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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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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까지 우리가 주로 부딪히는 대상은 또래 친구들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실수를 하면, 우리의 미숙함을 이해해달라고 어물쩍 넘어가는 게 가능했다. 나와 맞지 않는 이들은 되도록 피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업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내 또래보다 훨씬 윗세대의 어른들과 부딪히게 된다. 윗세대와 다를 바 없는 '어른' 취급을 받는다. 아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고, 실수와 사과가 빠지면 섭한 사회 초년생도 예외는 없다.

 

일본 드라마 <마도카 26세, 연수의입니다!>의 주인공 마도카는 '슈퍼 로테이션'을 수행 중인 1년 차 연수의다. '슈퍼 로테이션'은 초기 연수의를 위해 새로 도입된 시스템이다. 2년의 '슈퍼 로테이션' 기간 동안 다양한 진료과를 경험해 보고, 마지막에 자신이 전공할 진료과를 결정한다. 전공의로서 몇 년 동안 수련을 거쳐야 비로소 전문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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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의 기간에는 9시 출근, 5시 퇴근이 보장된다. 마도카의 여자 동기들은 결혼할 상대를 찾기 위해, 퇴근 후에 데이트 '슈퍼 로테이션'을 돌린다. 2년의 연수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개인 생활을 챙길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연수의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진료과에 적응하느라, 미래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선배 의사들은 '슈퍼 로테이션'이라는 시스템부터가 못마땅하다. 자기들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연수의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냐는 거다. 외과의 니시야마는 실수를 한 마도카에게 '너는 아직 의사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니시야마를 비롯한 선배 의사들의 입에서는 수시로 '우리 때는', '요즘 애들은' 같은 단어가 튀어나온다. 그들의 20대 시절에는 회사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고생을 연수의들도 똑같이 겪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고생은 윗세대의 깊게 패인 흉터이자 자랑스러운 훈장이며, 명백한 부당함이다. 부당함을 강요할 권리는 당연히 누구에게도 없다. 컨퍼런스는 외워서 하는 게 기본, 입원 환자의 차트는 전부 외우기. 니시야마의 일명 '나 때'에는 이런 것들이 당연했다. 우리는 마도카의 부단한 노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처음에는 이런 규칙들 역시 고착화된 낡은 문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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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도카가 아직 어리숙하고, 보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연수의인 건 사실이다. <마도카 26세, 연수의입니다!>는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갈등하는 지점과 양쪽의 입장을 모두 보여주며, 어느 한쪽의 편만을 들지 않는다. 무엇이 정말 옳은 것인지, 어떤 방법이 옳은지를 시청자들이 직접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시스템 개혁과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낯설고 무섭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는 이에 반발하는 무분별한 비난의 목소리에 쉽게 노출된다. 하지만 우리는 2025년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공감하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분명하게 목격했다.


그 동조는 비단 윗세대와 아랫세대 같은, 특정 세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 존재이기에, 그 어떤 나이대의 사람과도 온전히 단절되지 않고 같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나의 부당함이 너의 부당함이 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걸 <마도카 26세, 연수의입니다!>를 보며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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