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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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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미키 17>을 관람한 후 머릿속을 맴돈 단어는 단 하나였다.

 

루코.

 

루코는 니플하임에 서식하는 토착 생명체로, 인간들은 그들을 ‘크리퍼스’라 부른다. 주코는 크리퍼스의 어린 개체였으며, 마샬이 기념비로 삼으려던 원석 안에서 발견되어 우주선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인간들의 공포와 경계 속에서 주코는 총에 맞아 끔찍한 죽임을 당한다. 훗날 미키 17이 크리퍼스의 대표 격인 마마 크리퍼스와 소통하는 과정에서야 주코의 존재와 이름이 밝혀진다.


이 순간,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옥자>와는 또 다른 결을 드러낸다.

 

<미키 17>에서 크리퍼스는 인간에게 맞서 싸우는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인간과 소통을 시도하고, 거래를 제안하는 고지능 생명체로 그려진다. 또한 크리퍼스는 크레바스에 떨어진 미키 17을 구해주는 등 인간을 향한 일방적인 적개심이 없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옥자>와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계급이 명확하게 나뉜 <설국열차>에서는 아래칸 사람들이 위칸을 향해 무장하고 혁명을 일으키며, <옥자>에서는 인간과 유대 관계를 맺었던 동물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피해자가 된다.  <미키 17>에서도 부조리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혁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키 17>은 소통으로 시작해 인간과 크리퍼스의 일종의 동등한 교환 방식으로 혁명이 나름 평화롭게 마무리 된다. 또한 크리퍼스와 인간의 동등한 소통의 모습도 인상깊다. 인간과의 소통을 통해 납득 가능한 요구와 거래를 제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미키 17>에서는 소통을 통해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인간 더 나아가 범생명체의 가치를 통용하며 스펙트럼을 넓힌 인상을 준다.

 

그래서 영화에서 중요한 변곡점은 ‘루코’라는 이름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죽었던 베이비 크리퍼스에게 ‘루코’라는 이름이 부여된 순간, 단순히 ‘크리퍼스 1’이 아닌 소중한 동족이자 가족으로 각인된다.  이처럼 영화 속 크리퍼스도 이름을 가지듯, 미키 17도 미키 반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익스펜더블, 그리고 미키 17의 존재


 

<미키 17>은 2054년을 배경으로, 지구를 떠나 니플하임에 정착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곳에서 미키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즉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그는 탐사를 위해 반복적으로 죽고 복제되며, 인간의 발전을 위한 부속품처럼 사용된다. ‘어차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그의 죽음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16번 죽음을 맞이했고, 17번째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될 ‘미키 18’이 태어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미키 18과 미키 17은 서로 다른 사람인냥 다른 인격과 모습을 보인다. 미키 17은 다소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 미키 18은 보다 적극적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행동력이 강하다. 그는 주먹을 앞세우며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인물로 카타르시스를 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처럼 묘사된 미키 18 대신, 어쩌면 미키 17이 대신 죽는 것이 더 혁명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미키 17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일까?

 

미키 17은 쉽게 대체되고, 소모되며,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은 존재로 묘사된다. 나샤처럼 소수의 특전사도 아니고, 티모처럼 영악하지도 않다. 마샬처럼 정치력이 뛰어나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도 없다. 그래서 그는 대체되기 쉬운 평범한 존재다. 하지만 미키17의 생존은 현실과 세계를 구성하는 개체이자, 특별하지 않는 존재여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엔딩에서 ‘익스펜더블’ 시스템 작동 기기가 폭발하는 순간, 미키 17은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고, 과거에 매몰되지 않은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미키 반스.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임을 각인시켜주는 것 같아 때아닌 위로를 느꼈다.


<미키 17>은 SF를 배경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와 현재를 마치 블랙코미디 연극처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비웃음과 쓴웃음을 주지 않는다. 미키를 위해 곁을 지키는 나샤처럼, 카이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샤를 찾아간 미키 17처럼, 영화는 여전히 인간과 생명체 간의 관계에서 따뜻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코’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어떤 존재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혼란스럽고 극단적인 사상들이 들끓으며 갈등이 지속되는 현실과 겹쳐, 마치 씁쓸한 초콜릿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사랑의 힘이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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