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빛을 닮은 음악들 - 쇼팽, 블루노트 [공연]

글 입력 2025.01.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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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들은 "달도, 별도 따줄게"라는 말을 한다. 일본에서는 "달이 아름답네요(月がきれいですね)"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밤 하늘에 떠있는 달이 아름답다는 의미와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함의한다. 하늘에서 매일 모습을 바꾸며 밝게 때로는 은은하게 떠있는 달이 뭐길래 사람들은 사랑을 고백할까 생각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톱처럼 생긴 밝은 달이 사람 마음을 간지럽히기는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매년 겨울 찾아오는 '산울림 편지 콘서트' 시리즈의 올해 주인공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다. 그는 녹턴과 환상 즉흥곡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곡들로 인기 많은 작곡가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2014년에 한국 최초로 그의 이름을 딴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역사가 있기에 쇼팽의 이름이 익숙한 사람이 많다. 한편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자 또한 클래식 작곡가라는 분류 속에만 있는 쇼팽에 관해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의 국적과 태어난 연도까지 헷갈렸으니 내적 친밀감만 강한 존재였다고 보는 편이 맞다. 작년에 이어 올해 ‘산울림 편지 콘서트’로 진행된 공연 <쇼팽, 블루노트>는 인간적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만나보는 시간이었다. 그가 천재성을 드러낸 어린 8살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삶을 다룬 이야기와 음악를 통해서였다.


‘산울림 편지 콘서트’의 특징은 단순히 음악가의 인생을 연극 무대 연출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맞는 음악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형식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회를 가는 것은 비용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관객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쇼팽의 음악과 배우의 대사를 통한 이야기 전개 방식은 클래식을 보다 친근하게 경험하게 한다.


필자가 관람한 <쇼팽, 블루노트> 공연의 매력적인 특징은 이러했다. 첫째로 그의 음악에 영향을 준 소중했던 사람, 조르주 상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둘째, 쇼팽의 음악에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을 느꼈다. 세 번째로는 음악 뒤편에 여리고 섬세한 쇼팽이라는 사람을 보았다. 연말 한겨울 추위를 뚫고 관람한 이 공연은 쇼팽의 인생과 음악으로 인해 따뜻하게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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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음악을 들을 때는 조르주 상드에 대해 알지 못했다. 화가가 사랑하는 연인을 화폭에 담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음악인 작곡가들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하는 세레나데 또한 음표 뒤편의 스토리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된다. 당시 문학계에서 성공한 소설가였던 상드는 9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쇼팽의 건강을 위해 거취를 옮겨 지내고 간호를 했다. 쇼팽에게 몹시 소중한 관계이다.


공연에서 상드는 쇼팽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서술자이며, 쇼팽과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역할이다. 몸과 마음이 여린 쇼팽과 달리 씩씩하고 활기가 느껴지는 상드는 쇼팽의 음악에 ‘블루노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극 중에 쇼팽의 음악은 무슨 색일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드는 그의 음악을 달빛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의미를 담아 ‘블루노트’라고 표현한다. 상드의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공연 시작에 등장한 쇼팽 역할의 배우는 피아노 곡을 짧게 연주한다. 그 순간부터 소극장 산울림은 쇼팽이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유럽으로 시간적 배경이 옮겨간다.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참여한 인물은 피오트르 쿠프카와 히로타 슌지, 두 사람인데 8개의 동일한 피아노곡과 한 개의 다른 곡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쇼팽과 상드의 대사가 오간 후 등장하는 피아노 선율은 겨울밤에 따뜻한 극장을 포근하게 채운다.


9개의 피아노곡 모두 ‘아, 이것이 피아노의 시인 쇼팽 곡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코가 시큰해지는 아름다운 곡들이다. 특히 다시 한번 '이별의 왈츠'라고 불리는 Waltz No.9 in A flat Major Op. posth. 69-1에 반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마리아 보젠스카에게 전하는 사랑이 곡의 아름다움으로 전해진다. 새롭게 반한 곡은 '빗방울 전주곡'으로 알려진 Prelude in D flat Major Op.28, No.15이다.


이 곡에 관한 스토리가 공연에서 인상 깊게 남는다. 쇼팽은 폐결핵이 악화된 후 조르주 상드와 함께 마요르카로 거처를 옮긴 후에 그곳에서 작곡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상드를 기다리며 집에서 쇼팽 홀로 이곡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연출로 이 장면을 보여준 후 라이브로 듣는 피아노곡의 유려한 선율은 상드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하고, 반복적인 낮은 음은 비 내리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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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수경

 

 

화가의 작품 전시나, 작곡가의 음악 공연처럼 한 사람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가장 큰 기쁨은 그 예술가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로만 음악으로 감각하던 쇼팽을, 눈으로 대사로 만난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를 위대한 음악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의 삶을 담은 대사들을 통해 만난 쇼팽은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망설였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했고, 아프고 슬퍼하고 연약했다. 과거에 본 전시에서 맥스 달튼의 영화 감상문 방식은 그림이었는데, 쇼팽의 일기는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그의 피아노 선율이 악보에 쓰이는 과정에 쇼팽이 감각하는 19세기 유럽의 분위기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조르주 상드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의 음악은 매일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는 달처럼, 우리가 찾는다면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이제 겨울밤에 달빛에 비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폴란드에서, 파리에서, 마요르카에서, 노앙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쇼팽이 생각날 것이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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