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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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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우리 집에서만큼은 예외였다.

 

내가 눈물을 글썽일 때면 아빠는 안 그래도 큰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며 '울면 이거 안 해줄 거야'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우는 아이는 산타에게 선물도 못 받는다는데, 주삿바늘이 제아무리 따끔할지라도 눈 딱 한번 감고 울지 않으면 '너 진짜 용감하구나'라는 칭찬까지 따라오니 어린 내가 눈물을 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뒤로 난 남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가 됐다. 짐짓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여전히 눈가가 먼저 시큰해지곤 했지만, 눈물만큼은 흘리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눈치 없는 눈물이 안구를 비집고 튀어나오려 할 때면 귀에다 발바닥을 대고 전화받는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꾹꾹 참았다.


억지로 막아둔 눈물댐은 스무 살이라는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어른스러움을 표방하며 살아왔는데, 진짜 어른의 나이가 되니까 '어른스럽다'는 말은 더 이상 매력적인 칭찬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게다가 주위에 눈물 나는 이야기는 왜 이리 많은지. 어느 날은 스크린 속 청춘이 너무 눈부셔서 울었고, 어느 날은 흐릿해져 가는 할아버지 얼굴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


과거에 비해 눈물의 절대적인 양은 증가하였으나 대개는 혼자서, 몰래, 숨어서 울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우는 모습을 들킨다는 건 나의 발가벗은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게 눈물은 나약함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 내가 덤덤하지 못한 탓에 잎새 이는 바람에도 눈물을 훔치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나마 본가를 나와 나만의 공간이 생긴 후로는 언제고 눈물이 차오르면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일상이 유달리 촉촉해진 것도 그즈음 무렵이다. 침대에 씻지도 않고 드러누워 시큰둥하게 핸드폰 화면만 넘겨대다 슬픈 쇼츠를 만날 때면 급격히 뿌예지는 시야에, 폰을 침대에 던지고 심호흡을 내쉬는 날도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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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 시간에, 그것도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었다. 울음이 가시고 나니 괜히 머쓱해져서 휴지뭉치만 만지작 거리다 창피하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상담실에서 우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창피해할 필요 없다고. 다만 본인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며 울고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잘 모르겠어요'라는 여섯 글자로 뭉뚱그렸던 눈물의 의미를 찬찬히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대체 나 왜 운 거지? 정류장에서 버스 도착시간을 올려다보면서, 올라탄 버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골똘히 생각했다. 아, 나는 누구보다도 내 삶을 잘 운용해 나가고 싶은데 지금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최근에 흘린 눈물의 의미는 '잘 살고 싶어서'였다.


반쯤 막힌 코가 뻥 뚫리듯 가슴 한편이 후련해졌다. 내가 나의 삶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흘리는 눈물이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골몰히 고민하고 온몸으로 불안해하며 토해낸 눈물이라고 하니 희한하게도 이 눈물이 애틋하고 제법 사랑스러워졌달까.


거울에 비친 팅팅 부은 눈가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예쁘지는 않지만 아주 밉지도 않다. 힘주어 웃는 날이 있으면 목 놓아 우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 모든 날이 모여 내가 된다.


이제야 속 시원히 말해본다.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슬퍼야만 우는 건 아니잖아. 난 이런 내 눈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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