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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모두가 숨죽이며 무대의 정 한가운데에 집중하는 가운데, 앙상한 몸의 남자가 회색 정장을 입고 통기타 한 대를 메고 홀로 무대에 선다. "테이프 하나 틀게요." 녹음된 데이빗 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단출한 반주에 맞춰 'Psycho Killer'의 리프가 시작된다.

 

노래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번의 독특한 보컬을 통해 서사적 가사들이 전달되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사와 음악을 굳이 해석하려 드는 시도는 큰 의미가 없다. ‘말이 되는 것(making sense)’을 기꺼이 내려놓는 이 밴드의 무대는 머리가 아닌 심장과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오직 순수한 음악적 에너지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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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번은 예측 불허의 독특한 스텝으로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홀로도 그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무대의 매력을 올린다. 곡이 하나 끝날 때마다 베이스 기타의 티나 웨이머스, 드럼의 크리스 프란츠, 키보디스트 제리 해리슨, 그리고 다양한 타악기와 코러스까지 무대 위 연주자들은 점차 늘어난다. 이렇게 완벽하게 짜인 밴드 사운드 속에서 번은 마치 날개라도 단 듯 자유롭게 유영하며, 때로는 폭발하듯 무대를 누빈다.

 

즉흥적인 듯 보이는 그의 동작들과 투어 중 경험한 일본 전통 공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기묘한 안무들은 토킹 헤즈의 음악적 색채와 완벽하게 융화된다. 이 모든 행위가 마치 그 순간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즉흥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날 그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발산된 순수한 흥과 에너지, 그리고 깊은 교감은 어떤 치밀한 연출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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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드미 감독은 단순한 공연 기록을 넘어, 자신의 명확한 의도가 담긴 카메라 워크와 움직임을 통해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카메라는 번의 스니커즈에서 출발해 그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을 집요하게 따라가고, 악기 연주나 춤에 몰두하는 멤버들을 거침없이 훑어내린다. 때로는 한 벌스 내내 데이빗 번의 상반신에 고정되기도 하며, 번이 무대를 말 그대로 조깅하듯 달릴 때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멤버들에게 머무른다. 자신과 키가 비슷한 스탠드 조명을 파트너 삼아 밀고 당기며 춤을 출 때는 그의 동선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무대 위에서 검은 단을 옮기는 스태프들의 모습은 마치 연극 무대를 정교하게 준비하는 손길 같고, 악기가 하나씩 추가될수록 음악 역시 유기적으로 고조된다. 인물들의 얼굴 바로 아래에 배치된 로우키 조명은 극적인 분위기를 드리우고, 무대 뒷면에 그림자를 만들어 연주자의 움직임과 동선을 하나의 면으로 엮어낸다. 스탠드 조명을 흔들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은 록 밴드의 공연에서는 이례적이지만, 매우 기이하고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감독은 이러한 미니멀한 무대 장치와 의도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밴드의 순수한 퍼포먼스에 대한 집중도를 극대화하며, 영화 자체가 또 하나의 악기처럼 토킹 헤즈의 음악에 완벽히 동조하는 경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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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스탑 메이킹 센스>는 마치 토킹 헤즈의 전성기 콘서트를 현대에 와서 직접 체험하는 듯한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시간을 넘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 직접 당도한 듯한 생생한 착각에 빠져든다.

 

더 나아가 현장 객석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세밀한 부분까지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칠이 벗겨진 선버스트 기타, 그것을 연주하는 번의 현란한 손놀림, 끊임없이 리듬을 타는 티나 웨이머스의 어깨와 무릎, 미소가 떠나지 않는 크리스 프란츠의 얼굴 같은 디테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객석의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부분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이 오히려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는다. 각 클로즈업은 숏이 바뀌더라도 끊기지 않고 하나의 유려한 흐름으로 이어져, 무대에 오른 멤버 각자의 독보적인 개성과 그들이 하나의 밴드로 움직이는 방식이 감각적으로 스며들게 한다.

 

이 영화에는 아티스트 인터뷰나 화려한 백스테이지 장면이 없으며 관객의 반응도 몇 차례의 환호성만 삽입될 뿐이다. 다만 영화 말미에 객석을 비추는 몇몇 숏에서는 관객들마저도 어딘가 토킹 헤즈 특유의 분위기에 물들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의 서사는 오직 토킹 헤즈의 무대 그 자체에 응축되어 있다. 어떤 메시지나 연기도 무대 위 퍼포먼스에 모두 담겨 있으며, 음악과 화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깊이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엔 마치 그들과 함께 사흘에 걸쳐 이 예측 불가능한 퍼포먼스를 직접 관람한 듯한 강렬한 기분이 밀려온다. <스탑 메이킹 센스>가 1984년에 개봉되었으며, 토킹 헤즈가 1991년에 해체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 영화를 통해 본 이들의 무대는 이제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40년이 지났음에도 이 필름과 콘서트는 전혀 낡거나 빛바래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대와 이 시대의 감성은 영화라는 매체가 특정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둘 수 있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콘서트 영화를 넘어, 시간을 초월하여 살아 숨 쉬는 예술적인 타임캡슐로서,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과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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