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실내 뮤직 페스티벌 '사운드베리'는 2014년 공연 브랜드 론칭 후 대중성은 물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선보여왔다. 이번 '2025 Soundberry Theater(이하 사운드베리 씨어터)'는 3월 22일, 23일 양일간 달콤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를 꾸몄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인지라 짐을 바리바리 쌀 필요 없이 가벼운 몸으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페스티벌은 처음이라는 지인과 동행했는데 쾌적한 공연장 컨디션 덕분에 장시간 관람으로 발생하는 불편함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입문용 페스티벌로 제격'이라는 평을 받은 이유가 절로 이해되었다. 실내에서는 공연을, 바깥에서는 F&B를 즐기는 방식으로 두 섹션이 완전히 분리되어서 페스티벌보다는 인터미션이 긴 공연 같기도 했다.
내가 관람한 23일에는 각자 다른 감성과 개성으로 무장한 싱어송라이터 거니, 하현상, 카더가든과 실력파 보이밴드 다섯, 원위, 엔플라잉과 몬스타엑스의 멤버이자 솔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이엠이 출연했다. 라인업 중에서는 하현상과 엔플라잉이 가장 기대되었는데, 그 기대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멋진 무대와 에너지 넘치는 모습 덕분에 벅찬 전율을 느꼈다.
먼저 하현상은 5년 전부터 좋아했는데,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그가 유튜브에 업로드한 'Pretender' 커버를 보고 관심을 가진 후, <슈퍼밴드 1>에 출연했을 당시 경연 영상과 밴드 호피폴라로 활동했을 시절의 각종 콘텐츠부터 페스티벌이나 콘서트에서 펼치는 솔로 무대들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랬을 뿐이다. 그래서 하현상 하나만 보고 '사운드베리 씨어터'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원으로만 듣던 하현상의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가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등대', '하이웨이', '파랑 골목', '심야영화'까지 널리 울려 퍼졌다. 정말 듣고 싶었던 곡들인지라 전주만 듣고도 심박수가 요동을 쳤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맑은 음색이 그의 최대 매력 포인트인데, 라이브로 전해지니 그 감동이 더했다. 이에 대비되는 엉뚱한 모습과 두서없는 멘트가 더욱 귀엽다고 느껴져 실시간으로 하현상에 대한 애정이 듬뿍 자라난 시간이었다.
엔플라잉은 전 국민을 흥얼거리게 만든 '옥탑방'이란 곡으로 워낙 유명해선지 그 명성은 잘 알고 있었다. 전곡이 좋은 밴드라는 지인의 말에 헤드라이너를 장식할 그들의 피날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등장과 동시에 모든 관객을 점프하게 만드는 모습에 절로 "와!" 소리가 나왔다. 어제와 다른 세트리스트로 구성했다며 기대하라는 말과 함께 이후의 기억을 소거시켰다. 그 정도로 정신없이 뛰고 소리 지르느라 에너지가 다 빨렸다는 뜻이다.
사실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흥이 식기도 마련인데 이들은 곡마다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집어넣거나 편곡을 통해 곡의 분위기를 바꾸면서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었다. 당일의 세트리스트는 보다 신나고 경쾌해서 따라 부르기 쉬운 곡들이 많았다. 그전까지 노래를 "듣는데"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따라 부르는데" 집중했다. 솔직히 야외 페스티벌에 익숙한 나는 비로소 엔플라잉의 무대가 되어서야 이게 진정한 페스티벌 아닐지 생각했다.
'The World Is Mine', '네가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Blue Moon' 등의 좋은 곡들을 수집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관객들의 빗발치는 앙코르 요청으로 몇 번이나 앙코르를 경험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그중에는 'Flashback'이라는 잔잔하게 파동치는 곡이 있었는데, 승협의 피아노 연주가 더해져서 너무나도 아름답고 황홀했다. 엔딩에서 드럼을 치는 재현을 모두가 쳐다보다가 그의 호흡에 맞춰 동시에 마지막 음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순간 밴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손발이 저릿했다.
무대를 휘어잡는 실력파 프런트맨으로서 보컬(래퍼)과 기타를 겸하는 이승협과 유회승, 그들을 묵직하게 받쳐주는 베이스 서동성, 맛깔난 기교를 더하는 기타 차훈,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에너자이저 드럼 김재현의 조합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이번 페스티벌을 계기로 수많은 '엔피아(엔플라잉의 팬덤명)'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들이 열심히 홍보한 콘서트가 5월에 열린다고 하니 남는 자리를 사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앞서 소개한 두 아티스트 외에도 '사운드베리 씨어터'를 통해 호기심이 생긴 아티스트가 몇몇 있다. 먼저 다섯은 'Youth'라는 곡만 알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취향을 저격하는 곡들을 여럿 발견했다. 그중 '나는 내가 정말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를 통해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멘트할 때와 달리 무대만 시작하면 흥을 폭발하는 다섯의 멤버 중 음색 끝판왕 보컬 한리우,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기타 이용철의 매력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또한, 비주얼뿐만 아니라 실력 역시 뛰어난 원위는 '야행성', '별 헤는 밤', '한여름 밤 유성우' 등 별, 우주, 행성 등을 주제로 한 독특한 가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 멤버들 간의 끈끈한 시너지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처음에는 원위의 팬들이 많아서 그런지 첫 소절이 들리자마자 여기저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탄성이 터져 나와서 은근한 소외감이 들었다. 다행히 리더인 용훈이 모르는 노래라도 다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준 덕분에 같이 흐름을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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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싱그러운 봄 향기를 선물한 '사운드베리 씨어터'는 밴드의 진가를 보여준 페스티벌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소리가 밴드 사운드로 전환되며 솔로 무대의 빈자리 역시 악기들의 하모니로 가득 채워졌다. 물론 현장 딜레이와 보컬을 지우는 음향, 협소한 F&B 존과 페스티벌의 핵심인 맥주가 없다는 점은 굉장히 아쉬웠지만, 이것들을 잊게 해주는 밴드 음악의 힘 덕분에 재밌게 놀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래 이어온 페스티벌인 만큼 다음에는 더욱 보강해서 더 좋은 페스티벌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