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흥분된다. <나라야마부시코>를 시작으로 <우나기>, <붉은 다리 아래 따듯한 물> 등 그의 영화들을 볼때마다 이것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최고작이다라고 말했던 순간이 몇번이었나. 나에게 매번 새로움을 안겨주었던 그가, 이번에도 역시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이다.
그의 영화 중에선 우나기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처음에 우나기도 갑작스레 아내를 죽이고 그 뒤의 그의 일상이 전개된다하면, 이 복수는 나의 것 역시 에노키즈라는 인물의 살인범이 그냥 초반부터 연행되는 장면부터 나오는 방식이다.
보통의 이런 영화가 살인범을 쫓고 결국 그를 잡아내기까지의 그 방대한 과정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아예 처음부터 이 사람이 살인범이다 하고 보여주고 그 역순으로 그가 했던 범행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방식을 쓴 범죄물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기억 안나고 그와 비슷하게 우나기처럼 누군가를 살해하고 시작부터 자백하는 그의 영화만 떠오른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선 범죄수사물에서의 긴장감과 스릴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주안점을 뒀다 유추해볼 수 있다.
애초에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이런 장르에서 범인을 대놓고 보여주면 당연히 그 긴장감이 식어버린다는 것을 당연히 알텐데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차용한 건 이건 극 중 인물인 에노키즈가 범인이라는 것보다 그의 일종의 일대기, 그와 관련된 인물 크게 그의 아버지와 아내의 일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에노키즈가 인물들을 살해하는 것들이 너무도 긴장감없이, 마치 그냥 산책하는 것처럼 평온하게 다뤄지고 그다지 별다른 저항없이 피해자들은 죽어간다.
그런 와중에 그의 아버지와 아내가 서로 은밀하게 교류하는 것을 내비치고 그가 살해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사건들, 그 여관에서의 일들 이런것들이 다뤄진다.
즉 이 영화는 확실한 틀과 구조를 갖고있는 영화라기보단 큰 틀 하나만 갖고 그 안에서 마치 마음껏 등장인물들을 풀어놓은 듯한 구조를 취한다. 그래서 그런지, 흔히 이런 범죄수사물을 볼때면 느끼는 그 불안감,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일상물처럼도 느껴질 정도로 그 모든 것이 너무도 평온하게 느껴져 되려 소름돋기도한다.
이런 느낌은 마치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를 볼때면 느꼈던 그 무엇과도 유사하다. 예를 들자면 태풍클럽에서 아이들이 광란의 밤을 보내는 장면들이라던지 혹은 마지막에 의자를 탑처럼 쌓은뒤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아이의 모습이라던지. 섬뜩한 장면을 너무도 평온하게 방관하듯 바라보는 그 카메라의 워킹, 그리고 담담히 연기하는 인물들 때문인지 그런 장면을 평온하게 바라보다 이내 흠칫하고 놀라게 되는 느낌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결코 뻔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뻔하게 될법한 장면이나 설정들도 한번 더 비틀어서 이전에 없던 영화를 만들고자하는 것 같다.
엉뚱함, 참신함이 항상 샘솟는 것 같다 그에겐. 이를테면 살인을 하고나서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변으로 닦아내는 장면이라던지. 애초에 손 말고도 다른 곳에도 피가 범벅이되어있는데 그 장면이 웃기기도 하고 참신하게도 느껴지고 여러 생각이 들었던 신이다. 내가 상상한 이 영화의 이미지는 범인을 쫓고 그 범인이 얼마나 엽기적이고 기괴한 인물인지, 그의 범행을 통해 보여주는 건줄 알았는데 후자는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면 여기서 쫓는 것이 사라졌다.
그 범인이 잡히는 연유도 굉장히 단순하고 재밌는데 그를 뉴스에서 본 여인이 그가 놀이터에서 배회하는 걸 우연히 목격한 뒤, 고민하다 결국 경찰에 신고해서 붙잡히는 것이다. 정확히 그렇게해서 붙잡힌건지는 나오지 않지만 그 장면을 넣고, 다시 오프닝처럼 그가 취조실에 있는 장면을 이어붙였기에 그래서 잡혔다고 자연스레 유추하게 된다.
마지막 엔딩신은 결국 에노키즈 아버지의 아내의 유골을 그의 며느리와 산에 올라가 흩뿌리는데 내려가지 않고 화면이 정지한 듯 멈춰지는 여러 신들의 짜깁기, 즉 몽타주이다. 처음엔 이게 화면상의 어떤 오류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말그대로 그 유골이 평온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머무른다는 것, 즉 그가 그의 며느리와 바람을 폈기에 그의 아내가 죽어서도 평온히 갈 수 없다는 것을 전달하려 한 것 같다. 이런 어떤 설화를 섞은 픽션은 마치 나라야마부시코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이었다면 정말 cg를 통해서라도 그 주변 풍경은 움직이고 그 뼈만 공중에 멈춘듯하게 했을텐데(그랬다면 상당히 이상하고 엽기적인 신이 되었을 것 같긴하다.), 당시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 그대로 필름이 딱 거기서 멈춘 것처럼 화면을 정지시켜버린다.
엔딩신을 이렇게 장식한 걸 보면 결국 이 영화는 에노키즈라는 인물보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내와의 바람이라는 설정을 자연스레 더 부각시켜 보여주어 에노키즈라는 인물에게 상당히 복잡한 정서를 관객으로하여금 갖도록 유도한게 아닐까한다.
영화가 그렇게 끝나는데도 여전히 에노키즈라는 인물을 관객은 오프닝때와 마찬가지로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단 그랬다. 그의 많은 범행을 봤음에도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죽였고, 그는 왜 그토록 증오하는듯보였던 아버지는 끝까지 죽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의 아버지 말대로 해를 가하지 않은 이들만을 죽이려는 그 스스로의 어떤 특성때문일까. 그런 특성마저 단순히 어떤 비정상인의 사고로 치부하기에는 그는 그보다 더 복잡한 내면을 갖고있는 인물갖다고 생각이 되어지고 감독도 그를 그런 캐릭터로 보길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상했던 영화와 상당히 달라 이질감이 들기도 했지만 생전 처음보는 유형의 캐릭터, 꽤나 많은 범죄수사물을 봤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범인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발견한 것 같아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