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에세이집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영화, 드라마, 공연, 전시, 웹툰, 세상엔 꼭 봐야만 하는 재밌는 볼거리가 너무 많고, 많은 경우 그런 콘텐츠는 책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쉽게 고밀도의 자극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가성비(?) 좋은 콘텐츠를 제치고 책을 집어드는 게 쉽지 않으니, 기왕에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 안에 뭔가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만한 내용이 들어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에세이는 장르의 특성상 때로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의 나열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에세이’집’은 같은 사람의 감상을 연달아서 읽게 되니, 그렇게 남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게 내겐 고역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많아 에세이 자체를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어본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는 미술 작품에서 파생된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하지만 에세이를 기피해왔던 내가 인증한다. 이 책 전반엔 풍부한 지식과 삶에 맞닿은 사유가 흐르고 있어서, 혹시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독자들은 걱정을 내려놓고 대화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 보면 된다. 커다란 규모의 지적, 철학적,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인 주제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밝힌다. 그럼에도 글이 전혀 현학적이지가 않고 술술 읽혀서, 무척 박학다식한데 이야기마저 재밌게 잘 하는 사람과 찻잔을 앞에 놓고 담소를 나누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혹시나 저자가 선정한 대화 주제에 대해 전에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다채로운 개성을 뽐내는 시각 자료가 눈을 사로잡고, 화가에 삶에 대한 ‘썰’이 흥미를 돋우며, 그러한 이야기에서 현실에 적용할 만한 성찰을 끌어내는 시선이 이채롭고,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참고문헌까지 가장 흥미롭고 핵심적인 문장만 귀신같이 발췌해서 제시하는 센스는 감탄스러우니까!
증거로,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작가와의 대담에서 가장 흡족한 티키타카가 일어났던 에세이를 두 개만 꼽아보려고 한다.
우선 첫 번째 챕터 ‘생의 빛깔’의 마지막 글. ‘우정은 돌로 된 벽보다 강하다-조지아 오키프와 애니타 폴리처가 보여준 우정의 힘’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애니타 폴리처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보낸 든든한 지지에 감동받아 지하철에서 혼자 눈물을 흘릴 뻔 했었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미국화가’라는 수식어가 걸맞는 조지아 오키프의 목탄 소묘를 보라. 이유리 작가의 표현대로 “양치류, 구름, 파도에서 빌려온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종이 위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뿜으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작품이다. 애니타 폴리처가 오키프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것과 같이 “그 작품들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위대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큰 느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림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한 눈에 느껴지는데, 오키프는 당시 자신 작품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때 오키프 본인보다도 오키프의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절친한 친구 폴리처였다. 폴리처가 저 소묘 뭉치를 들고 일면식도 없는 미술계의 중요 인사에게 찾아간 결과, 오키프의 작품 세계가 온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일화를 일례로 들어 작가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무용하며, “흔히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유해한지에 대해 시원하게 달변을 늘어놓는다.
또 하나 흥미롭게 생각을 이어가게 됐던 글은 마지막 챕터 ‘생의 깨침’ 중 ‘어른이 되기 전의 삶은 삶이 아닌 것인가-어른이 보듬어야 할 어린이의 세계’라는 에세이이다. 예전에 <비밀의 언덕>이라는 영화를 보고, 겨우 초등학교를 다니는 꼬맹이를 두고 “작은 여자 인간”이라고 칭하며 그의 주체성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은 이지은 감독의 시선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시선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글이었다.
이유리 작가가 매미의 일생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 불만을 가지는 대목이 특히 재밌는데, 흔히들 매미가 길게는 7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성충이 되어선 평균 10일 남짓을 살다 죽는 것을 두고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생이 짧아 슬픈 곤충”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어른이 되기 전의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른 중심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지 않은가? 다만 나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살짝 다른 결론에 도달한 이지은 감독의 시선을 이유리 작가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듬어야 할 존재로 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어린이가 살아가는 세계의 온전함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조금 더 나아간 생각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어도, 사유가 시작되는 전제, 디디고 있는 기반이 같은 사람. 요즘처럼 대화의 시작조차 어렵고 혐오는 너무나 쉬운 세상에, 내가 양보하고 타협할 수 없는 최소한의 상식을 공유하는 타인의 존재는 얼마나 귀한가. 이같이 유익하고도 즐거운 대담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