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는 말’, 어느 유명한 노랫말처럼, 인생이 너무 순조롭기만 하다면 우리는 웃음 대신 하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스윙걸즈>를 보고 있으면 이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단지 이야기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태도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실패와 실수를 지독한 절망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좌충우돌의 연속이지만, 그 가운데 인물들은 웃고 울며, 다시 웃는다. 그래서 그 웃음이 더 단단하고 오래 남는다.
이야기는 한여름 보충수업 교실에서 시작한다. 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하지 못한 채 앉아 있고, 선풍기마저 없는 교실에서 선생님은 부채 하나에 의지한 채 수업을 이어간다. 그 지루하고 정체된 공기 속에서, 창가에 앉은 토모코의 눈빛은 바깥을 향한다. 그곳에는 야구부 응원을 위해 나가는 밴드부의 버스가 있다. 떠나고 싶은 마음, 달아나고 싶은 욕망이 그녀의 눈빛에서 터져나올 즈음,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은 그녀와 친구들은, 이른바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 도시락이 원인이 되어 밴드부가 식중독에 걸리고, 우연히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바로 ‘스윙걸즈’의 시작이다.
이 모든 전개는 마치 만화 같다. 도무지 현실성은 없어 보이고, 우연이 겹치고 겹쳐 기적처럼 이야기가 굴러간다. 밴드부가 빠지자마자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어설픈 학생들이 불려오고,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아이들이 재즈 빅밴드를 결성한다. 트럼펫 벨에서 튀어나온 쥐가 불가능하던 고음을 가능하게 만들고, 멧돼지를 퇴치해 받은 포상금으로 악기를 산다. 한두 번쯤은 허용할 법한 우연이 반복되지만, 이상하게도 이 억지스러운 전개가 거슬리기보다 귀엽고, 오히려 즐겁다. 왜냐하면, 이 모든 기적의 중심에는 인물들의 ‘진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입시나 수상 같은 목표를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음악을 시작한 이유도 우스꽝스럽고, 연습 방식은 무식하다. 박자는 어긋나고 실수는 반복되며, 중고 악기는 고장투성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주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함께 어울려 소리를 내고, 하나의 곡을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기쁨을 포착해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 기쁨은 관객의 마음까지 자연스럽게 물들인다.
<스윙걸즈>가 특별한 이유는 청춘의 상징 같은 ‘성장 서사’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무엇에 진심을 다한 적이 있나요?" 그 질문은 학창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더욱 깊이 울린다. 영화 속 인물들의 무모한 도전은 지금의 우리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 우리도 그렇게 뭔가를 좋아했고, 이유 없이 몰두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 단순히 성과를 위한 노력이나, 계산된 결과를 위한 선택이 아닌,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 그것이 자꾸만 떠오른다. 영화는 그 기억을 불러낸다.
또한, <스윙걸즈>의 세계는 너그럽다. 이 말이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키워드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은 실패한다. 여러 번 실수하고, 때론 무시당하며, 기회조차 잃는다. 하지만 그 모든 실패는 새로운 기회로 돌아온다. 악기를 고쳐주는 곳은 전 남자친구의 자동차 정비소고, 음악에 진심을 보였던 수학 선생님은 갑자기 밴드의 지휘자가 된다. 이곳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누구도 완벽할 필요가 없는 세계다. 실수는 곧바로 돌이킬 수 있고, 실수했음에도 받아들여지는 세계. 얼렁뚱땅이지만, 아무래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너그러움.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면은, 학생들이 일상의 모든 소리에서 재즈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신호등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탁구공이 튀는 소리까지도 리듬으로 들리는 마법 같은 변화. 진심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이토록 경쾌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던가. 영화에 빠지면 길거리의 간판도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고, 음악에 빠지면 도시의 소음도 하나의 배경처럼 들리게 된다. 세상을 향한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 <스윙걸즈>는 그 경험을 선물한다.
후반부, 연주회에서 선보이는 마지막 무대는 그 모든 과정을 집약한 장면이다. 제각각 옷을 입고, 제대로 된 유니폼 하나 없이 무대에 서지만, 음악만큼은 완벽에 가깝다. 색소폰의 매끄러운 선율, 트럼펫의 강렬한 고음, 드럼의 리듬과 피아노의 반주가 하나로 어우러진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아이들이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웃고 울며 흘려왔는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결과보다 더 값졌음을.
<스윙걸즈>는 단순한 음악 영화도, 고전적인 청춘물도 아니다. 이 영화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희귀한 이야기다. 지금의 내가 얼렁뚱땅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비웃어도,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이라면 괜찮다고 말해준다.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리듬, 우리만의 속도와 박자를 다시 찾아가도 좋다고, 그러기 위해 조금은 너그럽게 나 자신을 바라보라고 속삭이는 영화다.
그 여운이 남아, 영화관을 나선 후 들려오는 빵집의 재즈 음악조차 다르게 들렸다. 낡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Nat King Cole의 ‘L-O-V-E’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삶을 다시 들썩이게 하는 박자로 다가왔다. 스윙 리듬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떤 박자와 어떤 속도로 살아갈지는 결국, 내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