야구치 시노부는 내내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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