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쌀쌀했던 겨울, 계나(고아성)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다니고 있는 직장은 대체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고, 자신이 매일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쉽게 말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생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계나는 떠나기로 했다. 따뜻한 곳, 뉴질랜드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한국이 싫어서>는 <한여름의 판타지아>, <달이 지는 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의 신작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스물여덟의 회사원 계나가 순간의 행복을 좇아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2년간의 여정을 담았다.
책에서 영화로
<한국이 싫어서>는 각색 과정에서 소설에 없던 설정 몇 개가 추가되었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기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창 경윤은, 원작에서 의전원을 다니는 여자 동기로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크린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윤(박승현)은 영락없는 공시생 남자다.
경윤은 첫 등장부터 한국의 추위에 계속해서 몸을 떤다. 두꺼운 잠바를 입어도 모자랄 날씨에 얇은 외투 하나만을 걸친 채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계나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경윤의 떨림은 잔상처럼 관객의 눈에 남는다.
계나와 경윤의 두 번째 만남은 한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저번 만남 때, 계나가 경윤에게 밥을 사기로 약속해서다.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식당 TV로 향한다. 화면 속에는 사람들에게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행복 전도사 채복희(정이랑)가 등장한다.
돈이 아니라 행복을 모으라는 채복희의 말은 전형적인 사기꾼 멘트로 들린다. 계나 역시 채복희의 말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경윤은 자신도 채복희의 강연을 들였다며 그때 구매한 굿즈 나침반을 계나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거라고 경윤은 말한다. 채복희는 경윤과 마찬가지로 원작에는 없지만, 영화에서 새롭게 추가된 인물이다. 장건재 감독이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개인의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는 걸 바뀐 설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원작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유학원을 운영하는 태은(김지영)의 가족 이야기 역시 영화로 오면서 설정이 추가되었다. 태은의 남편 상우(박성일)는 뉴질랜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계나와 대화하며 심하게 다리를 떠는 상우의 모습은 한국의 추위에 몸을 떨던 경윤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에 비해 춥지 않은 뉴질랜드에서도 인물들의 떨림은 계속해서 포착된다. 오직 상우만이 감지하는 집의 미세한 진동은 인물 내면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느껴진다.
공명하는 인물들의 죽음
원작과 다른 설정의 세 인물은 질병, 재난, 자살이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순간의 행복을 말하는 채복희의 죽음은 영화가 계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뉴질랜드에 와서 계나는 정말 행복을 찾았는가. 상우의 망상인 줄 알았던 집의 진동은 지진이라는 실체가 되어 나타난다. 영화는 상우의 죽음을 통해 누구에게나 행복을 안겨줄 것 같았던 뉴질랜드가 모두에게 행복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음을 이야기한다.
뉴질랜드에서 상우가 느끼던 진동이 한국에 있는 경윤에게 공명하듯, 상우의 죽음은 경윤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죽은 경윤의 이미지는, 계나의 꿈으로 추정되는 롯데리아 신에서 계나의 거울상과 맞닿는다.
나름 번듯한 직장에 취직도 했었고, 뉴질랜드로 떠나기까지 했던 계나와 한국에서 시험공부만을 하던 경윤은 정반대의 삶을 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나와 경윤은 둘 다 한국의 추위에 몸을 떨었고,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계속해서 헤매였다.
거울로 연결되는 경윤과 계나의 이미지는, 지금 계나가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경윤이 아니라 계나 자신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어딘가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는 경윤의 말 역시 계나의 처지와 겹쳐진다. 죽은 경윤은 더 이상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다.
정말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나는 건 이제 온전히 계나의 몫이다. 계나는 경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행복의 보편성
우리에게는 각자의 행복이 존재한다. 계나가 한국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이들도 한국에서 행복해질 수 없는 건 아니다.
계나의 전 남자 친구 지명(김우겸)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대한민국만한 기회의 땅도 없다고 말한다. 취업에 성공한 지명은 전날 늦게까지 맥주를 마셔도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하는 직장인이 된다. 그런 지명이 답답하고 안쓰럽게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본 직장인 지명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일부만을 보고, 그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초면인 계나에게 반말로 대답하고, 매사에 진지하지 않아 보이던 유학원 동기 재인(주종혁)은 계나보다 먼저 자신의 길을 찾는다. 미래 계획에 대해 말하는 재인과 계나의 대화에서, 계나는 자신이 지금껏 재인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계나는 재인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느라 어학원에 매번 지각했다고 생각했지만, 재인은 학비를 벌기 위해 빌딩 청소 알바를 하느라 지각한 것이었다. 카메라는 재인을 보내고 홀로 남은 계나의 벙찐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기성세대의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계나의 부모님은 구시대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없듯, 자식 역시 부모의 행복을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는 없다.
그들이 지금껏 믿어온 행복을 부정하며, 왜 그런 행복을 좇느냐고 함부로 다그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계나의 동생 미나(김뜻돌)와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는 그들이 함께 노래하는 작은 공연장과 공연을 마치고 가지는 술자리가 그들의 전부이자 행복일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고, 지금 행복한지. 당신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행복을 좇으며 사는 게 정말 맞는 걸지. <한국이 싫어서>는 명확한 답은 내놓지 않은 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운 우리가 영화의 말미에 마주하게 되는 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흔들리는 계나의 발걸음과 그럼에도 살며시 웃어 보이는 계나의 얼굴이다.
나침반을 들이밀며 행복을 말하던 경윤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우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거라고 했던가.
결국 계나는 다시 한국을 떠난다. 이번에 계나가 떠나는 곳이 어디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추운 한국이 싫다며 도피하듯 떠나던 영화 초반과 다르게, 이제 계나의 옷차림은 반팔에 반바지로 한결 가벼워졌다.
계나는 이제 추운 게 싫어서, 그러니까 무작정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다. 조금씩 흔들려도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난다.
왠지 계나의 이번 여정은 성공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