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은 모두 손길이 필요해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묻는다. 누군가에게 “같이 살자”고 말하는 일은, 도대체 어떤 마음의 결정을 수반하는가.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 그것도 그 사람의 상처를 알고 있을 때, 더욱이 그 상처가 내 상처와 겹친다고 느껴질 때. 그때 “같이 살자”고 말하는 건 단순한 환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말의 무게를 다룬다. 설명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며, 다만 함께 살아보며 천천히 증명해 보이겠다는 태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며, 가마쿠라의 오래된 이층집에 사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복 여동생 스즈를 집으로 데려오며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상처를 가진 네 사람이 서로의 틈과 그림자를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영화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이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를 좇는다. 전학, 밥상, 병원, 축구, 어묵카레 같은 일상적인 장면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은근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너무 평범해서다. 극적인 장면이 없다. 설명도 적고, 시간은 흐르되 별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일상이 서서히 번져들며 삶을 바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사건보다 감정의 리듬을 찍어내고, 드러나는 말보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에 집중한다. 그런 방식으로 관객에게 스며든다. 우리는 어느 순간, 낯선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등굣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놓인다.
이 영화에서 반복과 순환은 매우 중요하다. 산에 함께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장면, 아버지의 추억이 서린 장소, 낚시, 매실주, 해산물 카레—모두가 앞세대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 삶을 되살리는 동작이다. 가족은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시간을 공유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것을 감독은 이야기한다. 스즈가 “살아있는 건 모두 손길이 필요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녀의 절박한 마음이자, 이 영화 전체의 윤리다.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반드시 상처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따라야 한다. 사치가 스즈를 향해 그렇게 했듯이.
사치의 아버지는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부재한 인물이지만 모든 인물의 감정 안에서 작동한다. 원망의 대상이자, 공감의 기점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상처는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지만, 이 인물들은 그 상처를 사랑의 방식으로 덮는다. 가마쿠라의 바닷가 마을, 낡은 이층집, 잔멸치 덮밥 같은 삶의 풍경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상처를 드러내는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유카타를 물려주며, 매실주를 같이 담그는 방식으로 이들은 “같이 살아가는 일”을 증명해간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결말이 없다. 죽음도, 이별도, 갈등도 있지만 모두가 작고 느슨하게 흘러간다. 사치가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 소식을 듣고 상심하는 장면도, 어머니와 격한 말다툼을 하고 화해하는 장면도, 일상에 다시 흘러들어간다. 장례식 후, 이들은 바닷가를 걷는다. 아무도 울지 않지만, 모두가 지나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조차도 이 영화는 다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는 마지막 말처럼, 이 영화는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감싸안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말, “같이 살자”, “밥 먹자”, “힘들면 말해” 같은 말들의 무게를 정중히 되살린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고, 돌봄의 언어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 언어를 시냇물처럼 잔잔하고도 고요하게 관객 앞에 흐르게 한다.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가 진짜 가족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