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권유하지도, 누군가를 동경하지도 않았는데 문득 시작하게 된 무언가가 있는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든가, 어딘가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 없이. 정신 차려 보니 내 인생에 찾아온 것.
내겐 드럼이 그랬다. 취미로 드럼을 배운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밴드부라도 들어갔냐고? 아니다. 그땐 그저 화를 풀고 싶었다. 산책이나 독서로는 풀리지 않는 분노나 권태를. 차갑게 가라앉혀야 수그러드는 분노가 있다면 뜨겁게 끓어야만 증발하는 분노도 있으니까. 게다가 드럼은 멋있지 않은가. ‘멋있다’라는 말은 어쩐지 쑥스럽지만, 이만큼 드럼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도 없다. 드럼은 화려하지 않아도, 맨 뒤에 있어도,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되지 않아도 그냥 멋있으니까. 온 세상에 드럼과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눈, 우린 그런 것들을 동경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내 앞에 선생님이 내려놓은 건 무릎쯤 오는 드럼패드였다. 선생님은 처음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에게 마우스를 쥐여 주며 “자, 이게 클릭이야”부터 설명해 주듯 내 양손에 드럼 스틱을 하나씩 끼워주곤 ‘딱, 딱, 딱, 딱’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메트로놈은 박자에 맞춰 딱딱거리며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드럼의 첫인상은 화려한 공작새보단 투박한 딱따구리에 가까웠다. 딱딱거리는 게 전부인데 딱딱거리는 것마저 못하는, 바보 같은 딱따구리.
월정액 구독 상품: 분노의 뫼비우스
한 달쯤 배웠을 때 깨달았다. 드럼은 화를 돋우면 돋웠지, 풀어주진 않는다는 걸. 메트로놈이 빨라지고 팔다리가 따로 움직이는 나를 마주하면 화만 늘었다. 화가 나는 대로 드럼을 치면 소리가 날카로워지고, 박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제멋대로 춤을 추고, 그럼 또 화가 났다. 분노의 뫼비우스에 갇힌 셈이었다. 경쾌한 ‘딱딱’ 리듬과 함께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게다가 이 뫼비우스는 한 달에 21만 원짜리 구독 상품이었다. 800원짜리 팽이버섯을 살지 말지, 온돌 보일러 온도를 45도에서 40도로 내릴지 말지, 얼룩이 생긴 트레이닝 바지를 빨아 입을지 버릴지를 고민하는 자취생에게 21만 원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가계부에 ‘0’을 4개씩이나 적다 보면 별생각이 다 든다. 공 하나에 팽이버섯 한 봉, 공 하나에 책 한 권, 공 하나에 영화 한 편, 공 하나에 뮤지컬 한 편…. 그러다 보면 ‘내가 왜 드럼을 왜 시작했지?’라는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결론은 언제나 ‘이번 달엔 그만둬야지’였다.
그 짓을 한 달에 한 번씩 했으니 벌써 스물네 번이 넘어간다. (이토록 정기적인 자아 성찰이라니!) 정해진 답을 스물네 번 넘게 회피해온 건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진로 변경은 더더욱 아니다. 경쾌한 맛, 단순히 그것 때문이다. 분노의 뫼비우스에서 떫은맛이 아니라 경쾌한 맛이 나기 시작해서.
시작의 우연, 우연의 시작
드럼 연습실을 나서면 아주 경쾌해진다. 땀을 흘려서만은 아니다. 분노가 씻은 듯이 없어져서도 아니다. 분노는 여전하다. 방향이 일이나 인간에서 드럼으로 달라졌을 뿐. 어려운 필인을 어떻게 손에 익힐지, 136 bpm에 손발을 어떻게 맞출지 생각하다 보면 일이나 인간이 주는 분노쯤이야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드럼을 향한 분노는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그 감정에 압도돼 가만히 앉아 있어 봐야 드럼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너 왜 이렇게 사람을 화나게 하냐, 이 정도 됐으면 알아서 할 때도 됐잖아, 아무리 화내도 드럼은 사과하지 않는다. 이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어떻게든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드럼 스틱을 좀 더 빠르게 휘두르고, 킥을 좀 더 세게 밟고, 정 안 된다 싶으면 아주 느리게도 해봐야 한다.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던 속도에 내 손발이 맞춰지면, 로봇처럼 삐걱거리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면, 레슨실을 나서며 다짐하게 된다. 이번 주엔 더 열심히 연습해 와야지, 계속 다니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그때 그 기분, 그 경쾌함! 뭐라도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그 감정. 세상에서 가장 떼어내기 어려운 첫 발을 시작하게 만드는 2년 전의 또 다른 시작.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만든다. 7살에 시작한 피아노가 22살의 드럼으로, 22살에 시작한 드럼이 24살의 작곡으로 이어졌듯이. 시작은 대부분 우연적이다. 그 우연은 인생의 경로에 슬그머니 끼어든다. 생각지도 못한 길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몇 걸음 안 가서 끊기기도 하고, 갑자기 인생의 방향키를 잡아버리기도 한다. 시작의 우연-우연의 시작-이 어디로 나아갈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우연을 시작하기, 최대한 많은 시작을 우연히 만들기. 이 둘뿐이다.
벚나무잎과 눈이 함께 내리는 봄, 1월만큼이나 시작이 잘 어울리는 3월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권유해 보고 싶다. 드럼을 시작해 보지 않겠냐고.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2025년 3월만의 시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