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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우연에 이끌린다. 우연에 명분이 있을 거라며 만난 작품이다. 소중한 토요일 아침, 눈비비며 영화!를 외치고 달려가 찾았던 극장 이름이 연희동 라이카였다. 평소라면 늦은 것도 아니지만 영화 시작 시간보다는 늦어버려 안그래도 어려운 영화를 더 어렵게 보고 나왔던 기억이다. 이전까지 라이카는 카메라 뿐이었는데, 우주에 다녀온 어떤 개의 이름이었음은 그때 알게 되었다.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 전쟁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발현되던 때였다.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가 찾아오기도 전 이념 전쟁은 새로이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모르는채, 그릇된 지도자들에 눈멀며 성취와 자본에 중독된 시대였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는 축복, 고되지만 소중한 사랑과 이해 따위의 것들은 저먼 우주에서 인간과 분리된 채 맴돌고 있었다.

 

라이카는 그 미국과 소련이 벌이던 우주전쟁의 희생양. 때로 해석하기에 따라 개척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차마 인간에게 할 수 없어 행해진 이종으로의 학대와 성공 실험은 한줌 기삿거리였다. 우주로 떠나기전 이름이 지워진 견종 ‘라이카’에게서 인간이 놓치고 있었던 존재의 존엄성과 일종의 속죄를 극에서는 무겁지 않게 고찰한다.

 

 

 

인식에서 출발하는 존재


 

사람들의 환호와 동경을 안고 어떤 행성에 도착한 라이카. 인간의 모습으로 그는 존재하기 시작한다. 다리가 생기고 생각이 많아지고 냄새는 옅어진 인간같은 존재.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라이카는 인간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라이카는 이전에도 존재였으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인지하지는 못했다. 보조관리자 캐롤라인에게 이름불리고, 힘든 훈련을 받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온 어른 왕자와 장미는 그런 라이카에게 존재로서의 특별함과 소중함에 대해 말해준다. 셋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상처받았다는 것. 상처받은 존재 셋이 모이면 인간에게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진정, 복수는 존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종말의 유예, 그리고 남은 것


 

더이상 어리지 않아 그냥 ‘왕자’가 된 왕자의 기억/

생텍쥐페리의 이름도 모른채 그를 찾아 여전히 전쟁중이던 지구에 돌아갔을 때, 그의 죽음을 우연히 목도해버렸다. 인간의 무자비한 욕망에 한껏 질려버렸다.

왕자에게 버림받았던 슬픔을 안고 사는 장미/
까탈스럽고 예민하다는 이유로 왕자가 떠나가있던 동안, 왕자를 원망만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눈물 대신 뿌리를 내리며 자기애를 깨달았다.


캐롤라인의 사랑이 여전히 그리운 라이카/
인간은 밉지만 캐롤라인만은 그렇지 않아서 지구의 인간과 그 외 존재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그릇된 욕망을 깨우치게 할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셋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구 종말은 거품으로 돌아가고, 라이카는 미래의 지구에서 잠시 캐롤라인을 만난다. 캐롤라인은 라이카의 존재를 믿을 수 없어 알아보지 못한다. 라이카는 개척을 상징하는 동상으로 남아있지만, 인간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 그로 인해 인간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 위로받고자 타자를 종말시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순수와 낭만을 간직한 어린왕자. 아름다움과 오만함으로 살아가는 장미. 타의적이지만, 희생과 개척을 상징하는 라이카. 각자의 뚜렷한 속성이 지구 저멀리서 무의미하게 산산조각 났을 때,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그저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상처받았음을 알고, 주변의 상처받은 이를 알아보고 보듬어주는 서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를 뿌리깊게 지지하던 마음, 관계가 흔들리고 사라지는 경험은 원하지 않아도 필히 온다.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혹은 뜻하지 않은 사고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지난 나에게 고하는 작별은 매번 익숙하지 않고, 슬픔은 매번 달라진 크기와 모습으로 나를 삼키지만, 작별은 결국 또다른 만남으로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때로 버겁게 느껴진다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큰 감사로 다가오는, 드문드문한 맑은 날들을 위해 오늘도 존재함을 잊지 않으려 나와 내 주변의 존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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