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을 본다는 것.
문화예술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이지만 어쩐지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기분이 드는 그 행위.
영화과인 내가 소위 말하는 예술 영화를 볼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쉬운 영화를 내가 어렵게 보는 것일까, 혹은 어려운 영화를 쉽게 보려하는 것일까. 마치 장자의 ‘호접지몽’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생각은 미술 작품에도 여실히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전시회도 종종 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길 좋아하는 나는 항상 작품들을 볼 때마다 최대한 집중해서 보지만, 내가 보는 것이 흔히 피상적인 것의 분석에 그친다는 느낌이 매번 강하게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고흐의 해바라기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이 그림을 보면 일단 보이는 녹색 바탕과 노란색 해바라기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보이는 것, 그리고 그 보이는 것의 형태, 그 뒤에는 그것의 색깔같은 세부적 특징들을 차근차근 살펴본다음 그것들을 왜 그렇게 그렸을지 생각해보는 일련의 과정을 항상 거친다.
그런데 그렇게 거치고 난 뒤에는 깊은 사유가 들어가는게 아니라, 어느새 ‘왜’보다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 마치 틀린그림 찾기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간단히 비교 분석하려는 나를 발견하며 작품 감상을 마무리하는 찝찝한 경험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있어 어쩌면 이 ‘감상의 심리학’이라는 작품은 큰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책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걸 계속해서 인지했음에도 너무 어려운 느낌으로 다가와 쉽사리 관련 책을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전시회 방문 수만 늘렸던 지난 날의 나의 과오가 부끄럽게도 느껴지는 독서 경험이었다.
눈과 감상, 감상의 과정, 집단화와 구성 등 다양한 파트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색, 소리, 촉각과 공감각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평소 내가 하던 그림 감상 기법이랑 대비되는 감상법들이 대거 나와서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위에 언급한 고흐의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고흐의 또 다른 역작인 ‘별이 빛나는 밤’을 예시로 들어 이러한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특정한 음악적 리듬이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공통된 특징을 공유하고 있기에 형태, 색, 마티에르, 의미에 집중하기 보단 작품의 구성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농도와 결, 그리고 강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특히 ‘별이 빛나는 밤’ 속 암파스토 기법(붓자국을 표면에 남기는 것)이 20세기 들어 널리 사용된 건 마티에르에 대한 공감각적 경험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일부 사람들이 특정 질감의 물체를 만졌을 때 특정 감정이나 색을 일과노디게 경험한다고 보고하는 연구가 나왔다 한다. 즉, 물감의 질감이 화가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색의 인상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봐온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그 작품의 분석과 더불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안책을 제시해준 것 같아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실 여기서 언급한 건 극히 일부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작품들이 예시로 등장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학적인 접근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내려가는데 큰 어려움 또한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간 내가 해오던 방식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와 더불어 깊이있는 관찰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조금이나마 터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