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좋아하는 가수가 무대 위에 있고, 객석에 있는 관객은 무대 쪽으로, 무대에 있는 가수는 객석 쪽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분명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오고 가는 경험이었다. 그사이에 내가 있었고 내게도 무언가가 들어왔다."
필자는 공연이 좋았다. 조명이 꺼지면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가, 생생히 느껴지는 무대 위 배우들의 열정이 좋았다. 뮤지컬에 푹 빠져있을 한때 나는 공연기획자를 꿈꿨다. 공연예술이 주는 감동에 공연과 함께라면 평생 행복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시간이 흘러 그 꿈은 추억이 됐지만 난 여전히 공연을 사랑하고 공연 기획자들을 존경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수십명부터 많게는 수만 명의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드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상상한 공연기획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높은 직업 만족도를 누리는 사람들 같았다.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이성모 공연기획자의 <무대 위에 서는 사람>엔 그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책은 19년 차 공연기획자가 꾹꾹 눌러쓴 무대 안팎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지 공연 기획에 대한 이야기만 아니라 기획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가 처음 공연 기획을 꿈꿨을 때부터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들, 무대 주변의 일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이성모 기획자는 이 이야기를 유쾌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내내 재치와 특유의 유머로 술술 읽혀나가는 책이었다.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예비 예술가들에게, 공연에 관심 있는 분들까지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관객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기획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남다른 시선
공연기획자는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도 아니고 무대를 만드는 예술가도 아니다. 단지 그 중간의 어딘가에서 공연 전체를 바라보며 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또 예술가와 관객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다. 공연기획자의 시선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기획자는 책임은 본인이 지지만 주인공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성모 기획자는 예전에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현재는 '공연기획자는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프레스콜 때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진행했는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기획자인 그가 연출가, 작가, 작곡가, 배우들을 만나 작품을 통해서 하고픈 이야기를 설명하고 설득해 프로덕션을 꾸렸기에 비슷한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공연기획자는 관객이 행복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함께하는 스태프와 배우가 행복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배우들은 연기로, 스태프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관객을 즐겁게 해주듯, 공연기획자는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감동을 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공연을 만드는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를 갖고 있기에 신중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기획자는 당연히 주인공이 아니며, 끊임없이 합리적이면서도 무모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야하기에 공연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책, 연극, 전시회 기획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소리를 듣고, 생각하며 예술을 만든 의도와 가치를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기획자의 숙명이며 평생의 과제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공연기획자는 무대 뒤 숨은 영웅으로, 평생 공부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술가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과 같이, 기획자는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성장한다.
이 책에는 공연기획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연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예술가와 호흡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기획자만이 갖는 고민과 성찰이 유쾌하게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다. 최선을 다해 무대를 빛나게 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무대 뒤에서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고백이 묻어있다.
성공과 실패를 넘나들며 교훈을 얻었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담고 있다. 이성모 작가의 공연은 성공과 실패의 반복으로 늘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겐 반짝이던 시간 뒤에 처절한 실패도 있었다. 늘 멋진 공연을 만들고 싶지만, 현실에 부딪혀 대출금을 갚기 위해 행사 운영을 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괴리는 공연기획자도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느낀 것은 결국 공연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공연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하는 마음가짐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단 한 순간의 빛나는 무대를 위해 밤을 새우고,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도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공연기획을 해왔다. 저자 이성모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되기 과정이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예술임을 전한다. 공연기획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만 아니라 이 책에는 현장에서 통용되는 몇몇 용어와 직책에 대한 용어도 소개돼있다. 공연기획 현장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뿐만 아니라 OTT가 넘쳐나는 시대에 공연을 만든다는 의미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수많은 OTT가 넘쳐나는 시대, 또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손쉽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시대에 공연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무대의 현장감이 주는 순간의 감동과 울림은 긴말이 필요 없다. 배우와 관객이 주고받는 감정, 또 관객들이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감정 공유의 순간. 잊지못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은 순간의 휘발적인 예술이며, 같은 작품이라도 세상에 똑같은 공연은 없다. 그렇기에 관객은 몰입해야 하는 의무감을 갖는다. 공연은 지나가 버리면 OTT처럼 다시 되돌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연 내내 몰입하고 집중한다. 디지털 콘텐츠와 숏폼이 범람하는 오늘날, 공연은 관객에게 진정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한다. 스마트폰 화면 대신 무대에 집중하며,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예술적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바로 공연이다.
공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기획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성모 기획자의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