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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작년 11월에 만난 윤현희 작가의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 책은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고,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반면, 이번에 읽은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인간에서 관계로 시야와 사고를 확장해준 책이었다.


이 책은 유튜브 영상을 활자로 옮겼다고 한다. 책 특성에 알맞게 수정 과정을 거쳐서 온전히 재현한 건 아니지만, 당시 인터뷰 현장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히 대화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다. 나는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 관련 지식도 없다. 그러나 전시회는 흥미를 갖고 잘 본다. 또 심리학과 연결하여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처럼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어야 끝까지 잘 읽을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으나, 대화방식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라는 점 덕분에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따라서 미술과 거리가 먼 사람도 독서 자체를 어려워하지 않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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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화가 18명의 삶과 작품들이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 특별한 점은 인간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다른 미술 관련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관계도가 실려 있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이 많은 인물의 삶을 언제 다 들여다볼 수 있을지 걱정됐는데 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쪽에 실린 인물관계도는 나에게 신의 한 수였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데, 왜인지 고갱과 고흐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조차 못했다. 서로 돕고 영향을 주고받은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구수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물론 불륜이나 질투, 갈등과 같은 좋지 않은 냄새가 났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 하나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애정을 쏟은 그들의 이야기는 훈훈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복제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기술이 등장했다. 이에 화가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더 이상 고전주의의 기법으로 똑같이 그려서 사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화가들은 이를 대체할 기법을 모색했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0인 사람이라 여기서 바로 인상파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 후에 등장한 새로운 표현 방식은 낭만주의였다. 낭만주의는 붓 터치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살려서 드라마틱하게 그리는 방식이다. 낭만주의를 거쳐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는 사실주의가 등장했고, 다음으로 나온 게 인상주의였다.


인상주의는 보이는 장면 대신 느낀 인상을 그림에 온전히 담은 방식이다.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표현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게 전부였던 서양회화에 완전히 다른 결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에 불안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인정한 사람도 있었다.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인상파 화가를 존경하고 따르던 화가도 생겼다. 모네와 피사로는 터너의 작품을 보고 인상주의에 눈을 떴고, 마네와 쿠르베를 따르는 후배들이 생겨났다. 마네를 존경하는 후배들은 그의 작업실 근처 카페에서 종종 모였다. 마네를 존경하는 후배 중 하나였던 베르트 모리조의 감정은 존경에서 사랑으로 발전했다.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마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마네의 동생과 결혼했다.


터너의 작품을 보고 인상파에 눈을 뜬 모네도 마네를 존경하는 후배그룹에 속해있었다. 그 그룹은 현재 인상파전으로 불리는 전시회를 기획하여 개최했다. 이때 모네가 출품했던 ‘인상, 해돋이’ 작품은 인상파전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한편, 가난한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인물도 있었다. 바지유와 카유보트였다. 바지유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샤를 글레르가 운영하는 화실에서는 르누아르, 모네, 시슬레 등 또래 화가들을 알게 되고, 친척 집에서는 세잔과 친분을 쌓게 된다. 여기에 모네의 연결고리 역할로 인해 바지유는 인상파 화가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자신의 넓은 방을 작업실로 빌려주기도 했다. 의학공부를 했으니, 동료를 치료하고 간호도 했다. 동료들의 그림을 사비로 후원하고, 전시회를 위한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부모님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동료들을 도와줬지만, 보불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시회 개막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카유보트는 전시회 이후, 동료들을 도와준 인물이다. 전시회 작품을 직접 구입하고, 전시회 비용을 지원했다. 심지어 카유보트의 화풍이 인상주의가 아니었는데도 오랫동안 인상파 화가들을 도와줬다. 카유보트는 유언장에 자신의 유산을 전시회 개최와 운영에 써달라는 뜻을 남겼다. 생전에 10년 동안 도움을 준 것도 모자라서 죽어서도 도우려 했던 그의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관계도 있었는데 고갱과 고흐였다. 위에 적은 대로 고갱과 고흐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표현한 이유는 다른 시각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고갱과 고흐가 매우 각별한 사이고 서로를 아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고갱을 향한 고흐의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고갱은 고흐의 성격을 피곤해했다. 더구나 당시 고갱은 본인의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흐의 지속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아를에 가지 않다가 고흐 동생 테오의 금전적인 지원과 부탁 때문에 갔다. 반면 고흐는 팔걸이가 없는 자신의 의자와 달리 고갱에게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제공했던 만큼 고갱을 아꼈다.


미술계에도 인간관계가 있었다. 인간관계와 함께 따라오는 우정, 사랑, 갈등, 엇갈린 마음 등의 감정들도 존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사람이고, 그룹이기에 당연한 건데 왜 개개인으로만 바라봤던 걸까. 아마 내게 미술계 거장들은 신처럼 보였던 것 같다. 개인에서 세상으로 확장할 수 있게 이끌어준 ‘한 권으로 읽은 인상파’에게 고마웠다.

 

 

 

필자의 tmi


 

이 책을 읽기 전에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먼저 읽어보는 걸 권한다. 두 도서 모두 인간이 쓴 만큼 개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은 심리학에서 접근하여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반면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인터뷰 내용을 책에 옮긴 만큼 개인적인 시선에 더 치우친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미술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상대의 행동과 말이 속사정을 알게 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통해 거장들의 내면을 헤아려 본 후,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를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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