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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불편한 다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소년 ‘줄리안’은 어느 날, 깊은 어둠에 갇혀버린 소녀 ‘사라’를 구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줄리안’과 가족들은 ‘사라’를 끝까지 지키려 한다.

 

하지만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사건이 그들에게 다가오는데…

 

서로를 비추는 유일한 빛이 된 소년과 소녀. 세상을 바꿀 단 하나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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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버드> 감독의 전작인 <원더>가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준 기억이 있어 이번 신작의 퀄리티에 대해서도 다소 믿음을 가지고 시사회를 보러 갔다. 공개된 시놉시스는 이야기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나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감상 전에는 <화이트 버드>가 다소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일 줄 알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예상은 빗나갔다. <화이트 버드>는 실제 역사의 세파 아래 존재했을 법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줄리안은 <원더>에서 선천적 안면기형이 있는 어거스트라는 아이를 괴롭히던 같은 학교 학생이었는데, 이 설정이 <화이트 버드>에도 이어진다. ‘다른 소년을 괴롭혀서 학교에서 쫓겨나 새 학교에 온’ 손자 줄리안에게 할머니 사라가 묻는다. 새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낼 거니? 줄리안은 나쁘지도, 착하지도 않게 그저 평범하게 지낼 것이라 답하고, 그 ‘평범하게’라는 말에 할머니는 손자를 빤히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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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줄리안에게 자신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해주며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게 된다. 사라는 프랑스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서 그런대로 풍족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근심걱정 없는 유년을 보냈다. 사라 말대로, 그때까지 사라는 공주 같이 컸고 주변의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이를테면 마을에 어느새 걸리기 시작한 하켄크로이츠 휘장이나, 친구들과 놀러 간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가 상영되기 전 틀어지는 히틀러의 프로파간다 영상 같은 것. 이처럼 극의 초반에서 사라는 프랑스 변두리의 자유 구역 마을에까지 밀고 들어오는 나치의 영향력에 아직 무서움을 느끼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치의 프랑스 장악이 심화되고 사라의 고향 마을에도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어린 학생인 사라는 자신의 유대인 혈통을 크게 의식하며 산 경험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은 사라의 경험과 상관 없이 그녀의 안온한 일상이 곧 침해당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의 엄마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잃고, 마을 상점에는 하루아침에 ‘유대인에게 판매 금지’ 팻말이 붙는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다니는 급우를 게처럼 걷는다며 ‘토흐토’라고 놀리며 폭력적 성향을 보였던 빈센트는 얼마전까지 사라에게 이성적 호감을 보였지만 마을에 유대인을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생기자 바로 사라의 혈통을 모욕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라의 부모님은 유대인 지인들이 사라지거나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급기야 나치는 학교에 찾아와 유대인 학생들을 잡아가는데 사라는 유일하게 포위망을 빠져나간다. 그렇다 해도 한겨울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다 밖에는 여전히 자신을 잡으려는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이다. 막막하고 겁에 질린 사라를 돕는 이는 평소 빈센트 무리가 ‘토흐토’라 놀리던 줄리안이다. 근심 없이 살던 사라의 눈에 전에는 잘 들어오지 않던, 그날까지 이름도 잘 몰랐던 아이다. 줄리안은 사라를 자기 집 헛간에 숨겨주고 줄리안의 부모 또한 사라를 보호해 준다.


마을에 아예 나치 병력이 주둔한다. 그들의 기준에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이면 길거리에서 사람을 끌고 가는 등 줄리안 가족 역시 유대인 소녀를 숨겨 준 사실이 발각된다면 안전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줄리안 가족의 보호는 참 따스하고 사려 깊다. 줄리안의 부모인 장 폴과 비비안은 헛간에서 사라의 편의와 감정에 계속해서 마음을 써 주고, 오랜 시간 혼자 있어야 하는 사라를 위해 줄리안은 매일 저녁 사라에게 학교 수업 내용을 전해준다. 그 수업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노라고, 할머니가 된 사라는 손자 줄리안에게 말한다.


그림 그리는 걸 멈추지 말렴. 상상 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사라가 그림 그리기에 취미가 있는 걸 알게 된 마리 선생님이 학교에서 사라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장 폴이 헛간에 둔 낡은 자동차는 사라와 줄리안이 상상 속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돕는 아늑한 공간이자 작은 극장이다. 닫혀 있는 헛간이 아니라, 파리, 뉴욕, 아프리카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 눈을 반짝이는 사라와 줄리안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쉬는 시간 선생님과의 담소로 지나갈 수 있었던 몇 마디 말이 사라와 줄리안을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웃게 돕는다. 나는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그 말에 마리 선생님의 다정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한 진심이 사라의 무의식에 남아 기댈 곳이 되어준 것이다. 말 몇 마디도 그럴진대, 줄리안 가족이 사라의 외로움과 두려움, 불편을 줄여주려 했던 많은 노력과 마음 씀은 어떻겠는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던 시기를 거치면서도 사라가 아빠가 말했던 ‘사람 마음 속의 빛,’ 즉 사람의 선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던 이유에는 줄리안 가족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이 주변에 보인 다정함에 있다. 하루아침에 부모와 생이별하게 된 소녀를 살리고 성장시킨 것은 주변인들이 용기를 내서 보인 다정한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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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줄리안의 ‘평범하게’ 살겠다는 말에 할머니 사라는 시대적인 위험 아래에서도 한 소녀를 ‘다정하게’ 지켜 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라는 평범함의 맹점을 목격한 사람이다. 평범함이란 사실 주변과의 동질성을 반영하는 단어이기에 나의 주변이 변하면 평범의 기준도 달라진다. 어제까지 내가 있던 곳에서 평범했던 옷차림이 다른 성격의 집단에 가면 튀는 옷차림이 될 수 있다. 내가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내가 속한 집단의 성격이 변한다면 기존에는 지양되던 행동이 오히려 칭찬받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세계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화이트 버드>이다 보니 이런 면의 극단적인 예도 잘 나온다. 나치 소년단에 입단한 빈센트는 마을에 공포가 만연해지고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나치에 의해 사회 계도행위쯤으로 부추겨지니 그 점을 아주 신나게 이용하고 다닌 인물이다.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는 그 평범함 또한 어둡게 물들 수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서서 타인을 괴롭히는 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조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은 평범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사라는 그것을 알기에 손자에게 자신을 살리고 키운 다정함이라는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었다. 공감과 연민, 배려와 용기가 들어 있는 다정함을. 자기 이름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알게 된 줄리안은 그렇게 다정함을 마음에 새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도 떠올랐고, 당장 작년 말의 일도 떠올랐다. 국제 정세를 다룬 기사들에선 전세계적으로 빠르고 심상치 않게 우경화되는 오늘날을 볼 수 있다. 세상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또다시 역사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그런 암울한 시대가 되면 나는 <화이트 버드> 속 몇몇 인물들처럼 인류의 영원함을 기원하며 외칠 수 있을까?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상과 실제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며 느낀 바가 힘든 시기에도 내 안에 있기를 바라본다. <화이트 버드>는 오는 12일 정식 개봉할 영화이기 때문에 일부러 줄거리를 다 다루지 않았다. 내 글에 나온 것보다 많은 장면과 깊은 감정이 있으니 영화를 감상하길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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