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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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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에 닿는 바람이 아직은 선득하다. 추위에 더 이상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봄이 오는 중인가 보다. 눈 깜짝할 새 2025년의 1분기가 지났다.

 

왜 벌써 겨울이 끝나가는지. 여느 때보다 길었던 설 연휴와 언제나 짧은 2월, 정신없는 3월을 보내고 나니 시간이 훅 가있다.

새해를 맞이해 나는 무얼 했더라. 작년 말부터 걸렸던 감기가 낫기는커녕 기침이 계속 이어져 고대하던 독서모임 신년회에 가지 못했다. 떨어져 사는 (어쩌다보니 서울, 경기, 부산이 되어버린) 고등학교 친구들과 날을 잡고 화상으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고는 케이크를 물리게도 먹었다. 우리 가족들 생일은 대체 왜 다 겨울에 몰려있는 걸까. 가끔은 여름에 초를 불고 싶기도 한데 말이다.

 

실없는 생각이 뇌를 거치다 보니 시간은 흘러 흘러 이삿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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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날. 어쩐지 시원섭섭한 마음이 공존하는 게 꼭 오래된 친구와 이별하는 것 같았다. 이 집과 함께한 지 자그마치 20년이다. 케케묵은 짐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걸 어떻게 다 견디고 있던 건지 모를 만큼 서랍장에서, 옷장에서, 냉장고에서 많은 짐덩이가 나왔다. 필요한 물건들만 골라내다 보니 벌써 내다 버릴 게 한가득이었다.

 

'언젠가 쓰겠지' 하고 구석에 모아뒀던 물건들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한 거다. 물론 버리는 걸 두려워하는 내 습성도 한몫을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싶지만 점점 맥시멀 리스트가 되어가는 모습에 자꾸만 입안이 텁텁해진다.

버리기엔 너무도 소중한 추억들이기에 그렇다. 나의 학창 시절을 모두 이곳에서 보냈기에 더욱 정이 갔던 집이었다. 에어컨과 멀어 여름엔 찌듯이 더웠고 웃풍이 들어 겨울엔 손발이 시리도록 추웠지만, 공간이 좁아 바닥에 내려두어야 하는 물건들도 많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방이 좋았다.

 

방 안에서 고요함에 파묻힌 채 고독한 새벽을 보내는 건 무엇보다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짐을 정리하다 옛날 사진 더미를 발견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한 것이었다. 사진의 양이 제법 되었다. 하나 둘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갈 것 같았다. 어릴 적 내 모습, 빛나는 부모님의 청춘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졌다. 주름 하나, 잡티 하나 없는 말끔한 그 얼굴이 생소하고도 선연했다.

 

우리 부모님은 그 예쁜 젊음을 바쳐 나를 키우셨구나.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뭐길래 그 많은 시간을 다 쏟았던 걸까.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찬란한 그들의 젊은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져서.

이삿짐 센터가 다녀가고 모든 짐이 다 빠진 내 방을 봤을 때, 무언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허전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이 집이 끝까지 날 응원해 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을 가지면서, 마침내 우리는 이사를 마쳤다.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내 생에 다신 없을 좋은 이별이었다. 내 유년 시절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어 고마웠어. 못내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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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차츰 익숙해질 새집에서 찬연할 미래를 꿈꿔본다.

 

물론 인생이 다 내 뜻대로 되진 않겠지만,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곧 피어날 벚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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