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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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 〈다정함〉, 2019, 디지털 드로잉, 200 × 200mm.

 

 

늘 하는 생각이지만, 아트인사이트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유가 구성원들의 작품에 온전히 담겨있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라고 늘 생각해왔다.


어느 날, 문화초대 알람이 울렸다. 일전에 문화초대로 보았던 연극이 꽤 재밌었기에, 다시금 연극 문화초대이길 바라며 알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좀체 접하기 힘든, 아니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행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다녀온 문화초대는 아트인사이트 기획전, 틔움의 첫 시작이었다. 작년 연말에 예술인 네트워킹 행사에 놀러가 즐겁게 시간을 보낸 탓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고 나가 어울렸다. 이런 나에게 이번 기획전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참여하는 것을 넘어, 언젠가는 내가 직접 예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싶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일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전시 공간은 요즘 가장 핫한 성수동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4시 즈음 와서 작품들과 굿즈들을 구경했는데, 좌담회 참석자의 입장과 근처를 돌아다니다 구경하러 온 관람객의 시선을 모두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가의 이름과 설명을 읽어보지 않은 채 작품을 감상했다. 주제가 정해진 전시가 아닌 만큼,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는 작품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귀엽고, 포근하고, 위트 있고, 관능적인…. 이외에 수많은 멋진 수식어들이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들. 나는 여섯시가 되어 이 작품들의 주인을 만나볼 생각에 한껏 격양되었다.


공간을 나서기 전, 굿즈 진열대에서 고래 키링 하나를 골랐다. 작가님들을 만나보기 전,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고른 굿즈였다. 고래는 멈춰있었지만,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천천히 꼬리를 내저어 유영하려는 듯 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듬직해보였다. 내가 어떤 길을 걷든 하늘을 천천히 날며 나와 함께해줄 것 같았다.


단번에 녀석을 납치한 뒤, 좌담회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좀체 흐르지 않았다. 내 눈을 사로잡았던 그림들이 어떤 예술가의 손에 탄생되었는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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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 〈존재의 근원〉, 2025, 디지털 드로잉, 270 × 220mm.

 

 

좌담회가 시작되어 조원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작가님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대성, 유사사, 은유 작가님이 참석해주었기에 3명씩 조를 나눠 작가님들에게 작품 설명을 듣고 질문하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된 작가님은 대성 작가님이었다. 대성 작가님의 그림체는 변화무쌍했다. 각기 다른 세 가지 형식의 그림체의 작품을 전시했고, 모두 다른 작가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의 높은 퀄리티를 지녔다. 만평의 재미를 지닌 카툰풍 작품, 귀여운 캐릭터를 그린 일러스트, 수채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화상. 이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모두 대성 작가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혼자 둘러볼 때는 작가 이름이나 설명을 보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 집중했기에, 다른 작가가 그린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밝혔듯, 아트인사이트에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가벼운 사유 따위 가볍게 비웃으며 작가님은 내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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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선인장〉, 2024, 디지털 드로잉, 420 × 326mm.

 

 

다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작가님은 은유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의 작품 속에서는 눈물이 형상화 된 바다와 아픔과 고통이 선인장의 가시로 표현되었다. 주인공은 우울의 심연에서 허덕이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해도 선인장이 오지 말라며 위협하고, 장미의 가시들이 눈 앞까지 매섭게 자라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 하늘은 항상 밝다. 6~7 점에 달하는 작품 중 밤이 등장하는 건 단 한 작품뿐이다. 작가님은 해가지지 않는 백야와 사막을 접목해 작품 속에 표현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낮은 생명력이 가득해, 에너지가 느껴지고 새로운 시작이 기다려지는 시간대이다. 그렇기에 행복과 주로 연결되지만, 작품 속에서는 우울에서 비롯된 비극성을 더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주인공의 속은 거멓게 문드러지고,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하지만 해는 높고 쨍하게 떠있다. 마음은 어두운데 오히려 햇살은 빛난다. 이러한 대조가 작품의 비극성을 한껏 높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그림에서, 드디어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둠으로 물든다.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환하게 떠있었지만,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던 별빛이 밤이 오고 나서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처음 본, 사막에서의 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러한 궁금증이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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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사, 〈총총〉, 2025, 캔버스에 종이와 펜 드로잉, 100 × 100mm.

 

 

마지막으로, 유사사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작가님과는 구면이었다. 일전 피드백 모임에서 같은 조가 되어 글, 그림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예술 친구였다. 이전에 봐왔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시된 작품은 보다 색다른 매력을 지닌 새로운 그림이었다.


유사사 작가님의 작품은 작업 방식부터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각종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현 시대의 작업 방식을 정면으로 역행했다. 유사사님의 작업 도구는 반투명종이와 펜이 전부였다. 선을 잘못 그려도 되돌릴 수 있는 버튼 따위 없다. 잘못 그렸다 하더라도 이미 그어버린 선을 살려 그림을 완성해야한다.


마치 장인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디지털 작업 방식을 이용할 때, 홀로 아날로그를 고수한다는 건 보통의 철학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펜으로만 그린 그림이지만, 깊이는 다른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날로그만이 지닌 매력이 유사사 작가님의 그림에서 활짝 피어났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완성한 작품이 10개도 넘어보였다. 이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다보니, 신비로운 펜 그림의 세계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

 

이번 기획전을 통해 만난 다양한 작품들은 저마다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전시된 모든 작품들에서 작가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상주하지 않는 갤러리나, 큰 미술 전시에 가면 그림 앞에서 팔짱 끼고 아무리 오래 고민해봤자 개인의 사유에서 멈춘다. 그러나 이번 좌담회에서는 관람객 1인의 시선이 아닌, 창작자의 시선. 그리고 같이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색다른 관점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아트인사이트 기획전 틔움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도 언젠간 이런 자리를 기획하고, 주관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월급과 경력에 저당 잡혀 살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재미난 행사에 많이 참여하고 싶고, 열어도 보고 싶다.


다양한 경험을 안겨주고, 야망을 키워준 이번 전시. 정말 재밌었고, 그런 만큼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재미난 행사가 더욱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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